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현
△75년 서울대학교 전기공학과 졸업
△88~89년 삼성전자 PC개발실장
△90~95년 삼성전자 멀티미디어사업부 개발팀장
△96~97년 삼성전자 PC개발팀장
△현재 삼성전자 모바일개발그룹장
어느 유명 컴퓨터 제조업체의 광고를 보면 「사막의 낙타 위에서 메일을 작성하고 지구 반대편 바닷가에서 피서를 즐기고 있는 그의 친구가 메일을 읽을 수 있는 꿈과 같은 컴퓨팅 환경」이 나온다. 「이동컴퓨팅시대」를 예고하는 광고내용이다.
「이동컴퓨팅」은 그동안 인간 행동의 공간적 제약을 줄여준다는 점에서 상당히 매력적인 분야로 인식돼왔다. 그러나 최근 핸드헬드(H)PC의 등장과 「팜 파일럿」의 성공 등으로 세계 이동컴퓨팅시대가 도래했다고 말하기에는 억지를 부리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이는 이동컴퓨팅 환경을 구축하기 위한 하드웨어·네트워크 인프라·소프트웨어(SW) 등 세가지 요소가 적절히 결합돼 있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 하드웨어는 이동컴퓨팅의 주체가 되는 휴대형 컴퓨터와 이를 지원하는 각종 주변기기를 의미하며 네트워크 인프라는 유선 또는 무선으로 데이터를 전송할 수 있는 데이터전송기술과 이를 위한 각종 사회간접자본을 의미한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요소인 SW는 운용체계(OS)를 중심으로 하드웨어와 통신 인프라를 결합해 이동컴퓨터의 새로운 용도와 기능을 창출해 내는 역할을 담당한다.
몇년전 전세계 주요 언론의 토픽란을 장식하며 화려하게 데뷰했던 미국 애플컴퓨터사의 개인휴대단말기(PDA)인 「뉴튼 메시지 패드」는 당시 기술로는 불가능하리라 생각됐던 많은 것들을 구현해 관련업계로부터 극찬을 받았다.
하지만 뉴튼 메시지 패드가 가진 기술적 우수성에도 불구하고 시장에서는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애플컴퓨터사가 하드웨어의 개발에만 주력했기 때문이다. 물론 당시에도 네트워크 인프라와 뉴튼 메시지 패드용 SW도 존재했으나 이동컴퓨팅이란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기에는 기술적인 면에서 턱없이 부족했던 시기였다. 그 후로도 「GEOS」 「매직 캡」 등 이동컴퓨팅용 OS를 탑재한 휴대형 기기들이 속속 개발됐으나 이동컴퓨팅 시장을 여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아마 애플컴퓨터의 실패 사례가 각 업체의 기억에 각인돼 대규모 투자를 기피하게 한 원인이 됐다. 그러나 이후에 네트워크 분야에서 인터넷을 중심으로 비약적인 발전을 거듭하고 SW분야 역시 「윈도」라는 하나의 방향으로 집중되면서 상호 네트워크를 가능하게 해주는 표준화의 기틀을 잡아가기 시작했다. 이후 이동컴퓨팅이 새로은 틀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마이크로소프트(MS)사는 모빌컴퓨팅 시장환경 변화를 주시하면서 상당히 오랜 기간동안 모빌컴퓨팅 분야에 진출 준비를 해왔다. 애플컴퓨터를 비롯한 선발업체의 실패 사례와 오랜 PC사업의 경험을 통해 MS는 제품개발보다 더 중요한 것이 시장기반 개척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이동컴퓨팅용 OS인 「윈도CE」를 개발하는 한편 이를 OS로 하는 하드웨어 개발업체들과의 연계를 추진해 나갔다. 이후 MS는 OS를 비롯한 기본 응용프로그램을 개발하고 휴렛패커드·필립스 등 비롯한 세계 유수의 정보기술(IT)업체들로 하여금 이동컴퓨터 개발에 착수토록 유도함으로써 이동컴퓨팅 전문개발체제가 구축됐다. 이에 따라 이동컴퓨터용 OS인 윈도CE의 등장과 더불어 HPC·팜PC·오토PC 등이 순차적으로 그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이러한 원대한 사업계획을 기반으로 출발한 MS의 윈도CE는 여러가지 장점을 보유하고 있고 특히 다음과 같은 점들이 두드러진다. 첫째, 기존 「윈도95」와 외관 및 사용방법이 거의 동일하므로 사용자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고 둘째, 기존 윈도95 및 윈도NT용 SW개발과 거의 동일한 방법으로 각종 응용프로그램을 개발할 수 있기 때문에 개발자들에 대한 추가교육이 필요 없으며 셋째, 초기의 부족한 응용프로그램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현재 업무용분야에서 거의 독점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는 「MS 오피스」의 일부 기능을 축소해 내장했다.
