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한국전자산업 40년> 방송산업 성장과정

 우리나라 방송산업의 태동은 일제하에서 라디오방송국으로 개국한 경성방송국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이렇게 시작된 라디오방송은 해방 이후 50년대말까지 수신기 보급저조 등의 탓으로 본격적인 대중매체로 성장하지는 못했다.

 국내에서 라디오 등 방송매체가 대중매체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주기 시작한 것은 60년 이후라는 게 방송계의 정설이다. 5.16 이후 정부는 지난 50년대 중반부터 시행해오던 유선방송사업, 즉 앰프촌(일명 라디오촌)의 확대를 강력히 추진했는데 앰프촌은 현재의 중계유선방송으로 맥이 이어지고 있다.

 당시 정부는 현행 「유선방송관리법」의 모태인 「유선방송 수신관리법」을 61년 공포해 앰프촌사업의 범위와 앰프방송의 운영범위 등을 규정, 농어촌에 앰프·스피커·라디오 등의 매체를 보급하는 데 열을 올렸다.

 당시 자료에 따르면 앰프촌의 스피커는 54만대까지 보급되다 67년을 기점으로 줄어드는 대신 라디오 보급이 꾸준하게 증가, 71년에는 3백40만대에 달하게 됐다.

 TV방송도 6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대중적인 영상물로는 영화가 유일했던 시대에 TV방송이 대중들에게 선보여 영상시대를 열었다.

 그러나 수상기 보급이 극히 저조한 상태여서 TV가 영향력 있는 매체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TV수상기는 KBS가 TV방송을 개시한 지난 62년 1월 약 8천대에 지나지 않았으나 정부의 적극적인 도입정책으로 62년말 2만대로 증가했다.

 한편 60년대초에는 방송관련 법규와 규제기구가 기본적인 틀을 갖추었다. 61년 12월 제정된 전파관리법을 시작으로 62년에 방송위원회의 전신인 방송윤리위원회가 생겨 강원용 현 방송개혁위원회 위원장이 초대위원장을 맡았으며, 63년 12월에는 방송법이 제정돼 향후 방송규제의 기본적인 지침이 됐다.

 60년대 이전까지 국내 방송은 사실상 국영방송 중심의 체제였다. 그 이전에 기독교방송과 RCA가 제휴해 국내 처음으로 TV방송을 시작한 HLKZ TV 등 민영방송이 있었으나 본격적인 민영방송시대라고 보기는 힘들다.

 그러나 59년 부산문화방송의 개국을 계기로 민영방송의 설립이 증가했는데 이는 5.16 이후 정부의 민영방송 허가정책에 기인한 것이었다. 이때 탄생한 것이 동아일보의 동아방송, 라디오서울, 동양텔레비전(동양방송) 등이다.

 60년대 후반부터는 TV방송이 라디오에 이어 점차 위력적인 매체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61년말 개국한 KBS TV와 64년의 동양방송, 69년 MBC TV의 개국으로 국내 지상파TV방송은 국영방송인 KBS와 민영방송인 동양 및 MBC가 경쟁하는 체제로 접어들게 됐다.

 또한 65년을 전후해 국내 방송은 본격적인 복합매체적인 성격을 보이기 시작했다. 65년 삼성그룹 계열의 동양방송이 AM라디오·FM라디오·TV를 함께 운영, 복합매체로 성장했으며 MBC 역시 69년 FM라디오와 TV국을 설립, 공동 운영했다. 국영방송인 KBS는 68년 정부조직법 개정 이후 서울중앙방송국·서울국제방송국·서울텔레비전방송국을 통합, 하나의 방송사로 거듭났다.

 70년대는 TV가 본격적인 대중매체로 자리잡은 시대이기도 하다. MBC와 TBC가 광고방송을 실시, 광범위한 광고시장을 형성해 갔으며 프로그램도 드라마·스포츠·쇼 등의 오락프로그램이 편성의 전면에 등장, 대중매체적인 성격을 분명히했다. TV보급률도 점차 높아졌다. 70년 6.4%(38만대)에 불과하던 세대당 보급률이 79년에는 78.5%(5백70만대)에 달했다.

 또한 70년대는 위성방송시대가 열린 해로 기록되고 있다. 70년 금산 위성지구국이 개통되고 인텔셋을 통한 TV 위성중계가 가능해졌다. 이를 통해 위성지구국이 설치된 세계 어느 나라와도 방송프로그램의 교환, 스포츠중계 등이 가능해졌다.

 80년대의 방송은 방송사에 대한 대대적인 통폐합 조치로 국영적 공영방송이 득세한 시기였다.

 동양방송이 KBS2로 흡수되고, 교육방송은 KBS 3TV로 신설됐다. 또 KBS가 MBC의 주식 70%를 인수했다. 라디오방송도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 휘말렸는데 동양방송·동아방송·서해방송·전일방송·한국FM 등이 KBS로 흡수되고 CBS의 보도기능은 금지됐다.

 당시 KBS와 MBC는 TV광고의 컬러화, 지방방송망의 확충, 86아시안게임·88올림픽 등 대형 이벤트 개최에 힘입어 방송광고 매출액이 81년 1천1백97억원에서 90년에는 6천9백35억원으로 급증했다. 특히 KBS는 지난 69년 이후 중단됐던 광고방송을 재개해 국내 방송광고시장을 MBC와 양분했다.

 방송규제기구도 81년 종전의 방송윤리위원회가 방송위원회로 확대 개편되면서 오늘날과 유사한 성격을 띠기 시작했다.

 80년대 후반은 공영방송체제가 90년대의 공민영체제로 이전하는 과도기였다는 평가도 있다. 87년을 기점으로 기존의 공영 독과점체제는 점차 자율경쟁체제로 이전하고, 90년 SBS의 탄생을 기점으로 붕괴됐다. 이어 평화방송·불교방송·교통방송 등 특수방송국이 잇따라 개국했으며 지역민방과 케이블TV방송이 허가됐다.

 케이블TV방송의 개국은 우리나라의 방송환경이 다매체다채널시대로 급속도로 전환하는 것을 의미했다. 비록 케이블TV방송이 전송망의 미비, 프로그램 공급사업자들의 경영위기 등으로 현재 성장세가 멈췄으나 향후 본격 도입될 예정인 위성방송과 함께 다매체다채널시대를 주도해가는 쌍두마차가 될 것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그렇다면 앞으로의 방송환경은 어떻게 변화해갈까. 2000년대에 들어서면 우리나라도 종전의 지상파 위주에서 탈피해 위성방송과 케이블을 통해 제공되는 현재보다 훨씬 세분화된 채널을 시청할 수 있는 「다채널시대」의 묘미를 한층 만끽할 수 있게 될 것으로 보인다.

<장길수기자 ksja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