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한국전자산업 40년> 산전부문.. 중전기기

 일제시대에 태동한 우리나라의 중전기기 산업은 식민지 정책상 필요한 부분만 집중 육성, 기계공업 및 금속공업 등과 연관을 맺지 못하는 등 불균형 성장을 해왔다.

 지난 45년 광복을 맞이했지만 독자적인 중전기기 산업 발전은 생각할 수도 없었으며 6·25동란과 남북 분단으로 원자재 공급원을 잃게 된 중전기기 산업의 침체는 여전했다. 당시 전기업계는 백열전구·전선·변압기 등만 간신히 제조하면서 겨우 명맥을 이어가는 수준이었다.

 이런 가운데 50년대 중반 정부의 산업부흥책이 발표되면서 산업기계공업은 수리·가공·부품제작 수준에서 벗어나 간단한 완제품을 생산하기에 이른다. 59년 이천전기가 22㎾급 변압기와 3백70㎾용 모터를 개발했고 서울전기산업 등이 통신용 정류기, 이화전공이 전력용 자동전압조정기와 정류기를 생산하게 된다.

 국내 중전기기 산업이 기틀을 잡게 된 것은 60년대초 경제개발 5개년 계획과 맥락을 같이 한다. 정부의 산업 투자확대가 이뤄지면서 국민소득의 향상과 경기호전으로 가전기기 및 산업용 기기의 수요도 증가한다.

 업계도 양적 확대를 도모하는 한편 국산화 비율을 높이고 신제품을 개발해 생산량을 늘리기 시작했다. 그 결과 69년 1백54㎸용 변압기·개폐기·발전기 등이 개발된다. 이는 업체별로 생산시설을 정비한 것은 물론 정부 차원에서 외산 제품의 수입보다 국내 산업을 육성한 결과로 평가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60년대는 전력산업의 부진과 관련 공업의 낙후 등으로 전기산업의 수급기반이 매우 취약했던 것으로 평가된다

 70년대 들어 중화학공업에 대한 투·융자 정책이 시작되고 중전기기 산업도 본격적으로 발전의 기반을 마련하게 된다. 중전기기 양산체제가 구축되고 기존의 경전기기 중심에서 중전기기 중심의 산업계 개편이 이뤄진 것도 이 시기다.

 70년대 후반까지 계속된 시설투자 붐으로 대용량 중전기기 및 발전설비의 국산화가 크게 진전됐으며 특히 고급기술이 필요한 3백45㎸급 변압기를 비롯, 초고압 대형기기를 생산함으로써 우리나라는 세계적인 중전기기 생산국으로 부상했다.

 70년에는 변압기 외에 전동기·유입차단기·전자개폐기·적산전력계 생산이 급증하는 등 전기기 분야에서 65년에 비해 10배 이상의 생산액을 보여주게 된다.

 80년대 중반 이후 유가 인하를 비롯한 3저 현상이라는 호재에도 불구하고 중전기기업계는 다른 업종에 비해 활황의 바람을 타지 못했다.

 다만 전철전원용 직류 1천5백V, 용량 3천㎾급 전원장치를 비롯한 각종 컨버터와 인버터가 생산됐고 전철용 트랙션모터·제어용 저항기의 국산화도 이 시기에 이뤄졌다. 82년 경남 창원에 한국전기연구소가 준공되면서 이 연구소를 중심으로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각종 전력용기기의 연구개발 및 기술이전 등의 노력이 본격적으로 이뤄진다.

 80년대 후반기는 중전기기 산업의 투자 조정기로 볼 수 있다. 정부는 기술개발촉진을 통한 중전기기 산업의 대외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초고압 중전기부문 산업합리화 조치를 발표했다. 그러나 기술적 진보나 산업 경쟁력 향상과는 거리가 멀었다.

 정부의 보호 아래 경쟁력이 미흡한 상태로 성장해온 우리나라의 중전기기 산업은 반도체·전자통신 등 첨단기술이 접목되면서 신속하게 변화하고 있는 세계시장의 기술추이를 따라잡기가 힘에 부쳤다.

 정부의 내수시장 보호정책 울타리 안에서 경쟁력을 키우기보다 관급 물량에 의존해 온 후유증으로 시장개방에 대처하기에는 너무 쇠약해져 버린 것이다. 특히 외국기업과 경쟁의식이 낮은 상태에서 단기간에 상품화 위주의 생산을 서두르면서 외국기술에 의존하는 관행을 벗어나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이런 가운데 97년 말 국제통화기금(IMF) 체제로 중전기기업계는 더욱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됐다. 산업 전반에 걸친 투자 감소와 동남아시아의 금융불안으로 수출까지 악화돼 중전기기 산업의 효시격인 이천전기가 퇴출되는 등 적잖은 업체들이 부도사태를 당했다. 관납물량에 의존한 울타리에 안주해 온 국내 중전기기 산업이 겪을 수밖에 없는 필연적 결과였다.

 정부와 업계에서는 장기적으로 산업의 국제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산업기반을 확충하고 기술 수준을 높이며 생산 전문화 정책을 마련하는 등 우리나라를 중전기기 생산의 거점으로 만들기 위한 준비를 서두르고 있다. 이렇게 하는 것만이 세계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이라는 현실을 직시하기에 이른 것이다.

<허의원기자 ewhe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