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LCD 응용산업 육성

최인철 디지탈로직 사장

 대만에서 다년간 근무한 국내 대형 메모리업체 마케팅담당 부서장으로부터 3년 전에 전해들은 이야기다. 그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나라 메모리사업이 잘 될 때 대만업체들은 우리나라 메이커들에 제품공급을 요청했고 우리나라 업체들도 국내 업체들보다 우선적으로 이들에 제품을 공급했다. 대만업체들은 국산 제품을 통해 나름대로 기술력을 축적, 점차 메모리 자체 생산체제를 갖추게 되고 나중에는 오히려 우리나라 업체들이 대만업체들을 찾아다니면서 큰 폭의 할인율을 제시하면서 국산 메모리의 사용을 요청하게 됐다. 대만 전자업체들은 우리의 메모리를 사들여 완제품을 만들어 다시 우리나라에 수출해 큰 이익을 챙겼고, 이러한 여력을 바탕으로 반도체의 자체 생산에 나서 우리 제품의 수입을 점차 줄여 나갔다는 얘기다. 해외시장 개척에 연연해 국내업체보다 외국업체에 제품공급을 우선적으로 추진해 온 우리나라 메이커들의 실책을 보여주는 사례다.

 문제는 이러한 것이 메모리 반도체에 이어 차세대 유망품목으로 각광받고 있는 LCD분야에서도 재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LCD분야는 우리나라와 일본이 세계시장 석권을 위해 치열하게 경쟁을 벌이고 있는 분야다. 최근 LCD 기술이 발달하고 이를 응용한 제품들이 속속 출시되면서 LCD가 품귀현상을 보이고 있는 실정이다. 요즘 LCD를 이용한 제품을 생산하는 업체들은 LCD 확보를 위해 생산업체에 줄을 대고 있는 형국이다. LCD업체 입장에서 보면 산업발전을 위한 더 없는 기회다. 그간 막대한 자금을 쏟아부어 LCD 개발에 성공하고, 이제 그 빛을 보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LCD 이용 전자제품 생산업체들이 LCD를 넉넉하게 구할 수 있는 처지는 아니다. 생산량의 대부분이 대만이나 외국으로 실려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에서 반도체분야에서 겪었던 오류를 다시 반복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메모리산업에서 얻었던 교훈을 LCD분야에 적용한다면 LCD산업 부흥은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사실 LCD 응용분야는 상당히 다양하다. PC용 모니터, 차량 및 선박용 모니터 및 AV기기 등 협소한 공간을 최대로 활용하는 곳이면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다.

 또한 생산 현장분야의 각종 기기, 벽걸이 텔레비전 등 우리의 일상 생활과 밀접하게 사용할 수 있는 분야에서도 그 쓰임이 많다. LCD는 유해전자파가 없을 뿐만 아니라 생활공간을 넓혀주고, 시력보호에도 그만이다.

 우리나라 전자업체들이 이러한 LCD의 장점을 활용해 다양한 제품을 만들어 부가가치를 높인다면 그동안 첨단기술을 응용해 고부가가치를 얻어온 외국업체와의 경쟁에서 분명 앞서게 될 것이다. 만일 외국기업들이 우리나라의 LCD를 이용해 만든 완제품을 수입해 온다고 가정해 보라. LCD를 싸게 주고 완제품을 바싸게 사 우리는 그만큼 손해를 보게 된다. 이렇게 해서는 의욕있는 LCD 응용 전문기업들이 경쟁력을 갖출 수 없다.

 LCD 생산업체들은 국내 기업을 우선해 제품을 공급해 주고, 이들이 LCD를 이용한 완제품을 외국에 팔 수 있도록 기술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 LCD 생산업체와 응용제품 개발업체들의 공존은 물론 산업발전을 이룩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