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非전산분야 Y2k가 더 급하다

정연동 한전정보네트웍 부사장

 밀레니엄 버그로 불리는 컴퓨터 2000년(Y2k) 문제의 심각성을 각종 언론매체에서 경고하고 있다. 90년대 중반 연도문제가 처음 제기되기 시작할 때에는 이를 단지 정보기술, 즉 IT 차원의 문제로만 인식했다. 정보기술 분야는 각종 소프트웨어나 데이터베이스의 날짜 및 시간 프로그램 사용 여부를 쉽게 확인할 수 있고 프로그램 소스 또한 대부분 사용자들이 확보하고 있으므로 시간과 인력을 충분히 투자한다면 거의 완벽한 해결이 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최근 들어 비전산 분야에도 연도문제가 크게 대두되고 있다. 비전산 분야에서 컴퓨터와 별로 연관이 없어 보이는 각종 설비와 장비, 제품에까지 문제가 발생한다. 자동차·항공기 등에는 적게는 수십 개부터 많게는 수천 개까지 컴퓨터용 마이크로 칩이 들어 있다. 각종 전자무기나 원자력 등의 발전설비는 물론 인명과 직결된 의료장비도 정밀한 칩에 의해 작동되며, 이 마이크로 칩들이 연도를 잘못 인식해 발생시킬 수도 있는 사고는 바로 인명손실과 직결되므로 사회 전반에 걸쳐 상당한 혼란이 발생할 수 있을 것으로 예견된다.

 예를 들어 전자제어 방식으로 움직이는 가스의 공급설비에 연도인식 오류로 인하여 시스템 장애가 발생하는 상황은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영국 정부의 2000년 대책기구인 「액션 2000」이 산업자동화 시스템을 테스트한 결과 전체 설비 가운데 15% 가량에서 문제가 발견됐다. 또 가트너그룹은 전세계적으로 쓰이는 25억개의 마이크로 칩 탑재 장비 가운데 5천만개에서 문제가 발생할 것으로 예측하는 보고서를 내놓기도 했다. 이 분야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선 설비나 제품에 내장된 마이크로 칩의 프로그램 소스를 파악하고 난 후에 칩의 교환이나 수정, 폐기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문제가 이렇게 심각한 것과는 달리 우리나라는 비전산 분야, 특히 중소기업의 경우 연도문제에 관한 한 사각지대나 다름없다. 설비 사용자는 외관과 기능에만 관심을 가질 뿐 내장된 컨트롤러에 대한 자세한 사양을 모르고 있다. 보유설비가 연도인식에 오류가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은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국내에서 사용하고 있는 많은 생산설비는 수입품으로 어떤 문제가 있는지 파악하기조차 어렵고 외국 제작사들이 연도문제 해결을 또 하나의 수익사업으로 여기기 때문에 해당업체에는 커다란 부담이 되고 있다.

 이같은 비전산 분야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산업 전체의 문제로서 인식하는 공감대 형성이 필요하며 △공급업체의 횡포를 막기 위해 기업들간의 공동대처가 요구되고 △중소기업에 대해서는 정부나 유관단체의 지원이 광범위하고도 효과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며 △문제해결에 필요한 자원을 효과적으로 운영·관리할 수 있는 체계적인 접근 방법론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비전산 분야의 연도문제는 그 대상범위가 넓을 뿐 아니라 이해관계자간 법적인 책임 소재 등 여러 복잡한 요인들이 얽혀 있기 때문에 쉽게 해결되지 않는 문제다. 그러나 우리 기업들이 이 어려운 위기를 극복하고 새로운 천년에서 승리하고자 한다면 2000년 연도문제의 완전한 해결로 국제무대에서 신뢰와 경쟁우위를 확보해 나가야 한다.

 위기를 기회로 삼는 지혜가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