이처럼 MS사 주도하에 각 업체들이 개발한 HPC는 기존 노트북 PC와는 비교도 안되는 1㎏ 남짓한 작은 몸체로 「휴대성」이라는 개념을 최대한 부각시켰다. 이 사업에 참여한 하드웨어 개발업체들은 공간적 제약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활동파를 주요 타깃으로 하여 언제 어디를 가더라도 휴대하여 사용할 수 있는 간편한 휴대형 PC를 만들고자 했던 것이다.
지난 96년 가을에 처음 발표된 HPC는 발표 초기의 많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으며 기대 이상으로 많은 SW개발업체들이 다양한 분야의 응용프로그램을 개발하겠다고 발표하는 등 이들 진영의 성공을 예기하는 듯 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문제는 예상치 못했던 곳에서 나타났다. 바로 이 제품을 사용해야 할 사용자의 까다로운 요구가 시작됐던 것이다.
데스크톱 PC를 압도할 정도로 고성능화된 노트북 PC의 대형 화면과 대형 키보드, 대용량 기억장치에 익숙해진 사용자들에게 급격한 초소형화는 감탄의 대상이 되기는 했지만 작아진 크기만큼 사용에 상당한 불편함을 느끼게 했다. 휴대성을 중시하다 보니 어쩔 수 없는 결과였다. 이와 함께 사용자들은 이동컴퓨터에 대해 기존 PC가 해왔던 많은 기능들을 수행해 주기를 바랐다. 사용자들은 또 사무실이나 가정에 훨씬 더 고기능의 다른 PC가 있어야 한다는 점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사용자들로서는 결국 「부가 PC」라는 개념 자체에 생소했고 또 그동안 여러가지 기능을 능숙하게 처리해주는 다재다능한 PC에 길들여져 있었던 것이다. 이동컴퓨팅 업계관계자들은 사용자의 시각에서 재고해볼 필요를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러한 사용자들의 불안감과 휴대성의 대가로 지불해야 하는 사용의 불편함으로 인해 MS사를 비롯한 세계 유수의 IT업체들이 발표한 HPC는 기대 만큼의 성공은 거두지 못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관측이다. 하지만 이동컴퓨팅시대를 열 수 있는 기반은 마련됐다고 볼 수 있다.
윈도CE는 기존 소형 OS들이 갖지 못한 많은 장점을 갖고 있다. 특히 네트워크를 통한 데이터전송이 필수적인 이동컴퓨터에서 공간을 넘나드는 네트워크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각각의 기기들이 사용하는 OS의 표준화가 가능하다면 이는 사업전개에서 엄청나게 유리한 점으로 작용할 것이다.
현재 컴퓨터 기기는 대부분 윈도95·윈도98·윈도NT를 기반으로 운용되고 있으므로 윈도NT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는 윈도CE는 바로 이 점에서 유리하다. 게다가 응용프로그램 개발자 입장에서도 기존 윈도 개발환경에서 쌓아온 경험과 기술을 그대로 적용할 수 있어 OS개발에 필요한 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
그러나 사용 편리성과 휴대성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합리적인 하드웨어 찾기가 새로운 문제로 부상했다. 휴대성을 위해서는 「작고 가벼운 것」이 당연히 중요한 요소가 되겠지만 여기에는 기술적 한계가 분명히 있게 마련이고 또 디스플레이나 키보드를 장착하고 있는 기기는 소형화만이 최선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동컴퓨팅 기기에서 제품의 기술적 척도로 생각되는 소형화보다는 진정으로 사용자의 입장을 고려한 「최적의 크기」를 발견하는 것이 중요한 사항으로 대두된 것도 이 때문이다.
