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학교도 다니지 않는 꼬마들이 컴퓨터 프로그램을 이용해 그림을 그린다. 아이들은 컴퓨터로 그린 그림을 컬러프린터로 출력해 가위로 오리기도 하고 풀로 붙이기도 한다. 한쪽에서는 이제 막 초등학교에 들어간 어린이들이 컴퓨터 앞에 앉아 있다. 이 어린이들은 화면을 캡처해 자신이 만드는 그림에 넣는가 하면 음악과 이미지가 있는 멀티미디어 일기를 쓰기도 한다.』
유명한 컴퓨터 학원이나 대형 유치원의 모습이 아니다. 한 학술대회에 마련된 컴퓨터 놀이방 풍경이다. 딱딱한 학술대회가 열리는 한 편에서 학술대회 참가자들과 함께 온 어린이들이 참여하는 「컴퓨터 놀이방」이 운영돼 화제가 되고 있다.
이 학술대회는 한국정보과학회 주최로 지난 3일부터 5일까지 사흘간 휘닉스파크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HCI 99 학술대회」. 대회 사무국에서는 학술대회에 참가하는 자녀들이 컴퓨터를 이용해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HCI 키즈 커뮤니티」란 놀이공간을 마련했다. 이 놀이공간을 이용하면 자녀와 함께 학술대회에 참석한 사람들도 안심하고 학회활동에 참여할 수 있다. 어린이들도 컴퓨터를 이용한 다양한 놀이를 즐김으로써 컴퓨터와 더욱 친숙해질 수 있다.
그러나 더 중요한 의미는 어린이와 컴퓨터간에 일어나는 상호작용을 구체적으로 관찰할 수 있다는 데 있다. 어떤 컴퓨터 프로그램에 어린이들이 흥미를 느끼는지, 어떤 내용에 쉽게 익숙해지는지 등을 알 수 있다.
『「HCI 키즈 커뮤니티」는 단순히 어린이들이 놀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모와 교육자, 연구자들이 함께 어린이들과 호흡하면서 컴퓨터와 인간의 상호작용을 관찰하는 열린 공간이지요.』
한국과학기술원 원광연 교수의 말이다.
원 교수는 『SIGGRAPH, CHI 등 대규모 국제 학회의 경우 학회장에 여러 개의 방을 마련, 수년 전부터 어린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해오고 있다』고 설명하고 『최근에는 이 학회에 참여하는 단골 어린이 고객까지 생기고 있으며 이같은 활동을 통해 어린이와 컴퓨터 상호작용에 대한 여러 가지 교훈을 얻고 있다』고 말한다. 어린이들에게 직접 다양한 학습 프로그램을 이용하도록 함으로써 어떤 기능이 어린이의 관심을 끄는지, 어린이들이 프로그램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등에 대한 정보를 수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같은 경험을 통해 해외 연구진들이 얻은 교훈은 어린이들이 주로 「보고 만질 수 있는 결과물」이나 「여럿이 함께 할 수 있는 것」 「네트워크를 통한 경험」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HCI 키즈 커뮤니티」도 어린이들의 이같은 특징을 자극할 수 있도록 꾸며졌다.
3∼5세 어린이의 경우 컴퓨터로 색깔 맞추기, 음악게임, 이야기 들려주기 등이 중요한 게임 내용. 또 초등학교 1∼3학년 어린이들은 컴퓨터를 이용해 블록쌓기, 화면캡처를 이용한 그림동화 만들기 놀이를 즐겼으며 디지털 카메라로 얼굴을 찍어 자신만의 티셔츠를 만들기도 했다.
초등학교 고학년들은 CCD카메라를 이용해 친구들끼리 멀티미디어 채팅을 하거나 자신의 홈페이지를 만들었다. 또 컴퓨터로 자신이 디자인한 배지를 만들기도 했다.
중학생 이상 학생들은 학회 참석자들을 인터뷰하고 학회 진행상황을 알려주는 신문을 직접 만들어 선보였다. 이 신문에는 HCI 키즈방에서 아이들이 만든 작품과 학회 소식, 키즈방에서의 생활 등이 사진과 함께 실려 있다.
HCI 키즈 커뮤니티의 실무를 맡은 한국과학기술원 곽애경 박사는 『처음에는 컴퓨터에 익숙하지 않아 잘 놀지 않던 어린이들도 조금 지나면 부모님이 와도 가지 않겠다고 할 만큼 컴퓨터에 푹 빠진다』며 『어린이들의 의견이나 창의적 아이디어를 듣고 이를 개발에 반영할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윤옥기자 yoj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