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텔의 수성이냐, AMD의 추격이냐.」
26일 펜티엄Ⅲ가 발표됨으로써 99년 「칩들의 전쟁」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지금 국내외 컴퓨터업계의 눈은 인텔의 신무기 펜티엄Ⅲ에 쏠려 있다. 많은 사람들의 기대 속에 발표된 펜티엄Ⅲ는 클록 주파수를 5백㎒ 이상으로 높이면서 70여개의 멀티미디어 명령어를 새로 추가해 기존 펜티엄Ⅱ보다 처리속도는 물론 그래픽, 음성인식 및 멀티미디어 기능을 대폭 향상시켰다.
특히 펜티엄Ⅲ는 기존 펜티엄Ⅱ 4백50㎒에 비해 3D처리 성능(3D밝기 및 형태테스트)은 93%(3D윈벤치99), 멀티미디어 성능은 42%(멀티미디어마크99) 향상됐다는 게 이번에 신제품을 발표한 인텔 측의 설명이다.
그러나 펜티엄Ⅲ가 AMD의 추격전에 쐐기를 박을 만큼 충분한 화력을 가지고 있는지는 좀더 두고봐야 할 것이라는 게 국내외 전문가들의 반응이다. 일부에서는 「왜 펜티엄Ⅱ-Ⅱ가 아니라 펜티엄Ⅲ인가」라는 회의론도 없지 않다. CPU를 첨단기술로 건설된 마이크로 폴리스라고 전제한다면 펜티엄Ⅲ는 새로운 공법으로 만들어진 「신도시」라기보다는 펜티엄Ⅱ의 인프라 위에 도로의 폭이나 건물 층수를 조정하는 식으로 아키텍처의 일부만 수정했을 뿐이라는 평이다.
물론 펜티엄Ⅲ가 펜티엄Ⅱ보다 진화된 칩인 것은 사실이다.
그 진화의 비밀키는 새로운 명령어 「인터넷 스트리밍 SIMD(Single Instruc
tion Multiple Data)」. 기존 MMX와 비슷한 구조 아래 처리범위를 정수에서 실수로 확장시킨 이 명령어는 3D 프로세싱과 오디오 비디오 스트리밍, 디지털 이미징, 그리고 음성인식으로 PC를 무장시킬 것이라는 게 인텔의 주장이다. 특히 펜티엄Ⅲ는 「새로운 인터넷 멀티미디어 세계로의 초대장」이라는 설명이다. 이 명령어는 훨씬 작은 사이즈로도 웹에서 빠르고 매끄러운 3D를 구현해 「더 풍부한 콘텐트(Richer Content)」를 보여준다는 것. 오는 6월 이후 웹사이트를 인터넷 스트리밍에 맞게 최적화시켜 주는 「웹 아웃피터(Web Outfitter) 서비스」를 다운로드받게 되면 사용자들은 펜티엄Ⅲ의 진정한 파괴력을 경험할 수 있게 될 거라고 인텔측은 덧붙였다.
하지만 국내외 기술평론가들은 『새로운 연산방식의 인터넷 스트리밍 SIMD 명령어가 그래픽 처리성능을 향상시킨다 해도 이는 단순히 연산 명령어 차원에서의 이론적 수치일 뿐이며 실제로 인터넷통신, 3차원 그래픽 등이 눈에 띄게 향상되기는 힘들 것』으로 분석했다.
이와 관련, 하이텔 하드웨어 동호회 랩(LAB)의 김민수 팀장은 『캣마이와 비슷한 명령어 3DNow를 먼저 채택한 AMD의 K6-2에서 검증됐듯 3차원 그래픽 처리에 있어 CPU의 영향력은 극히 제한적』이라고 말한다. 3차원 그래픽은 초기의 다운로드 데이터량이 2차원 그래픽의 4∼8배에 이르기 때문에 현재의 모뎀 수준으로는 어차피 무리가 따른다. 웹처럼 고해상도가 필요한 경우 매끈한 그래픽을 보여주려면 3차원 가속 보드를 비롯, 상당한 컴퓨팅 성능이 뒷받침돼야 하기 때문에 결국 CPU가 지원할 수 있는 영역은 그리 크지 않다는 설명이다.
한편 인텔보다 3일 앞서 K6 시리즈의 최신 버전 K6-Ⅲ를 공개한 AMD진영도 부산하다. 4백㎒와 4백50㎒로 출시된 K6-Ⅲ의 최대 장점은 트라이레벨 캐시(TriLevel Cache).
