LG가 대기업으로는 처음으로 해외사업을 하면서 뇌물을 주지도 받지도 않겠다고 공식 선언해 관심을 끌고 있다. LG는 해외뇌물방지를 위해 부서별로 윤리규범을 작성, 직원들을 교육시키는 한편 뇌물방지를 위한 10대 포인트까지 설정했다. 특히 계열사별로 구체적 실천에 들어가 LG전자는 전임직원을 대상으로 기업윤리교육 실시와 함께 「부정한 돈은 주지도 받지도 말자」는 내용의 서약서를 받았으며 LG산전도 조만간 임직원들로부터 뇌물방지 실천 서약서를 받고 행동지침을 교육할 예정이라고 한다.
그동안 우리 기업들이 해외사업을 하면서 뇌물거래가 사실상 공공연히 이뤄져왔던 점을 감안하면 이번 LG의 뇌물추방 선언은 큰 의미가 있다. 특히 이는 다른 기업으로 파급되면서 우리 기업의 풍토를 크게 변화시키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미 삼성·SK 등도 내부적으로 뇌물거래방지와 관련한 국제기준의 윤리지침을 마련하는 등 대책마련에 나섰다는 소식이어서 더욱 기대된다.
기업들이 이처럼 뇌물추방운동에 나선 근본 배경에는 해외사업에서 뇌물 등 부정한 수단을 동원한 개인은 물론 해당 기업까지 형사처벌하는 「해외뇌물거래방지협정」이 우리나라를 비롯, 주요 선진국에서 오는 15일부터 발효되기 때문이다. 공정한 거래환경 조성으로 정직성과 경쟁력을 갖춘 기업이 존중받는 풍토를 만든다는 취지의 이 협정은 지난 97년 12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이 조인한 사실상 「반부패라운드」이다. OECD 가입국이면 의무적 추진국에 속해 우리나라도 지난해 말 「해외뇌물거래방지법」을 제정, 국회동의를 거쳐 협약비준서를 OECD에 기탁해 국내법으로도 제재를 가할 수 있게 됐다.
이 협약이 OECD 주도로 추진되는 이유는 국제교역 규모가 날로 커지면서 어느 한 나라만 뇌물공여 관행을 규제한다고 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미국은 이미 지난해 10월 이 협약을 비준하는 등 가장 적극적이다. 이 협약의 정신을 잘 이행하는 선진국 기업들이 뒷거래에 의존하려는 개발도상국 기업들과의 경쟁에서 손해를 볼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견제의 주 대상은 국제시장에서 선진국들과 경합빈도가 많은 수출주도형 중견 국가들임이 확실하다. 우리나라가 그 대표적 대상국가에 해당된다.
뇌물거래방지법 시행은 해외에 영업망과 공장을 갖고 있는 전자관련 기업들이 비교적 많은 영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물론 우리나라의 관련법 규정이 미국의 해외부패관행법(FCPA)에 비해 덜 엄격하지만 해외사업 때 뇌물을 공여하다 적발되면 유·무형적으로 타격을 받는 것은 마찬가지다. 설사 법망을 빠져나온다 하더라도 소비자들로부터 외면당할 수밖에 없다. 그만큼 해외사업을 하는 기업이면 시급히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우선 뇌물관행이 만연돼 있는 개도국과 거래하는 기업은 현지인들의 뇌물강요에 대해 OECD 협약과 국내법 발효로 뇌물제공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점을 인식시키고 다른 통로를 통해 상호이해를 증진시키는 방안을 모색하는 적극적 대응이 필요하다. 또 일상 관행처럼 여겨지던 거래 역시 현지 법규상 저촉 여부를 철저히 따지는 사업관행을 정착시켜야 한다. 기업 내부 감독기능 강화도 필수적이다. LG처럼 자체 윤리강령 또는 행동규범을 제정해 이의 실천을 의무화해야 한다. 특히 기업윤리강령은 외국 공무원에 대한 뇌물금지 조항, 회계와 기록보존 의무 등에 대한 피고용인의 준수결의 등을 포함하고 이를 위반할 때 제재규정도 담고 있어야 한다.
이제 뇌물추방 문제는 단순한 도덕적 호소차원을 떠났다. 국제기구의 지속적인 감시가 기다리고 있다. 그것도 우리의 관행으로 볼 때 상상을 넘는 높은 차원의 기준이 적용된다. 이제 국제상거래에 있어 뇌물과 인맥 등을 통한 거래보다는 기술·가격·신뢰·서비스 요소가 중요시될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우리 기업들도 뇌물방지법을 거추장스러운 법으로 여기기보다 새로운 해외사업 관행을 정착시키는 계기로 인식하고 품질·가격경쟁력을 내세워 거래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뇌물을 추방하고 투명한 사회를 만드는 것은 외부의 주문과 압력이 없더라도 우리 스스로 서둘러야 할 일이다. 환란의 도화선이 됐던 한보사태는 부패한 정경유착이 얼마나 큰 국가적 손실을 불러오는지 잘 보여준 사례다. 경제회생을 위해서도 부패근절은 반드시 필요하다. 외국 투자가의 신인도를 높이고 기업의 경쟁력을 살리는 근본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