삼성전자·HP·샤프 등 이동컴퓨터 제조업체들은 기존 제품보다 작아지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던 이동컴퓨터에 대한 발상을 전환해 오히려 약간 커진 A5 사이즈의 「HPC프로(Pro)」 개발에 착수했다. HPC프로는 그 이름이 의미하듯 완전히 새로운 개념의 이동 컴퓨터라기보다는 기존의 HPC가 갖고 있던 단점들을 해결하는 데서 출발했다. HPC프로는 기존 제품에 비해 기능이 많이 개선됐는데 주목할 만한 점을 들면 다음과 같다.
우선 사용성을 개선하는데 주력했다. 사용자의 불만이 가장 높았던 LCD에 대해서는 기존제품에 비해 해상도를 두배(6백40×4백80)로 향상시켰고 크기는 또한 8인치대로 대폭 늘려 사용자의 시야를 넓혀주었다.
전자계산기형의 작고 불편했던 키보드는 노트북 PC급으로 대형화해 사용자의 데이터 입력작업 효율성을 높여 주었다. 다음으로 내부성능 향상을 위해 고성능 중앙처리장치(CPU)를 탑재했다. 이는 확대된 화면 처리와 보다 향상된 응용프로그램 수행을 위해서는 필수적인 조치였다.
또 기업체 수요에 대응키 위해 기존 HPC에는 없었던 「포켓액세스」라는 이동컴퓨터용 데이터베이스(DB)를 탑재했고 기존에 내장됐던 「포켓오피스」 「포켓 아웃룩」 「인터넷 익스플로러」 등의 기능을 크게 개선했다. 게다가 기존 HPC가 「부가 PC」로서는 가격이 비싸다는 이유로 수요 위축에 한몫 했을 것이라는 분석에 원가절감 노력을 지속한 결과 1천달러 이하의 합리적인 가격대를 이루어낼 수 있었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탄생한 HPC프로는 신규 OS가 가지는 기술적 한계점을 어느 정도 극복했고 기존의 HPC가 주던 성능적 불안감이나 사용의 불편함은 어느 정도 제거할 수 있었다.
특히 윈도CE를 기반으로 한 응용프로그램 개발업체수도 급격히 늘어가고 있기 때문에 본격적인 이동컴퓨팅시대를 열어가기 위한 하드웨어분야 기반이 갖춰지게 됐다.
많은 기능 및 성능 향상을 통해 개발된 HPC프로가 이동컴퓨팅의 목표인 「인간 생활의 공간적 제약을 극복하기 위한 완벽한 하드웨어」를 실현했다고 하기에는 아직 이르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제품을 통해 본격적인 이동컴퓨팅시대에 돌입했다고 볼 수 있다. 향후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안될 속도로 발전를 거듭할 것으로 전망된다. 관련 기술발전으로 하드웨어는 더욱 얇고 가벼워질 것이며 성능은 끊임없이 개선될 것이기 때문이다. 또 각종 응용프로그램의 개발에 힘입어 이동컴퓨터의 사용용도는 한층 다양화될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 전산업 분야를 통틀어 가장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는 인터넷과 무선데이터 통신기술이 HPC·HPC프로 등 이동컴퓨터와 결합될 경우 공간적·시간적 제약을 극복하고 언제 어디서나 정보를 접하고 생성하고 발신할 수 있는 본격적인 모빌컴퓨팅시대로 접어들 것이다.
이동컴퓨팅 시장이 활짝 개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2000년대에 우리는 시공을 초월해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 효율적으로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꿈과 같은 모빌컴퓨팅을 본격적으로 즐길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