이같은 설계 덕분에 CPU와 동일 속도의 64KB L1 캐시와 2백56KB L2캐시, 그리고 추가로 슈퍼7 마더보드의 1백㎒ 전면 버스에 L3 캐시까지 배치할 수 있게 됐다는 설명이다.
게다가 AMD의 「온다이(Ondie)」 구조는 펜티엄보다 작은 캐시 용량으로도 고성능이 가능하다고 이 회사는 주장한다. 캐시 메모리는 쉽게 말해 프로세서 코어를 위한 데이터 저장창고. 셀러론을 제외한 펜티엄 칩들이 캐시를 프로세서와 나란히 배치하는 데 비해 AMD는 프로세서와 동일한 실리콘 조각 안에 캐시를 통합시키는 온다이 구조를 채택하고 있다.
이러한 기술을 바탕으로 AMD는 이제 K6-Ⅲ를 전면배치해 고성능의 비즈니스 시장에 집중포화를 퍼부을 것으로 보인다. 사실 이 회사는 1천달러 이하 PC시장에서는 바람을 일으켰지만 비즈니스의 영토로는 포문을 열지 못했던 것.
하지만 일부 평론가들은 K6-Ⅲ가 전략상품이라기보다 인텔을 의식한 「김빼기용 CPU」라고 말한다. AMD의 진짜 비밀병기는 올 2·4분기로 출시가 예고된 K7이다. 결국 K6-Ⅲ는 매력적인 사양에도 불구하고 K7으로 가기 위한 길목에서 등장한 대 인텔전의 보조화기에 불과하다는 것.
이와 관련, AMD코리아측은 『인텔이 셀러론과 펜티엄Ⅱ로 양동작전을 구사한 것처럼 2000년 이후까지 K6-Ⅲ와 K7를 나란히 최전방에 배치할 것이기 때문에 K6-Ⅲ가 시한부 인생이라는 오해는 곧 불식될 것』이라고 밝힌다.
그러나 구매자들은 인텔의 지명도에 돈을 지불할 것이고 K6시리즈로는 반도체공룡 인텔을 압도할 만한 괴력이 없다는 것이 많은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그렇다면 과연 인텔의 따돌리기와 AMD의 쫓아가기, 어느 편이 더 유리한 고지에 서게 될까.
우선 AMD 입장에서는 반도체시장에서의 상승세가 큰 자산이다. 지난 4·4분기 인텔의 마켓셰어가 87.1%에서 75.7%로 내려앉은 데 비해 이 회사는 6.6%에서 15.5%로 올라섰다. PC데이터의 최근 자료에 의하면 K6-Ⅱ는 올 1월 미국 내 대형쇼핑몰과 온라인상점에서 41%의 점유율을 기록해 최고의 베스트셀러 칩이 됐다. 1천 달러 이하 PC시장에서는 AMD가 이미 60% 대의 시장점유율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AMD는 회사의 이름 그대로 AMD(Advanced Micro Devices), 즉 눈에 띄게 향상된 마이크로 디바이스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집념 때문에 오히려 발목이 잡힐 가능성이 있다. 자본, 소비자들의 인지도가 절대적으로 불리한 상황에서 거함 인텔을 침몰시키는 역전 드라마를 연출하려면 K7을 가공할 화력으로 무장해야 한다는 거센 내부압력을 받고 있는 것도 한 요인이다.
수율문제도 AMD의 아킬레스건. 온다이와 트라이레벨 캐시 설계는 수율을 떨어뜨리는 결정적 요인이 되고 있다. 더구나 인텔은 빠르면 3·4분기부터 저가형 셀러론에서만 적용해온 통합캐시를 펜티엄Ⅲ까지 확대할 것이라는 추측이 나돌고 있다. 그렇게 되면 AMD는 캐시부문에서의 기술적 우위를 상실하게 되는 셈이다.
반면 인텔은 21세기 1기가칩 시대에 대비해 올해말까지 6백㎒부터 8백㎒까지 속도를 내는 0.18 마이크론 CPU 생산체제에 돌입한다. 0.18 마이크론 칩은 성능향상은 물론 전력과 열발생을 줄이고 제조절감까지 1석3조의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인텔은 또 기술전쟁과 함께 가파른 가격인하 정책으로 승부수를 던질 계획이다.
이 회사는 지난해 하반기와 같은 값으로 올해말엔 2배 속도의 인텔칩을 살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인텔이 8086시절부터 거의 20년간 지켜온 맹주자리를 계속 이어갈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분명한 것은 처리속도 「0」의 고지를 향한 반도체의 진화가 멈추지 않는 한 칩들의 전쟁은 계속된다는 것이다.
<이선기기자 sk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