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끝없는 혁명 (2);제 1부 혁명전야 (1)

전기에서 라디오까지

 20세기는 전자의 시대였다. 우연이었는지 모르지만 전기(Electricity)에서 전자(Electron)가 발견되고 정류·증폭·발진·변조·복조 등을 통해 전자를 조작할 수 있는 음극선관·진공관 등 전자관이 발명된 것 모두가 1900년도를 전후한 시점에서 일어난 일들이었다.

 지난 1백여년 동안 전자는 인간의 복지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새로운 밀레니엄의 문턱에 있는 오늘날, 전자는 21세기 정보시대의 개막이라는 한 차원 높은 이상을 실현하려는 시점에 와있다. 한 세기를 거쳐오면서 전자는 수없이 많은 발전과 확장을 꾀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20세기를 「전자혁명시대」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그동안 전자가 만들어낸 파생어들도 부지기수다. 우선 전자관(Electron Tube)의 발명과 함께 학문적 측면에서 전자를 연구하는 전자공학(Electronics)이 탄생됐다. 전자공학의 기술적 개가는 1920년을 전후해서 인류 최초의 완성된 전자기기로 일컬어지는 라디오를 만들어 냈고 이어 방송을 개국시켰다.

 라디오의 발명을 계기로 전자기술의 발전속도에 가속도가 붙으면서 분야에 따라 가정용전자(Consumer Electronic), 산업용전자(Control & Instrument System), 전자계산기(Computer System) 등의 개념이 탄생하여 마침내 각종 전자기기의 대량생산과 보급활동을 뜻하는 전자산업(Electronic Industry)이 생겨났다.

 금세기 후반에 들어서면서 전자공학과 통신(Communication)이 결합한 전자통신(Electronic Communication), 전자통신과 전자계산기(Computer System)가 결합한 전자정보통신(Electronic Data Communication) 등이 각각 등장했다.

 또 다른 한편에서는 기계류(Mechanism)와 전자공학이 결합된 메카트로닉스(Mechatronics)가 출현하여 이를 근거로 한 자동화기기가 대량 보급돼 경제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다. 뿐만 아니라 전자공학과 광학(Optics)의 결합은 광전자공학(Opto-electronics)과 관련산업을 낳기도 했다.

 앞서 언급했듯이 전자의 모체, 즉 전자보다 먼저 발견되고 연구돼온 것이 바로 전기다. 물리학에서 비롯된 전기에 대한 연구는 19세기 들어 전기에너지와 자기(Magnetism)분야를 연구 개척하는 전기공학(Electrical Engineering)의 탄생을 알렸다. 또 전기에너지를 생산하고 이를 이용하는 기계기구의 개발과 생산활동을 주도하는 전기기구산업(Electrical Industry)의 형성을 가져왔다.

 전기의 역사는 BC 600년경 고대 그리스시대로거슬러 올라간다. 그리스 최초의 철학자이자 수학자였던 탈레스가 호박(琥珀)을 마찰시켜 얻은 대전체(帶電體)가 전기현상 그 자체라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이어 19세기까지 수많은 물리학자들은 전기현상에서 전기와 자기(磁氣)가 구분되며 나아가서는 양극과 음극으로 나눠진다는 사실 그리고 저항의 법칙, 전자유도의 법칙, 전기분해의 법칙, 전류의 자기작용 등 여러 법칙과 현상들을 차례로 발견했다.

 영국의 원자물리학자 J 톰슨이 여러 전기현상과 법칙에서 마침내 「전자의 존재」를 발견하기까지는 무려 2천5백여년이 지난 19세기 말이었다.

 톰슨이 발견한 전자의 존재는 음전하(陰電荷)를 가지는 아주 작은 소립자 즉, 음극선입자의 형태였는데 그것의 정지질량(靜止質量)은 9.107×10의 마이너스 28승이었다.

 1887년 독일의 K F 브라운은 톰슨이 발견한 전자를 진공 상태에서 광학 현상과 반응케 하여 문자나 그림을 표현할 수 있게 해주는 특수진공관인 음극선관(Cathode Ray Tube 혹은 Braun Tube)을 발명했다. 이어 1904년 영국의 J A 플레밍은 에디슨 효과를 이용해서 진공 또는 저압 상태에서 전자를 방출하며 제어할 수 있도록 한 2극진공관(Diode)을 발명했다. 음극선관과 2극관의 연이은 발명은 전자공학의 태동을 알리는 사건이었다.

 전자공학이 획기적으로 발전하게 된 계기는 1907년 미국의 드 포리스트가 3극진공관(Triode 혹은 Audion)을 발명하면서부터다. 3극진공관의 발명은 2극진공관의 양극과 음극 사이를 전자가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도록 한 제3의 전극, 즉 그리드(Grid)를 설치한 것을 의미한다. 그리드의 원리와 성질은 전자를 전기·기계·통신 등에 직접 응용될 수 있도록 한 1등 공신이었다. 3극진공관은 다시 2개의 그리드를 설치한 4극관, 3개의 그리드를 설치한 5극관 등으로 발전한 뒤 1948년 트랜지스터의 발명 및 1958년 집적회로(IC)의 발명을 이끌어냈다.

