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한국전자산업 40년> 인터뷰.. 서정욱 SK텔레콤 부회장

 컴퓨터 정보통신분야에 종사하는 사람치고 그의 이름 석자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정보통신을 잘 모르는 젊은 네티즌들에게조차 그의 이름은 국내 통신산업의 산 역사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인 그는 한국 정보통신 역사의 거장이라는 생각보다 묵묵히 자기 소임을 다하는 무명용사의 마음을 안고 산다. 그에게 있어 숱한 불면의 밤을 보내며 끊임없이 도전하고 연구해온 무명의 과학기술자만큼 소중한 존재는 없기 때문이다.

 『이름 없이 생색내지 않으며 자기 소임을 다해온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들이 없었다면 한국의 정보통신 역사는 아마 처음부터 다시 써야만 할 것입니다.』

 34년 식민지 환경에서 태어나 6·25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그는 폐허가 된 조국의 아픔을 가슴에 묻은 채 묵묵히 과학기술자로서 꿈을 키워왔다고 한다.

 한 사람의 의미있는 과학자가 돼야겠다고 다짐을 굳힌 것은 대학졸업 후 미국 유학시절. 선진국과 달리 낙후된 조국의 정보통신산업을 떠올리며 그는 한국 정보통신산업의 역사이기보다는 한개의 주춧돌이 돼야겠다고 마음먹었다.

 70년 귀국 후 국방과학연구소로 투신하며 그는 「국가가 나를 부른다」는 생각으로 혼신의 힘을 다해 연구에 몰입했다. 80년대 TDX와 타이컴 주전산기에 열정을 쏟아부으며 그는 말 그대로 「한눈 팔 시간」이 없었다. 과학기술부(당시 과학기술처) 차관과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을 거쳐 SK텔레콤으로 자리를 옮긴 이후 그는 2년여의 시간을 「피가 마르는 나날」이었다고 회고한다.

 그의 인생에서 사(士)·농(農)·공(工)의 시기를 지나 상(商)의 시기에 돌입한 시간이었다고 그는 회고하며 CDMA 디지털이동전화 연구에 몰입했던 그 시절, 「융통성이 없다」는 지적을 숱하게 받았다고 설명했다.

 『CDMA에 대한 각종 불신과 악성 전망들이 난무한 가운데 많은 과학기술자들이 가슴 한편에 상처를 묻은 채 연구에 몰입했습니다. 돌이켜 생각해봐도 그 당시 믿고 따라줬던 사람들만큼 고마운 사람들이 없습니다.』

 올해로 그의 나이 65세. 영광보다는 회한과 자책이 먼저 떠오르는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그는 요즘 끝없는 열정과 사명감으로 함께 달려온 무명과학자들의 이야기를 모으고 있다. 함께 해온 사람들에 대한 감사와 보답의 마음을 표현하며 「무명용사에게 바치는 글」을 기록해 책으로 펴낼 생각이다.

 앞으로 남은 시간 기회가 된다면 교육의 길을 걸으며 또 한번 선비가 되고 싶다는 게 그의 바람이다. 선배 과학기술자로서 후배 과학자들에게 바라는 바는 「비전은 크게 갖되 일은 꼼꼼하게 하라」는 것. 원대한 꿈을 안고 미래를 향해 달려가더라도 항상 「고귀한 책무」를 잊지 말라는 의미다.

 마지막으로 그는 시(時)와 운(運)의 중요성과 함께 끈질긴 승부욕을 역설했다. 『양보하는 마음(After You!)도 중요하지만 정보통신업계에서 2등은 없다.』

<김윤경기자 ykkim@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