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천연 색상과 독창적인 기술을 내세워 글로벌 마켓을 공략하라.」
지난 25일 나흘간의 숨가쁜 일정을 마치고 폐막된 세계 최대의 가전전문전시회인 「99 도모테크니카(DOMOTECHNICA)」가 던진 메시지다.
GE·월풀·밀레·보쉬·마쓰시타 등 세계 유수의 가전업체를 비롯해 중국·중동·남미지역의 중소가전업체에 이르기까지 총 1천8백여 업체들과 8만여명에 달하는 바이어 및 참관객들이 한데 뒤섞여 후끈한 열기에 휩싸였던 이번 전시회는 세계 가전산업의 새 밀레니엄을 개척할 신기술과 신제품, 여기에 다양한 색상으로 치장된 뉴디자인의 제품들이 대거 선보여 가전전문전시회로서의 명성을 다시 한 번 입증했다.
이번 전시회에서 가장 주목을 끌었던 것은 차세대 가전제품. 「Smart Home」이라는 주제에 걸맞게 터치스크린을 통해 가전제품과 인터넷을 연결시키는 이탈리아 이리스톤사의 HSM(Home Smart Moniter)을 비롯, 텍사스인스트루먼츠사의 음성인식칩을 이용한 말로 작동하는 전기오븐, 대우전자의 카드입력식 전자레인지가 돋보였다.
또 냉장고·세탁기·식기세척기 등 대형 가전제품들은 절전·저소음·사용자편리성을 기본축으로 새로운 컬러를 도입하고 속이 들여다 보이는(See Through) 제품들이 새로운 디자인 흐름으로 부각됐다.
주방용품·이미용품·생활용품 등으로 구분되는 소형가전들은 필립스·브라운·물리넥스·테팔 등의 선두업체들이 지구상의 색상을 모두 동원한 듯 형형색색을 이뤘다.
특히 하나의 제품이라도 각 파트별로 색상을 다르게 사용하는 기법이 새롭게 선보였는데, 마치 베네통사의 파스텔톤 소품 같은 소형가전들도 대거 출품돼 참관객들로부터 관심을 끌었다.
이같은 신제품의 새로운 흐름과 디자인 추세와 함께 올 전시회에서 드러난 가장 큰 특징은 글로벌 마켓을 겨냥한 선두 가전업체들의 세계화전략과 급속도로 뒤좇아오는 중국 업체들의 움직임이다.
물리넥스그룹의 블라워((P Blayau) 회장은 기자회견을 통해 『한국·중국을 포함한 아시아 시장을 겨냥해 철저한 현지화 전략을 사용하겠다』며, 제품의 다각화는 물론 현지 가전업체들과의 제휴가능성을 시사했다.
밀레·보쉬지멘스·아에게 등 유럽의 주요 업체들도 다국적 기업으로의 전환을 서두르면서 터키 및 아랍지역으로 생산기지를 확대해 GE나 월풀 같은 미국업체들에게 도전장을 내겠다는 의욕을 보였다.
이번 전시회에서 선진업체들과는 또다른 힘(?)을 과시한 것은 중국·홍콩·대만 등 중국계 중소기업들이다.
가전3사의 현지법인을 비롯해 7개 중소업체 등 총 10개 업체가 참가한 우리나라와는 달리 중국은 정부의 지원아래 80여개의 중소업체들이 공동부스를 만들어 참가했으며 홍콩은 74개, 대만도 64개 중소 가전업체들이 각각 국가관을 만들어 대거 참여했다.
주최측인 쾰른 메세도 「중국이 몰려온다」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통해 급성장하는 중국업체들의 동향을 각국 언론에 알리기도 했다.
전시회 현장에서 만난 한국 업체 관계자들은 『더이상 중국을 후진국으로 보아서는 안되겠다』며 『가격경쟁력뿐만 아니라 기술력도 급성장하고 있다』며 『여기에 국가차원에서의 조직적인 시장공략이 한국 업체들의 자리를 대체해 갈 것』이라고 우려를 나타냈다.
이번 「99 도모테크니카」는 백색가전 및 소형가전을 한계사업으로만 치부하는 국내 가전업체들에게 새로운 인식의 전환을 요구하고 있는 셈이다.
국내 기업들이 가전산업은 한계산업이라는 고정관념을 시급히 떨쳐버리지 못한다면 국내 가전산업은 끊임없는 기술혁신을 통해 지구 곳곳을 파고드는 외국 선진 전문업체들과 정책적 지원과 조직력을 바탕으로 급속히 도전해오는 중국 업체들의 공세에 현재의 위상마저 보전하기 어려울 것은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