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전자산업은 일약 세계무대에 본격 진출한 새로운 변혁기였다. 컬러TV 등장과 80년대 중반부터 일기 시작한 컴퓨터 바람 그리고 88올림픽을 전후해 본격적인 세계화시대로의 진입 등 국내 전자산업의 부흥기라 여겨질 정도로 호재가 많았지만 한편으로는 수입자유화 등 잇따른 시장개방조치와 선진국의 지적재산권보호 압력에 따라 국내업체들이 고전하는 등 명암이 교차한 시기였다.
국내 가전업체들을 중심으로 이뤄진 해외공장설립 붐이나 전자산업이 국가의 중추산업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게 업계가 대대적인 연구개발 투자에 나섰던 것도 이 시기였다. 하지만 80년대 말 불어닥친 우루과이라운드(UR)협상은 안방을 보호한 채 외국시장 공략에 나섰던 국내 기업들에 상당한 시련을 가져다주기도 했다.
80년 일본 노무라연구소에 의해 조사된 「80년대 전자공업발전대책조사」를 토대로 「전자공업 장기육성계획」이 수립돼 전자산업의 발전 토대를 만들었으며 81년 전자진흥공업법의 개정으로 금성사(현 LG전자)·삼성전자·대한전선 등으로 삼원화됐던 국내 전자업계는 현대그룹의 전자사업 참여와 대우그룹의 대한전선 인수 등으로 업계판도에 큰 변화가 일기도 했다. 전자산업에 대한 투자 역시 크게 늘어 80년 5%에 그쳤던 제조업에서 차지하는 전자산업의 투자비중이 불과 4년 후인 84년 25%로 늘어나는 등 국내 투자를 주도해나가기 시작했다.
특히 86년 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은 외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뒤졌던 방송기기·디스플레이장치·정보통신기기·전산화시스템 등 국산제품의 기술을 세계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이를 세계에 알리는 데 크게 기여했다. 특히 70년대 외국산 제품의 조립생산방식으로 싹트기 시작한 컴퓨터산업은 81년 삼보컴퓨터 설립과 함께 처음으로 PC를 자체개발하고 금성사가 마이티기종을 생산함으로써 본격적인 국산 컴퓨터시대를 열었다. 이를 계기로 컴퓨터산업의 국산화 전략이 수립, 추진됐다. 이와 함께 자본금 2조5천억원 규모의 초거대 통신서비스업체인 한국통신이 공사화돼 새롭게 출범했으며 정보사회를 위한 정보산업육성방안이 마련돼 본격적인 정보화 투자가 이뤄졌다.
그러나 전자산업의 급성장은 급기야 외국에서 통상마찰을 불러일으켜 80년대 후반부터는 미국·유럽·캐나다 등으로부터 전자레인지·컬러TV·CDP·비디오테이프를 비롯한 주요 수출제품이 반덤핑제소를 당하는 등 서서히 수출시장에서 제동이 걸리기 시작했다. 물론 정부가 이를 해소하기 위해 산업정책을 보호위주에서 경쟁력촉진 산업구조로 개편하면서 단행한 수입자유화조치가 경쟁력 없는 중소기업들에 어려움을 주기도 했다.
<정창훈기자 chju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