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한국전자산업 40년> 통신부문.. 통신서비스

 우리나라에서 통신서비스는 48년과 81년을 분기점으로 하고 있다.

 먼저 구한말부터 48년 대한민국 체신부 설립까지의 기간은 통신서비스의 맹아기다. 1885년 설립된 한성전보총국이 1895년 선보인 초기적 통신서비스는 대중화와는 거리가 먼 행정통신서비스였으며 전화기 형태도 손으로 자석발전기를 돌리면 호출된 교환원이 연결해주는 형태였다.

 이후 1902년 공중 전화의 시초로 한성전화소가 설립되는 등 일반인에게 첫선을 보였으나 이용자는 특권층에 한정됐을 뿐이었다.

 1905년 일제가 통신권을 빼앗으면서 시작된 일제시대의 통신서비스는 조선총독부 내에 통신국이 설치되는 등 식민지 지배 및 아시아 침탈의 도구로 사용됐다.

 그러나 이 기간중 중국∼일본간 국제전화 개통, 공전식 전화기 및 자동식 교환기의 개통 등 상당한 발전도 이뤄진다. 특히 교환원이 필요없는 자동식 교환기는 수용능력을 크게 향상시킴으로써 통신서비스의 초기적 대중화를 이루어냈다.

 48년 대한민국 정부에 체신부가 만들어지면서 우리나라의 통신서비스는 그 밑그림을 그려나가지만 6·25가 발발함에 따라 통신은 사각지대로 변모한다. 60년 서울 용산전화국에 독일 지멘스사로부터 도입한 EMD교환기 2천회선이 개통되면서 시내전화서비스는 발전의 단초를 잡게 되며 62년에는 옥외 무인공중전화가 등장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69년 50만회선에 불과하던 전화가 75년에는 1백만으로 늘어났고 서비스 내용도 장거리자동전화(DDD), 114 안내전화, 버튼식 전화기 도입, 세자리국번 변경, 팩시밀리서비스 등으로 다양화한다.

 81년 정부는 체신부에서 전기통신사업을 분리해 오늘날의 한국통신으로 통칭되는 한국전기통신공사를 발족시키면서 통신서비스는 민영화의 길을 걷게 되고 서비스 내용도 유선중심에서 무선으로까지 발돋움했다.

 한국전기통신공사 설립이후 전화는 대중화를 본격적으로 시현하게 되는데 84년 5백만, 87년 1천만, 97년 2천만 가입자로 발전했다.

 82년 무선호출이 선보이며 84년에는 한국이동통신서비스의 설립과 함께 본격적인 이동통신서비스시대가 열렸다.

 카폰으로 불리는 셀룰러 방식의 아날로그 휴대폰이 상용화된 데 이어 88올림픽과 함께 휴대폰은 최고의 상품으로 자리잡는다. 90년대에는 양적·질적 측면에서 우리나라 통신서비스가 최고의 성숙기를 맞게 된다.

 유선통신분야에서는 한국통신에 이어 데이콤·온세통신·하나로통신 등 역무별로 다양한 사업자가 등장하고 최고의 성장산업으로 각광받은 이동통신분야에서는 이동전화 5개를 비롯해 수없이 많은 사업자가 등장,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다.

 통신서비스가 생활 속에서 자리잡으면서 유선전화 가입자는 97년 2천만 가입자를 돌파하면서 두사람당 1명이 전화를 갖게 되고 이동전화 가입자 역시 현재 1천5백만을 향해 달리고 있다.

 통신서비스는 이에 그치지 않고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95년 무궁화 1호위성이 발사되면서 위성통신시대가 개화된 데 이어 위성휴대통신서비스가 준비되고 있으며 이동전화에서 데이터·동영상 서비스가 가능해지는 차세대 이동통신(IMT 2000)도 시간문제다.

 21세기의 통신서비스는 멀티미디어로 진화할 태세다. 80년대 초까지는 음성 위주의 서비스였고 85년 이후 음성전화에 데이터통신이 접목돼 새로운 서비스 발전을 도모했다면 21세기부터는 음성·데이터·동영상이 혼재하는 서비스시대로 나아갈 전망이다.

<조시룡기자 srch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