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9년 금성사가 진공관식 라디오를 개발하면서 시작된 국내 가전산업의 기술발전은 이후 10년 단위로 획을 긋는 발전을 이룩해 왔다.
초기였던 60년대에는 턴키방식을 통해 해외자본 및 기술을 1백% 도입해 단순조립에 의존해 왔다.
국내 가전업계는 59년 진공관식 라디오에 이어 60년에는 트랜지스터 라디오를, 65년에 냉장고를, 그리고 66년에는 진공관식 흑백TV를 잇따라 생산해내는 등 60년대에는 품목다양화가 급속히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 시기에는 독자적인 기술기반이 전무했기 때문에 생산설비에서 제품설계, 부품 등에 이르기까지 대부분 해외에서 턴키 베이스로 도입했으며 국내업체들은 저임금을 이용한 단순조립 및 대량생산체제로 경쟁력을 유지하는 데 만족해야 했다.
그러나 산업규모가 일정수준에 이르고 제품생산 및 개발경험도 어느 정도 쌓인 70년대 들어서는 기술제공업체로부터 기술을 라이선스받는 조건으로 주문자상표로 완성품을 제작해 저가로 공급하는 OEM 생산단계로 발전했다.
74년 아남나쇼날이 일본 마쓰시타로부터 기술라이선스를 받아 컬러TV를 국내에서 생산하고 이를 일본으로 OEM 판매하는 새로운 형태의 사업을 시작한 것이 계기다.
이후 금성사·대한전선·삼성전자가 아남나쇼날과 유사한 방식으로 77년에 잇따라 일본업체들과 제휴해 컬러TV의 생산을 개시했으며 79년에는 일본빅터(JVC)가 특허를 보유하고 있던 VCR도 국내에서 생산하기 시작했다.
70년대에 국내업체들이 OEM사업을 전개하게 된 것은 대량생산기술은 상당 수준 터득했지만 독자적인 기술개발력과 시장 노하우를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당시 기술라이선스를 통해 국내업계가 생산한 제품은 국내에서는 수요 기반이 전무한 제품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80년대 들어 컬러TV 방송개시를 계기로 내수기반을 확보할 수 있게 됐고 OEM 거래로나마 해외시장에 대한 경험도 쌓은 국내업계는 독자적인 판매망을 갖추기 위해서는 자립기술 확보가 필수적이라고 판단, 연구소 설립과 필요한 기술의 도입에 적극 나섰다.
이같은 기술개발 노력으로 국내 가전업계는 비록 세계적인 기술표준화에 뒤처지긴 했지만 핵심칩을 제외하고는 독자적인 회로설계기술과 부품국산화에 급진전을 이루어는 데 성공했다.
가전업계는 80년대에는 컬러TV·VCR·냉장고·세탁기·전자레인지 등 5대 가전품목뿐만 아니라 첨단제품인 콤팩트디스크플레이어(CDP), 디지털오디오테이프(DAT)에 이르기까지 기본특허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독자기술을 확보해냈다. 90년대에는 국내업계의 기술력이 한층 성숙돼 핵심기술분야를 선도해나가는 수준으로까지 올라섰다.
국내업계가 지난 97년 개발에 성공하고 98년에 상품화한 고선명(HD) 디지털TV의 경우가 대표적인 예다. LG전자는 디지털 방송신호 전송부를 비롯한 HDTV 핵심칩세트를 세계 최초로 개발, 이를 동종업계에 공급하기에 이르렀으며 삼성전자는 세계 처음으로 실제 디지털방송을 수신할 수 있는 일체형 제품을 상품화해내는 저력을 보여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 가전업계는 부품산업의 취약으로 인해 핵심 요소기술에서는 여전히 경쟁대상국인 일본에 비해 2, 3년 정도 뒤처져 있어 이에 대한 대책마련이 시급히 요구되고 있다.
<유성호기자 sunghyo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