 한편 전자공학과 전자산업이 잉태되는 동안 전기는 또 다른 분야에서 전혀 새로운 작품을 만들었는데 이것이 바로 통신과 전기의 결합인 전기통신이다. 공간적 격지(隔地) 사이에서 인간의 의사·지식·감정 또는 각종 정보를 주고 받는 것을 일컫는 통신은 여러 형태가 있겠지만 조직적인 시스템으로서의 역사는 BC 500년경 페르시아가 제국통치를 위해 군사상의 목적으로 설치한 역제(驛制)가 그 효시다.

 통신을 이용한 개인사업의 등장은 1516년 이탈리아에서 독일인 다키시스가 신성로마제국 황제의 허가를 얻어 설치한 우편사업이 최초다. 균일 요금(우표)을 적용하는 근대식 우편제도는 1840년 영국의 R 힐에 의해 처음 도입됐다.

 힐이 우편제도를 도입한 것은 적어도 통신 역사를 놓고 볼 때는 혁명적 사건이었다. 그런데 힐의 혁명을 무색케 한 사건이 그로부터 36년 후에 벌어졌다. 미국의 A 그레이엄 벨이 마침내 진동편(振動片)으로 전자석(電磁石)을 울리는 방식의 실용전화기를 발명한 것이다. 1837년 미국의 페이지가 전화 원리를 처음 발견한 이후 39년 만의 일이었다. 1876년 3월 벨은 자신의 조수였던 왓슨과의 실험통화에서 『왓슨군, 용무가 있으니 내게로 와 주게』라는 세계 최초의 유선통신 기록을 남겼다. 전화 발명으로부터 다시 8년 뒤인 1884년 미국의 청년화가 S F B 모스는 전기통신의 새 장을 연 모스 부호를 고안하여 워싱턴과 볼티모어 간에 설치된 전신선을 통해 부호 메시지를 전하는 데 성공했다.

 현재까지 전기통신의 발달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이 바로 무선전신이다. 이탈리아의 G 마르코니는 1895년 독일의 G 헤르츠가 발견한 전자기파와 프랑스의 E 브랑리가 고안한 검파기(Detector)에 자신이 직접 설계한 안테나와 어스(Earth)를 결합하여 최초의 무선전신기를 발명했다. 마침내 1901년 마르코니는 무선전신기를 이용하며 영국에서 대서양을 사이에 두고 1천6백마일이나 떨어져 있는 캐나다 뉴펀들랜드 영국 해군기지까지 모스 부호를 전송하는 데 성공했다. 무선전신기는 영국이 해외 식민지들과의 교신을 위한 목적으로 활용되면서 엄청난 발전 가능성을 인정받게 됐다. 그 가운데 하나가 다름 아닌 전파에 의한 방송의 가능성이었다.

 전기가 잉태시킨 두 적자(嫡子), 즉 전자와 전기통신의 첫 만남은 드 포리스트의 3극진공관과 마르코니의 무선전신기의 결합에 의해 이뤄졌다. 결합의 첫번째 산물이 바로 라디오다. 1914년 미국의 E H 암스트롱은 3극 진공관에서 전자의 검파기능과 증폭기능뿐 아니라 전파의 발진기능도 이뤄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어서 그는 1914년 증폭기(Amplifier)에서의 출력(결과)을 입력(원인) 쪽으로 되돌리는 기능을 하는 피드백 회로를 완성하기에 이르렀다.

 피드백 회로는 전파를 정해진 주파수대에서 변조하여 다시 복조할 수 있는 이른바 헤테로다인(Heterodyne)식 검파에 이용됐는데 이런 검파 장치는 1919년 암스트롱에 의해 슈퍼헤테로다인수신기라는 이름으로 완성됐다. 이 수신기에 안테나와 스피커 등을 부착한 것이 라디오의 원조다. 여기서 흥미있는 사실 하나는 오늘날 라디오 발명의 시조로서 드 포리스트를 지지하는 쪽과 암스트롱을 지지하는 쪽으로 나눠져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드 포리스트는 암스트롱보다 1년 앞선 1913년 피드백 회로를 완성했으나 여러가지 기술적 이론과 업적을 토대로 한 특허침해 논쟁에서 암스트롱에 패한 바 있다.

 공식적으로 라디오는 1920년 1월 미국 워싱턴 인근 아나고스티아 해군비행장에서 군악대 연주회 중계 청취용으로 처음 사용됐다는 기록이 있다. 이어 같은 해 11월 미국 웨스팅하우스가 피츠버그에 KDKA라는 상설방송국을 개국함으로써 라디오는 일반인들이 가정에 설치하여 조작할 수 있는 형태로 발전하였다.

 세계 전자산업이 태동하는 순간이었다. 참고로 각국의 상설방송국 개국 시점을 보면 1920년 KDKA를 필두로 하여 21년 프랑스 국영방송, 22년 영국 BBC방송, 23년 독일 국영방송, 25년 일본 도쿄방송 등이다. 한국은 27년 일본인에 의해 개국된 일본어·조선어 병용 경성방송이 시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