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한국전자산업 40년> 21세기엔 우리가 먼저 웃는다

 한국의 전자산업이 올해로 40주년을 맞았다. 지난 59년 금성사가 미국보다 무려 40년 늦게 진공관라디오를 생산한 이후 40년 만에 한국의 전자산업은 생산규모면에서 당당하게 세계 4위권에 진입하는 쾌거를 이뤘다. 이같은 성장신화는 시간이 흐를수록 신기술 라이프사이클이 단축되는 전자산업 발전의 특성을 놓고 볼 때 세계적으로 보기 드문 사례가 아닐 수 없다.

 눈 깜짝할 사이에 바뀌는 신기술의 위상, 철저하게 정글법칙이 적용되는 시장 흐름, 한치 앞을 예측할 수 없는 소비자 기호, 이런 것들이 바로 20세기 초 발흥해서 21세기 정보사회 토대가 된 세계 전자산업 발전사의 본색이었다.

 40주년을 맞은 한국의 전자산업은 경제적 관점에서 59년 당시에 비해 무려 7만∼8만배 이상의 양적 성장을 이룩했다. 98년 말 기준으로 볼 때 생산규모의 경우 59년 10억원 미만이던 것이 69조7천억원으로, 수출은 60년대 초반 50만 달러 미만이던 것이 3백84억4천만 달러로 급증한 것이다. 총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율도 지난 87년 섬유류를 제치고 1위로 부상한 이후 현재까지 이 위치를 지켜오고 있다.

 전자산업은 한국의 경제성장만을 주도한 것은 아니었다. 전자산업은 사회와 문화적 측면에서 21세기 정보사회 구현의 가장 확실한 물적·질적 토대를 마련해 줬다. 90년대 들어 한국 사회는 각종 전화와 가전제품, TV와 컴퓨터 등 전자정보통신 제품의 보급대수가 모두 1천만대 이상을 돌파함으로써 대체수요의 증가율이 신규수요 증가율을 압도하는 선진국형 정보사회로 진입하기에 이르렀다.

 세계적으로 전자산업은 80여년에 이르는 역사를 가지고 있다. 1987년 진공관 발명을 기점으로 삼는 전자공학(電子工學)의 발전사 측면에서 본다면 그 역사는 1백년을 족히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이같은 1백년 역사 속에서 한국의 전자산업은 선진국들에 비해 무려 60여년이나 뒤져 출발했다.

 이런 핸디캡을 딛고 일어선 한국전자산업은 지난 40년 동안 유례없는 고성장을 기록했다. 흑백TV를 중심으로 진공관이나 트랜지스터 기술의 응용 시기를 단순 비교해볼 때 금성사의 진공관 라디오가 생산되기 직전인 1950년대 말 한국의 전자산업 수준은 여러 면에서 미국에는 약 40년, 일본에는 약 30년 이상 뒤져 있었던 것으로 기록돼 있다. 그러던 것이 60년대와 70년대를 거쳐 80년대부터는 미국·일본과의 격차가 10년 이내로 줄어들더니 90년대 들어서면서부터는 반도체 등 일부 분야에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는 수준으로 비약적 발전을 꾀했다.

 기술발전 측면에서 전자산업이 정보통신산업과 결합하는 새로운 전환기를 맞은 것은 83년 정부가 「정보산업의 해」를 선포한 것이 계기가 됐다. 당장 정부가 앞장서서 정보산업·반도체·통신산업의 육성을 강조하고 나섰다. 이 과정에서 그동안 축적된 전자기술 노하우를 토대로 D램·컴퓨터·전자교환기 등의 국산화가 시도돼 오늘날 미국·일본·독일에 이어 세계 4대 전자강국의 위치를 확보하게 된 것이다.

 4대 강국으로의 발돋움은 새로운 밀레니엄을 앞두고 부존자원이 부족하고 지리적 조건이 불리한 한국에 여러가지 희망적인 메시지를 주고 있다. 1년 후 새로운 밀레니엄을 알리게 될 21세기는 정보가 물 흐르듯 흐르는 정보사회다. 정치·경제·사회·문화·교육 등 모든 분야에서 전자거래가 이뤄지며 사람에게 필요한 정보 즉 지식은 그 자체가 재화가 되는 시대가 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전자산업의 기술·생산·수출·보급에서 세계 강국들과 이미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한국으로서는 새로운 밀레니엄시대의 지구촌을 주도할 주역으로서 선택받은 것이나 다름없는 것이다. 40년에 걸쳐 이뤄진 한국 전자산업의 성장신화는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해낸 저력과 고속성장의 의지에 의한 것임은 이제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 됐다. 따라서 새로운 밀레니엄의 개막을 앞두고 한국 전자산업이 풀어나가야 할 당면과제는 명백해졌다. 성장신화를 21세기에도 지속적으로 유지·발전시켜야 하는 의무가 바로 그것이다.

 바로 이런 점에서 한국전자산업 40주년을 되돌아보는 일은 무엇보다도 소중한 것이다. 우선 차근차근 과거를 되짚어보면서 아쉬웠던 점은 적시(摘示)하고 명예로운 역사는 계승하며 동시에 원대한 포부를 세워 나가는 것이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인 것이다.

<서현진기자 jsuh@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