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어느날 아침, 뉴욕 맨해튼 33번가의 마천루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 원인 모를 정전이 발생한다. 같은 시각 존 F 케네디 국제공항 일대에는 전화가 불통된다. 곧이어 출근 인파를 싣고 센트럴파크에서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쪽으로 달려가던 지하철이 갑자기 멈추는 사고가 일어나고, 브루클린에서는 시티뱅크의 현금자동입출금기(ATM)가 고장을 일으키는가 싶더니 이내 은행전산망이 다운되어 버린다.
15분 후 워싱턴.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긴급 영상회의를 소집한다. 액정 스크린에 등장한 국방장관은 방금 전 일어난 연쇄사고가 이라크 해커부대들의 소행이라고 주장한다. 중앙정보국(CIA) 국장은 유럽의 전설적인 해커가 한달전 이라크 정부로부터 5백만유로를 받고 사이버 용병으로 팔려갔다는 첩보를 전한다.
그때 야후와 마이크로소프트의 주식이 금세기 들어 최저가로 동반 하락했다는 CNN의 긴급뉴스가 스크린에 겹쳐진다. 지난 세기의 블랙 먼데이 이후 최대 위기가 닥쳐올지 모른다며 호들갑을 떠는 금융전문가의 모습도 비쳐진다. 다음 순간 사우디아라비아 다란 인근의 미 군사시설 코바르 타워스에서 터진 「논리폭탄(Logic Bomb)」이 미사일을 오작동시켜 원유를 싣고 걸프해를 지나던 쿠웨이트 선박이 격침됐다는 급전이 날아든다.
모든 것이 분명해졌다. 이라크가 일으킨 사이버 전쟁이다. 미 국방부 소속 해커부대를 출동시키고 첨단 전투기와 항공모함을 걸프해로 파견하라는 명령이 내려진다.
그날밤 9시 펜타곤. 국방사령관과 참모들이 작전회의실에 모여있다. 벽에 걸린 대형 액정화면에는 오늘 벌어졌던 치열한 전투상황이 재연된다. 해커 부대원들은 정보체계사령부(ISEC)의 전산실에 앉아 이라크의 통신기지서부터 전화국, 그리고 광케이블이 통과하는 교량까지 철두철미한 파괴공작을 벌인다.
최신예 전투기를 몰고 바그다드 상공으로 날아간 미군 병사들은 바그다드 상공에 자살로봇을 투하한다. 낙하산에 매달려 적진 한가운데 떨어진 자살로봇들은 첨단센서와 위성정보 수신장치의 도움으로 이라크 지휘본부에 레이저포를 명중시킨다. 인공위성으로 원격 통제되는 초소형 무인비행체도 지원사격에 나선다.
한편 최신형 슈퍼건(Super Gun)으로 무장하고 걸프해로 출동한 미 육군 정예부대는 쿠웨이트와 이라크의 접경지역에 대기중이다. 펜타곤의 장성들과 마찬가지로 전선에 배치된 미군들도 탱크에 부착된 컴퓨터 화면을 통해 오늘의 전투상황을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전투 시뮬레이션 프로그램을 작동시켜 내일의 전투를 모의시험해보는 것으로 펜타곤의 작전회의는 막을 내린다.
앞으로 다가올 미래의 전쟁상황을 시나리오로 그린 내용이다.
만일 21세기에 전쟁이 일어난다면 첨단무기와 고속정보망이 결합된 사이버전쟁일 것이다. 19세기엔 총과 대포가 병사들에게 지급됐다. 제1차세계대전 때는 탱크와 폭격기가 등장했다. 2차대전엔 원자폭탄이 터졌다. 앞으로는 인공위성과 컴퓨터, 전투로봇, 가상비행체, 그리고 해커들이 전선의 주역이 될 것이다.
군사전문가들에 의하면 이미 미국은 「컴퓨터 탱크」 개발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이동위성으로 연결된 사령부로부터 전투상황이 담긴 데이터베이스(DB)를 수신, 아군과 적군의 배치상황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해주는 최첨단 탱크가 될 것이 분명하다. 매사추세츠 링컨 기술연구소는 첨단센서로 적군의 탱크와 헬리콥터를 감지해 미사일을 발사하는 무인비행체 개발에 성공했다는 소식이다.
「로봇병사」의 출현도 기대되고 있다. 사이보그들이 전쟁을 대신한다는 것은 아직 SF소설에나 어울리는 시나리오. 하지만 「지뢰탐사 로봇」이나 험한 지형을 뚫고 용감하게 돌진하는 「자동차로봇」은 머지않아 등장할 수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 적의 벙커만 전문으로 파괴하는 로봇이나 인공위성으로 원격 조정할 수 있는 초소형 무인비행체, 그리고 첨단 센서와 레이저포를 갖춘 자살로봇도 실현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해커들도 사이버전쟁의 주역이다. 정보 선진국뿐 아니라 제3세계 국가들까지 앞다투어 해커부대를 창설하고 있다. 중국인민해방군도 지난 97년 컴퓨터바이러스 부대를 창설했으며 북한군도 사이버전에 대비해 인민무력부 산하 미림대학의 요원들을 훈련시키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사이버 용병에 지원하는 해커들도 앞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동유럽과 제3세계 출신의 고급두뇌들이 경제적인 궁핍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신의 노하우를 팔고 있다. 특히 러시아와 인도는 해커 수출국이라는 게 군사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들 사이버 용병들에겐 반도체칩과 소프트웨어가 무기다. 특정 명령어를 접했을 때 전산망을 파괴시키는 「부비트랩형 칩」을 비롯, 컴퓨터 바이러스를 강력한 파괴력으로 무장시킨 「논리폭탄」, 특정 신호를 받으면 전자기파를 발생해 주변건물의 전산시스템을 고철덩어리로 만드는 「EMP(Electromagnetic Pulse) 가방」 등은 널리 알려진 해커들의 첨단무기. 이들은 또 컴퓨터 합성을 통해 적성국 지도자의 영상과 목소리를 만들어 적국 공중파 방송에 출연시킬 수도 있다.
진짜 병사들은 사이버전쟁을 위한 조연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들에게도 최첨단 무기가 지급된다. 「파퓰러 사이언스」 최근호에 의하면 미국의 한 무기회사는 할리우드 영화의 제목을 연상시키는 리셀 웨폰·슈퍼 건을 개발했다. 이 총의 사정거리는 1천m. 레이저 측정기가 목표물과의 거리를 정확히 알려준다. 야간전투에 대비해 적외선과 6배 줌 카메라가 장착된 헤드 마운티드 디스플레이(Headmounted Display)도 연결되어 있다. 앞으로 정보 선진국들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이런 첨단 장비들로 무장된 디지털 병사를 양성하기 위해 군사전문가들을 동원할 것이다.
그래도 만일 부상자가 발생한다면 어떻게 할까. 그때는 다친 병사를 후방으로 이송하는 게 아니라 외과병동을 상자곽에 집어넣어 전선으로 보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새너제이 대학과 미 육·해군은 오크 리지 센터에서 조립식 병원을 공동 개발중이다. 이 병원은 무게가 불과 4천파운드로 헬리콥터가 충분히 실어나를 수 있으며, 땅에 내려지면 30분 안에 사방 27m의 간이 외과병동으로 조립될 것이라는 게 새너제이 대학측 설명이다.
더 이상 지구촌에 전쟁은 없어져야 한다. 하지만 만일 불가피한 충돌이 빚어진다 해도 21세기 사이버전쟁 시대에는 로봇과 첨단무기, 그리고 해커들 덕분에 인명의 살상을 최대한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선기기자 sk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