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과학으로 설명되지 않는 일들이 많이 있다. 유령이니 초능력이니 하는 것이 대표적인데 이런 것들은 「의사과학」 「사이비과학」이라고 하여 아직까지는 정통과학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들도 과학적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점은 틀림이 없다. 이와 달리 과학적 연구대상이 될 수 있는지조차 모호한 영역들도 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우연」이다.
흔히 「우연치고는 너무나 이상한 일」이라는 표현을 쓴다. 실제로 생활하면서 그런 일을 겪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아마 주변 사람들 누구라도 그런 경험을 한두 가지씩은 갖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과연 그 모든 것들이 단순히 「우연의 일치」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저명한 심리학자 칼 융이나 작가 아서 케슬러, 콜린 윌슨, 또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볼프강 파울리 등 많은 사람들이 이 문제에 대해 진지한 고찰을 남기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들은 우연의 배후에는 뭔가 아직은 설명할 수 없는 원리가 숨어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조사한 수백 가지 사례들 가운데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들이 있다. 미국 시카고의 한 칼럼니스트가 런던에 가서 사보이호텔에 투숙했다. 그가 무심코 객실 책상 서랍을 열어보니 그 안에 누군가 잊어버리고 두고 간 소지품이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자기 친구의 것이었다. 그런데 이틀 뒤, 그 칼럼니스트는 바로 그 친구에게서 편지 한 통을 받았다. 「믿기지 않겠지만 나는 지금 파리의 한 호텔에 묵고 있는데 객실 책상 서랍에서 자네의 넥타이를 발견했다네. 자네 이름이 새겨진 넥타이를 말이야!」 그 칼럼니스트는 몇달 전에 파리에 가서 그 호텔에 투숙한 적이 있었던 것이다.
이런 예도 있다. 「갈매기 조너던」으로 유명한 작가 리처드 바크는 취미로 경비행기 조종을 즐겼는데 66년에 자신의 아이를 데리고 미국 중서부 유람을 다닌 일이 있다. 그의 비행기는 1929년에 제작되었으며 통틀어 8대밖에 생산되지 않은 아주 귀한 기종이었다. 하루는 위스콘신주에서 그의 친구가 비행기를 몰다가 그만 착륙할 때 곤두박질을 쳐서 기체가 손상됐다. 바크와 그의 친구는 수리를 해서 망가진 부분을 다 고쳤지만 단 한 가지 부품만은 도저히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었다. 그 기종에 맞는 부품이 아니면 손 쓸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들을 지켜보고 있던 마을 사람 하나가 다가와서 도움이 필요하냐고 물었다. 도움이 될 리가 만무했지만(37년 전, 그것도 단 8대밖에 만들어지지 않은 비행기의 부품을 넓은 미국 땅덩어리 아무 곳에서나 구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놀랍게도 그 사람은 터덜터덜 가까운 격납고로 걸어가더니 필요한 부품을 가져다주었다는 것이다. 이 놀라운 사실을 경험하고서 바크는 「우연은 없다」라는 책을 내기도 했다.
융과 파울리는 이 놀라운 우연들에 대해서 단순히 「coincidence(우연)」로 표현하지 않고 「synchronicity(동시성)」라는 용어를 썼다. 과학자들은 놀라운 우연의 일치들에는 뭔가 아직 인간이 밝혀내지 못한 미지의 입자나 두뇌작용 등이 관계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영국의 과학자 돕스는 「사이트론(psitron)」이라는 입자가 시공간을 파도처럼 휩쓸고 지나가면서 현재와 미래의 사건들을 유기적으로 묶는 메신저 역할을 한다고 생각했다. 이때 인간의 의지나 욕망 등이 개입되지만 두뇌와는 무의식적 차원에서 교감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전혀 깨닫지 못한다는 것이다. 또 융은 인간의 기억들이 모여있는 거대한 저장고가 있다는 생각을 했다. 이 보이지 않는 저장고의 그물코가 얽혀서 사람들 사이에 무의식적인 통신이 일어나며 그 결과가 우연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다가오는 21세기에는 아마도 「우연의 신비」가 과학의 새로운 영역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박상준·과학해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