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년간에 걸친 세계 반도체시장 경기침체로 전세계 반도체업체들이 설비투자를 지속적으로 축소해온 데 따라 올해부터 반도체 공급이 수요에 못 미치는 수급불안상황이 야기될 것이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삼성전자를 비롯한 국내 대기업들의 일부 사업부는 이러한 전망에 따라 주문방식을 6개월 이상의 물량을 확보하는 장기주문방식으로 전환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일부 부품대리점도 이에 대비, 재고물량을 점차 늘려가는 추세다.
관련업계에 따르면 국내 진출한 해외 반도체업체들의 마케팅 담당자들은 최근 국내 고객에게 현재 한달 정도의 물량만 주문하는 단기 주문방식을 장기주문체제로 전환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모토로라반도체통신의 손인수 상무는 『모토롤러 본사에서는 지난해 말부터 세계 각국의 지사에 반도체 수급불안 가능성을 통보했다』면서 『이에따라 모토로라반도체통신도 국내 고객들에게 장기주문체제로 전환할 것을 종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미 일부 제품의 경우 수급불안 상황이 발생했으며 심지어 일부 해외업체는 1년 물량을 확보하는 연간주문체제로 전환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강조했다.
페어차일드사의 국내 제품공급을 맡고 있는 파워컴전자(대표 김종우)는 최근 국내업체가 주문한 장기물량을 홍콩의 아시아 총괄지사에 요구했다가 불가하다는 통보를 받았다.
이미 반도체 공급 불안조짐을 느낀 홍콩과 대만업체들의 장기주문 물량에 선수를 빼앗겼기 때문이다.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한국지사(대표 이영수)도 통신제품에 들어가는 일부 반도체 제품의 경우 향후 공급이 원활하지 않을 것으로 보고 국내업체들에 물량확보에 나설 것을 유도하고 있다.
TI코리아(대표 손영석)도 전 세계적으로 생산이 크게 늘고 있는 통신제품과 LCD, 그리고 최근 회복되고 있는 PC관련 반도체 제품의 향후 공급이 원활하지 못할 것으로 보고 국내 공급 물량을 확보하는 데 힘을 기울이고 있다. TI코리아의 한 관계자는 『이미 일부 제품의 경우 가수요까지 발생, 물량배정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반도체 수급불안조짐이 확산되는 것은 전세계 반도체업체들이 지속적으로 투자를 축소, 생산능력이 최저점에 도달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전세계 반도체 설비투자는 지난 96년 전년대비 33.7%가 감소됐으며 97년과 98년 각각 전년대비 29.2%, 22.7%가 줄었다. 또 지난해부터 올 상반기까지 문을 닫는 반도체 공장은 일본에서 18개, 유럽 2개, 미국 5개, 대만 4개, 싱가포르 1개 등 무려 30여개에 달하고 있다. 반면 올해 전자제품 생산은 경기 회복에 따라 전세계적으로 늘어날 조짐을 보이면서 반도체 공급불안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반도체업계 한 관계자는 『반도체 생산물량은 이미 1년전에 수립한 계획에 따라 이뤄진다』며 『수요가 늘더라도 공급해줄 수 있는 물량은 10% 이내로 한정되므로 이 범위를 넘어서면 가격이 오르고 리드타임이 늘어나는 수급불안요인이 발생한다』고 말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미국의 경우 대형 부품유통업체들이 이러한 수급불안정상황에서 완충역할을 수행하지만 국내 부품유통업체들의 규모로는 이를 대비하기 어렵다며 자체적으로 장기주문을 통해 물량을 확보하거나 부품공급선을 다양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유형준기자 hjyo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