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한국전자산업 40년> 컴퓨터부문.. 주변기기

 67년 본격적으로 국내에 도입된 컴퓨터와 달리 주변기기 보급은 상당한 시차를 두고 진행됐다. 컴퓨터 자체나 활용업무가 통계와 계산에 집중된 탓에 주변기기의 종류나 사용처가 협소했기 때문이다.

 현재 PC를 비롯한 서버컴퓨터에서 가장 대표적인 입력장치로 사용하는 마우스는 국내에서 컴퓨터 보급이 본격화했던 67년보다 1년 늦은 68년에야 미국에서 고안돼 82년 최초로 개발됐으며 CD롬 드라이브 역시 86년에 들어서야 레드북 규격이 합의됐다.

 국내 주변기기 제품 개발은 70년 말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가 한글 라인프린터를 개발한 것이 기점이 된다. 67년 IBM컴퓨터가 도입될 때만 하더라도 한글처리에 대한 해결책이 없어 컴퓨터에서 처리한 문서를 영문상태로 출력한 다음 한글로 번역, 이 원고를 인쇄소에서 재편집하는 과정으로 처리됐다.

 당연히 문서출력의 난점을 해결해야 한다는 의견이 분분했고 KIST가 개발에 착수, 70년 말에 국산제품을 내놓았다. 비록 영문활자를 한글로 교체한 수준이었지만 분당 4만8백자를 인쇄하는 프린터로 전신전화요금 전산화에 혁혁한 공로를 세우게 된다.

 개인용도의 프린터는 이보다 훨씬 늦은 80년대 중반에 출현, 90년 삼성HP(현 한국HP)가 최초의 개인용 잉크젯프린터인 데스크젯 500을 도입해 보급하면서 프린터가 PC의 대표적인 주변기기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프린터와 더불어 모뎀도 70년 국내 컴퓨터 도입과 함께 개발이 추진됐다. 70년 4월 경제기획원 예산국이 예산업무 전산화계획 보고를 위해 설치한 CDC 200 UT 배치터미널에는 미국 릭슨사의 3백bps급 모뎀 「PM 23A」가 통신장비로 장착됐는데 이것이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도입된 데이터통신용 모뎀으로 기록되고 있다.

 이후 KIST내 데이터통신그룹은 온라인 터미널을 이용, 대용량 호스트컴퓨터 서비스를 전국적으로 확대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추진, 74년 3백bps급 국산모뎀 시제품 완성했다. 이 시제품 개발경험은 이후 콤텍시스템과 데이터콤의 창업으로 국내 모뎀산업의 기틀을 마련하는 계기가 됐다. 개인용 모뎀으로는 89년 삼성전자가 체신부 형식승인을 획득하면서 「PCFAX」 제품을 출시한 이후부터이며 89년을 기점으로 팩스모뎀 제품개발이 쏟아졌다.

 주변기기시장은 80년대 PC시대 개막과 더불어 확대일로를 걷게 된다. 국내에서는 80년대 중반 정부주도의 국산화시책이 시행됐고 CRT와 모뎀 등의 주변기기를 중심으로 우선 가능한 분야부터 국산화하자는 분위기가 팽배해지면서 오리콤·삼성전자·금성반도체(현 LG정보통신)·동양정밀·삼성전관 등이 우선적으로 모뎀과 CRT모니터 시장에 뛰어들었다. 삼보전자엔지니어링(현 삼보컴퓨터)와 희망전자·홍익컴퓨터·석영전자·브레인컴퓨터·에이스컴퓨터 등 조립 PC 1세대 회사들이 설립된 시기도 이때다.

 이 시기부터 PC보급이 확대되면서 컴퓨터 보급의 본산지였던 청계천 일대를 중심으로는 8비트 방식인 「청계천한글」 카드가 공급됐으며 한글카드와 마우스 등이 다른 어떤 주변기기에 앞서 개발돼 보급됐다.

 특히 삼성전자·금성사(LG전자) 등은 플로피 디스크 드라이브(FDD)와 하드 디스크 드라이브(HDD) 개발을 추진해 국산제품을 공급했으며 이 가운데 삼성전자는 HDD 사업을 현재까지 추진해오고 있는 상황이다. 이와 함께 삼성전자·오리온전기·LG전자 등 전자업체들은 80년대 말 일제히 컴퓨터의 핵심장비인 모니터 생산에 본격 나서 현재 대만에 이어 세계 2위 모니터 생산국가로 등장해 컴퓨터 주변기기 분야에서 선진국과 어께를 나란히 할 정도의 위치에 올라섰다.

<이규태기자 kt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