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V칩 특허권자들이 국내외 TV업체들에게 과도한 로열티를 요구하고 있어 적지 않은 파문이 일고 있다.
V칩이란 공중파나 케이블 방송, 비디오 프로그램 가운데 음란 및 폭력적 화면이나 언어 등이 포함돼 있을 경우 부모가 코드를 입력해두면 해당 프로그램을 자녀들이 시청할 수 없도록 해주는 기능을 말한다.
V칩은 이미 지난 80년부터 유해 프로그램으로부터 청소년들을 보호하기 위해 다양한 기술이나 방법이 동원돼 개발돼 왔으나 아직 상용화되지는 않고 있다.
V칩은 사실 음란성과 폭력성이 강한 미국 영화에 대한 비난여론이 높자 미국 영화제조자협회(MPAA)가 전자제조협회(EIA)의 608A 규격을 채택하면서 비롯됐다.
EIA 608규격은 원래 TV에 캡션기능을 부가하기 위한 것으로 21번째 수직주사선에다 캡션신호를 집어넣는 방식이다.
MPAA는 TV신호가 비월주사방식이란 점에 착안, 21번째 수직주사선 중 2번째 주사선에다 프로그램을 선별할 수 있는 V칩 코드를 부여하는 방식을 택했다.
그러나 영화제조사들이 규정한 EIA 608A 규격은 방송사나 TV업계가 방송신호나 TV에 채택하지 않았기 때문에 실용화되지는 않았다.
그러던 것이 미국 방송국협회가 여론의 비난을 의식, 「TV 페어런셜 레이팅가이드」를 만들면서 V칩은 뜨거운 감자로 부상했다.
미 방송국협회가 마련한 TV 페어런셜 레이팅 가이드란 국내로 치면 18세 이상 시청가능한 프로그램에 18이라는 숫자를 표기하는 것과 유사한 등급표시를 말한다.
미 방송국협회는 이 레이팅가이드에 맞춰 방송신호에 V칩 코드를 집어넣을 수 있도록 지난해 3월 EIA 744규격을 채택했다.
EIA 744는 영화제조자협회가 채택한 EIA 608과 방식은 같지만 등급표시 코드만 다를 뿐이다.
방송국협회가 EIA 744규격을 채택하자 이를 의무화하는 법안이 의회를 통과했으며 마침내 미 연방통신위원회(FCC)는 오는 7월부터 미국에서 시판되는 컬러TV 모델의 절반에 V칩을 내장토록 하고 내년 7월부터는 전 제품에 V칩을 내장토록 의무화했다.
이처럼 V칩의 채택이 의무화되자 그동안 잠잠히 있던 V칩관련 특허권자들이 소송대리인을 내세워 TV업체들에게 특허권을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V칩관련 특허요구는 지난해에도 사운드뷰사 등에서 요청해왔지만 국내업체들은 물론 소니·마쓰시타·필립스 등 대부분의 컬러TV업계가 특허료 협상을 보류해두고 있는 상태다.
그 이유는 작년까지만 하더라도 V칩의 채용이 의무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굳이 미리 특허료협상을 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며 또한 미국 가전제조자협회(CEMA)가 V칩기술의 무료사용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V칩과 유사한 기술인 캡션기능의 경우 특허권자인 미 귀머거리협회가 공익을 내세워 무료로 제공한 바 있다.
때문에 V칩도 공익차원에서 실시되는 만큼 무료로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게 CEMA측의 주장이다.
그러나 국내업계는 물론 소니·마쓰시타·필립스 등 TV업계는 V칩과 관련된 특허권자들이 상당히 많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는 데다 이들이 대부분 개인들이기 때문에 V칩 특허문제가 쉽사리 매듭지어질 것으로는 보지 않고 있다.
개인특허권자들의 경우에는 제조업체와 달리 크로스라이선싱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끝까지 특허료 지불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TV업계가 V칩특허문제가 불거지자 곤혹스러워하는 것은 드러나지 않은 다수의 개인 특허권자들이 한꺼번에 특허료를 요구할 경우 쉽사리 특허료를 지불할 수도 없을 뿐더러 결국에는 특허침해여부를 가리기 위해 법정으로 끌고갈 수밖에 없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내업계는 이와 관련, 미국시장에서 컬러TV의 판매량이 소니나 마쓰시타·필립스 등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에 직격탄은 피할 수 있을 것으로 점치고 있다.
그러나 수많은 개인 특허권자들이 이들 선점업체와 협상을 마무리지을 경우에는 결국 특허료를 지불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기 때문에 가뜩이나 낮은 채산성이 더욱 악화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유성호기자 sunghyo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