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2년 중국 톈진 유학생이던 상운이란 사람이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소개한 전화기는 1895년 광화문의 옛 사역원 자리에 한성전보총국을 개국하고 한성과 제물포간 전신시설을 처음으로 개통하면서 그 첫발을 내딛는다.
1894년 한성전보총국이 최초의 전화기를 시험하고 2년 뒤에는 궁내부에 행정전화 형태로 덕률풍이라 불리는 자석식 전화가 개통됐다. 1902년 한성과 인천간 시외전화가 개통되고 일반인도 전화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한성전화소에 시내교환업무가 개시됐다.
그러나 우리나라 전화의 초기역사는 외세의 침입과 함께 시작하고 있다. 일제는 1908년 경성우편국에 최초의 공전식 복식전화기를 설치, 수화기만 들면 교환수와 연결되는 시스템을 선보이고 한일합병이 이뤄지던 해에는 조선통신부에 통신국을 설치하고 본격적으로 국내통신에 개입하게 된다.
중국(24년), 일본(33년)과의 국제전화가 개통되고 35년에는 다이얼식 전화가 도입돼 자동식 교환기시대가 열린다. 48년 정보통신부의 전신인 대한민국 체신부가 설립되면서 통신주권을 본격적으로 행사하게 되며 이의 일환으로 52년에는 국제전기통신연합(ITU)에 가입하게 된다.
전쟁 등 혼란을 거듭하던 50년대를 지나 60년대부터 우리나라는 통신기술의 급속한 진전을 보게 된다. 62년 모터스위치를 사용해 교환속도를 대폭 개선한 EMD교환방식을 독일 지멘스사로부터 도입했으며 이는 전자교환기로 대체되기까지 우리나라 시내전화교환기의 주력기종이었다.
67년에는 국제통신위성기수인 인텔샛에 가입, 시내통화의 자동화 및 수동즉시화를 가능하게 하는 마이크로웨이브 통신회선을 개통하게 된다. 이같은 기술진전과 통신회선수요의 증가에 따라 69년에는 가입전화가 50만대를 돌파하면서 2자리 국번이 등장한다.
경제개발에 박차를 가했던 70년대 유선통신분야는 전화가입 적체현상이 나타나는 등 눈부신 발전을 거듭한다. 70년 서울·일본간 최초의 국제반자동전화가 개통되고 114안내전화서비스가 개시되며 71년에는 교환원없이 직접 시외전화를 연결하는 일명 DDD라 불리는 장거리자동전화가 서비스된다.
80년대 들어 우리나라 통신기술은 비약적인 성장세를 구가한다. 군통신 등 제한적인 범위에서만 사용되던 무선통신도 82년 무선호출사업이 시작되고 84년에는 한국이동통신서비스가 설립되면서 본격적인 성장기를 구가한다. 카폰에 이어 88올림픽에 맞춰 휴대폰이 선보이며 이는 96년 CDMA 이동통신의 상용화로 빛을 본다.
한국전기통신공사와 한국이동통신서비스로 대표되던 통신서비스는 90년대 들어 데이콤·온세통신·신세기통신·LG텔레콤·한솔텔레컴 등 경쟁체제로 접어들면서 유무선통신기술의 대중화로 이어졌다. 여기에 95년 자체적으로 무궁화위성발사에 성공하면서 위성통신 및 방송시대까지 화려하게 개막했다.
<조시룡기자 srch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