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18년 전인 81년 4월 미국 남부 앨라배마주의 한적한 소도시 헌츠빌에서 금성사의 컬러TV와 전자레인지를 생산하는 GSAI(GoldStar America Inc.)가 설립됐다. GSAI의 설립은 전자업계로서는 물론이고 우리나라 최초의 해외 현지공장으로 세계 속으로 뻗어가는 국내 전자산업을 상징하는 하나의 기념비적인 사건이다.
GSAI는 설립 이후 TV생산을 위한 제1공장의 건설에 착공, 그 다음해인 82년 7월부터 컬러TV생산에 착수하면서 전자제품의 해외생산시대를 열었다. 82년 10월에 가진 공장준공식에 당시 구자경 그룹회장은 물론 허신구 금성사 사장, 금진호 상공부 장관이 직접 참여했다는 것은 GSAI가 국내 전자산업에 갖는 의의를 단적으로 설명해준다.
GSAI로부터 시작된 국내 전자산업의 해외진출은 80년대 태동기를 거쳐 전자산업이 LG전자·삼성전자·대우전자 등 종합전자 3사체제로 재편되는 90년대 초반에 본격적으로 가속화되면서 현재 전세계 60여개국 70여개 공장에서 국산브랜드를 부착한 전자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80년대 들면서 국내 전자업체들이 해외진출을 시작한 것은 물론 수출을 확대키 위한 것이었음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한국동란 이후 개발도상국에 주어지는 일반특혜관세(GSP)에 힘입어 미국과 유럽시장을 개척해온 국내 전자산업은 갈수록 높아지는 무역장벽을 피하기 위한 수출확대 전략의 하나로 현지에서 직접 전자제품을 생산하기 시작했던 것.
LG전자의 GSAI나 삼성전자가 82년 9월부터 가동에 들어간 포르투칼공장 등 해외진출 태동기였던 80년대에 세워진 대부분의 해외 현지공장들은 바로 수출확대에 가장 큰 걸림돌이던 신보호무역주의와 경제블록화를 극복하기 위한 우회수출기지를 구축하는 데 초점이 맞춰진 셈이다.
그러나 이같은 국내 전자업체들의 해외진출은 90년대 들어서 그 성격이 근본적으로 바뀌기 시작한다. 90년대 들어 국내 전자업체들은 높은 임금과 세금, 비싼 공장부지, 행정규제 등으로 인해 국내에서 생산한 제품으로는 수출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함에 따라 이를 타개하기 위한 수단으로 해외진출을 가속화했다.
이에 따라 해외진출 대상국가도 과거 미국이나 유럽 등 선진국이 아닌 비교적 인건비가 저렴한 동남아·중국·중남미 등 개발도상국과 기업인프라가 구비된 지역을 선호했다.
현재 해외공장의 80% 이상이 90년대 들면서 세워지기 시작해서 해외진출 확대기로 규정할 수 있는 이 시기의 해외진출은 과거 80년대와는 커다란 차이를 보이고 있다.
시너지효과를 높이기 위해 단독기업이 진출해 단일제품을 생산하는 방식에서 탈피, 한공장에서 컬러TV·전자레인지·VCR 등을 같이 생산하거나 가전제품·반도체·통신기기 등 연관제품을 생산하는 이른바 해외생산의 복합기지화가 본격적으로 추진됐던 것이다. 또 원가격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부품업체와 동반해 현지에 진출하는 것도 하나의 큰 흐름으로 정착됐던 것도 이 시기의 주요 특징의 하나로 꼽을 수 있다.
80년대 초반 시작한 국내 전자업체들의 해외진출은 90년대 들면서 만개했지만 90년대 말 들어서는 무리한 투자에 따른 부작용을 겪어야만 했다. 현지 시장의 악화와 무리한 해외사업확대에 따른 출혈은 오히려 본사의 부실을 몰고온 직접적인 원인으로 작용했으며 국내 경제가 IMF체제로 넘어가면서부터는 오히려 부실한 해외공장들을 정리해야 하는 구조조정기를 맞게 된다.
이제 국내 전자업체들은 해외 현지공장의 통폐합이나 전략적 재배치, 생산품목의 제조정은 물론 철수 등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하면서 과거 무리한 투자에서 빚어진 문제들을 해결하고 수익 우선의 새로운 해외경영 전략수립에 안간힘을 쏟고 있다.
<양승욱기자 swy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