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명진 숭실대 정보통신전자공학부 교수
21세기의 국가경쟁력은 그 나라의 기술수준을 나타내고 이는 대학의 기술교육에서 비롯된다. 대학이 경쟁력 있는 기술력을 확보하려면 몇 가지 점에서 현실을 재정비해야만 한다.
우선 교육프로그램의 획일성을 탈피해야 한다. 최근에는 입학생들에게 다양한 입학전형 프로그램이나 선발제도를 적용하고 있지만 선발한 다음에 교과목을 운영하는 과정에서는 창의력을 살릴 수 있는 프로그램이 부족한 형편이다. 이것은 현재 도입중인 백화점식 학부제나 복수전공제의 시행결과만 보아 창의적이지 못한 교육과정을 잘 나타내고 있다. 실제로 대학생들은 이러한 제도를 잘 활용하지 못하고 있으며 틀에 박힌 교과과정을 선호하고 있다. 바람직한 교과과정이란 다양한 교과과정의 열거에 만족하지 않고 정해진 과정의 목표나 방향을 명확하게 설정하고 지도해 주는 것이다.
대학이 기술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캠퍼스정보화도 시급한 문제다. 많은 대학들이 대학정보화를 특성화 목표로 잡고 있다. 그렇지만 대학평가 기관에서는 캠퍼스의 교육정보화 실태를 손쉽게 파악하기 위해 대학이 갖추고 있는 컴퓨터의 숫자나 컴퓨터망의 속도 등 규모만 평가하고 있다. 이처럼 외형적인 규모로 대학교육의 정보화 수준을 가늠하는 것은 실용적인 교육방향과 거리가 있다. 교육정보화에는 도구를 갖추고 있다는 사실도 중요하지만 도구를 어떻게 잘 활용하고 응용하느냐에 따라 그 수준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세번째로 기술경쟁력은 인력양성이 중요하다. 인력양성은 기업이 원하는 실무인력을 양성하는 것이다. 4년 과정의 대학을 졸업하고도 모자라서 다시 취업을 하기 위해 전문직업학교나 훈련기관에 입교하여 공부한다는 것은 개인이나 국가적으로 모두 낭비다. 또한 전국적으로 대학내의 학과명칭이 동일하다고 해서 특성도 없이 유사한 교과과정을 개설하는 것도 문제다. 졸업 후에는 낭비적인 재교육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대학은 학문의 목표를 대학마다 처한 지역적 특성화에 적합한 방향으로 특화해야 하고, 특히 졸업생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실용적인 교과과정을 갖추어야만 한다.
이와 함께 대학내에 벤처창업을 장려함으로써 교과과정을 실용적으로 갖출 수 있다. 대학을 통한 벤처창업은 지역별로 분산되어 있는 대학들의 특성화를 원활하게 이루어지게 한다. 또한 박사학위 소지자의 70% 이상이 배치되어 있는 대학내 우수인력을 잘 활용할 수 있으며, 제자를 통해 산업에 필요한 유능한 인력을 배출할 수 있게 된다. 여기에 국가는 광범위한 풀뿌리 응용기술력을 많이 확보하게 되어 국가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대학들도 열악한 재정을 벤처창업의 결실에 의존할 수 있어 열악한 교육재정을 크게 개선시킬 수 있다.
대학은 지적소유권의 산실이 되어야 하고, 이를 통해 대학의 재정을 보충할 수 있어야 한다. 대학은 교수들에 대해 매년 연구업적을 평가하여 재임용이나 승진에 활용하고 있다. 대부분의 대학은 국내외의 유명 학술지에 게재된 연구논문의 업적은 높게 평가하지만 실용적인 특허나 소프트웨어의 등록과 같은 지적소유권 업적은 거의 인정해 주지 않는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의 대학교수들이 취득하는 특허권은 국내의 총 특허권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어려운 상황이다. 이러한 문제는 교수들의 연구논문 업적과 함께 실용적인 지적소유권도 교수의 업적으로 높게 평가 및 인정해 주어야만 해결이 가능하다.
오늘날의 대학 캠퍼스에는 학생들의 교육여건이나 거주공간이 아주 부족한 상황이어서 전공이나 지역의 특성화를 위해 대학내 건물이나 시설물을 선뜻 제공할 수 없다.
또한 대부분의 대학 전공실험실은 인접 전공실험실과 공동으로 운영하기 때문에 캠퍼스 내에는 대학원 연구생들이 거주할 공간조차 부족한 상황이다. 입학정원이 날로 증가추세에 있는 우리나라의 제한된 대학공간에서는 당연하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대학이 실용적이고 경쟁력 있는 기술개발을 통해 지역발전을 도모하는 거점이 되어야 한다.
대학의 실험실을 대학주변에 있는 중소기업으로 이전하여 산·학 협동을 촉진하는 것도 검토해 볼 만하다. 이렇게 될 경우 우리의 대학도 기술 선진국처럼 대학의 울타리가 없는 지역캠퍼스를 구축할 수 있다.
대학이 갖고 있는 실험기자재들이 오랫동안 잠자고 있는 것도 문제다. 대학은 학과마다 실험실을 갖추고 있으며, 실험실에는 일년에 한두 번 활용될 정도의 기자재들이 많이 확보되어 있다. 이렇게 되면 기자재의 감가상각에 따르는 재정의 손실은 물론이고, 이를 보관하는 창고비용 등에 재정손실이 발생한다.
이러한 문제는 대학을 평가할 때 실험실습 기자재의 활용보다 장치의 개수나 기자재 금액 등과 같은 외형에 역점을 두었기 때문에 비롯된 것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1년을 2학기에서 4학기제로 연장하거나 또는 기자재의 공동활용, 기자재 임대제도 활용 등을 통해 고가의 기자재 활용방안을 모색하여야 한다.
대학 졸업과 동시에 실직자가 되는 실업자 2백만의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이러한 어려운 여건에서는 대학도 구조조정의 성역이 될 수 없다. 오늘날 IMF시대를 맞게된 배경에는 대학도 한몫을 했다는 책임감을 가지고 과감하게 대학이 처한 문제를 분석하고 해결해 나아가는 것만이 우리의 대학이 21세기에 기술경쟁력 있는 대학으로 새롭게 발돋움하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