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이 보인다> 탄소반도체

 금속을 성질이 전혀 다른 반도체로 바꾸는 「21세기 연금술」이 최근 국내 학자에 의해 개발됐다. 이 연금술의 기본 원리는 금속의 결합 형태를 조작, 신물질을 합성하는 것으로 이를 활용하면 집적도가 현재의 실리콘 반도체보다 1만배 이상 높은 새로운 개념의 반도체 제작이 가능하다.

 화제의 주인공은 임지순 서울대 교수(47·물리학). 임 교수는 미국 UC버클리대 마빈 코언 교수(물리학) 등과 함께 「탄소 결합의 비대칭성으로 인한 전기적 특성 변화」를 공동 연구해 이같은 획기적 사실을 세계 처음으로 확인했다. 그는 이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 3일 한국과학기자클럽(회장 이주호)이 주는 「올해의 과학자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차지했다. 임 교수의 연구성과를 중심으로 최근 세계 과학계에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는 「탄소 나노튜브」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자.

 탄소 나노튜브란 탄소로 이뤄진 지름 1나노미터(㎚·10억분의 1m) 수준의 튜브형 물질. 과학자들은 이 물질이 85년 발견된 풀러렌(일명 버키볼:탄소 60개로 이뤄진 축구공 형태의 물질. 다이아몬드보다 더 단단하다)의 인기를 능가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우선 눈길을 끄는 것은 지름이 아주 작은 데 비해 길이는 직경의 1만배에 이를 만큼 길다는 것. 또 모양을 바꾸면 반도체가 되기도 하고 도체(전기가 잘 통하는 물질)가 되기도 한다. 다이아몬드·버키볼·나노튜브는 모두 탄소로 이뤄졌으나 배열과 결합구조가 달라 성질이 제각각이다. 탄소 나노튜브가 처음 발견된 것은 90년. 버키볼을 만드는 과정에서 화학반응의 부산물로 세상에 처음 얼굴을 내밀었다.

 이를 처음 제조한 주인공은 한 일본의 과학자. 최근에는 미국 라이스대학의 스몰리 교수 등이 두 개의 흑연 봉 끝을 날카롭게 깎은 후 방전시켜 이를 대량 생산하는 법을 개발했다. 스몰리 교수는 버키볼 발견으로 96년 노벨 화학상을 탄 세계적인 학자다.

 탄소 나노튜브가 세간의 주목을 끌게 된 것은 93년 일본 NEC의 오시야마 박사팀이 이를 반도체로 활용할 수 있음을 이론적으로 규명한 이후부터다. 현재의 기술로는 한계에 이른 반도체의 집적도를 1천∼1만배 가량 높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제시했다. 그후 나노튜브는 초전도 물질로의 가능성도 점쳐지는 등 지난해 미국 과학계의 10대 연구토픽에 들 만큼 큰 인기를 누렸다.

 탄소 나노튜브 연구에는 국내학자들의 기여도 적지 않다. 이 분야 연구로 국내외에 널리 알려진 전북대 이영희 교수(물리학)도 그 중 한 사람. 이 교수는 지난 97년 세계 물리학계 최고 권위지인 「피지컬 리뷰 레터」를 통해 나노튜브가 지름에 비해 괴상하리 만큼 길다란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원리를 규명했다.

 서울대 임지순 교수의 연구는 이보다 한두 단계 더 진전된 것으로 「나노 튜브는 혼자 있을 때에는 전기를 잘 통하는 도체지만 튜브를 여러 다발 포개놓으면 도체와 절연체의 중간인 반도체가 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임 교수는 또 나노튜브가 어떻게 반도체의 성질을 띠게 되는지에 대해서도 「거울 대칭성」이라는 개념을 써서 명쾌하게 풀이했다.

 임 교수는 『나노튜브는 길고 가늘어 다발로 묶으면 긴 회로를 만들기가 매우 쉽게 생겼다』고 말한다. 나노튜브 다발로 만든 회로는 1GD램 반도체 회로에 비해 두께가 1백분의 1에 불과하다. 두께가 1백분의 1이므로 그 면적은 1만분의 1이다. 따라서 현재의 1GD램 반도체보다 집적도가 1만배 높은 반도체 회로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만일 이런 초고집적 반도체가 개발된다면 반도체 분야에 혁명을 가져올 것이 분명하다.

 임 교수는 『매우 중요한 사실은 나노튜브로 만들면 반도체 제작 공정이 매우 간단해진다는 점』이라고 강조한다. 현재 대부분의 반도체는 실리콘으로 만들고 있는데 실리콘은 거의 전류가 통하지 않아 제조공정에서 의도적으로 불순물을 첨가해 전류가 흐르도록 해야 한다. 이를 도핑이라고 하는데 나노튜브 다발은 도핑이 저절로 된 상태라 그런 과정이 필요 없다는 설명이다.

 임 교수는 『일반적인 회로 반도체에서 실리콘을 대체할 후보로 나노튜브처럼 경쟁력이 있는 것은 현재 없다』며 『그러나 아직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아 앞으로 최소한 10년은 지나야 실용화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전망하고 있다.

<서기선기자 kssuh@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