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폭로」를 본 적이 있다면 이 영화속에서 주인공인 마이클 더글러스가 한 호텔 방에 숨어들어가 새로 개발된 가상현실을 이용해 중요한 정보를 빼내는 장면을 기억할 것이다.
여기서 그는 먼저 머리에 특수장치인 헤드 마운티드 디스플레이(HMD)를 착용하고 팔과 다리에도 특수 센서가 달린 장치를 부착한 후 이들 장치의 도움으로 3차원 가상공간에서 방대한 데이터베이스를 검색한다.
그가 탐색하는 3차원 공간은 가상공간이라는 것만 다를 뿐 실제로 그의 팔 동작과 머리, 눈 동작 등에 의해서 공간의 움직임이 이뤄진다. 이 점에서 「폭로」 속의 이 장면은 「가상현실(버추얼 리얼리티)」이 추구하는 미래상을 가장 잘 보여준 것으로 평가받기도 했다.
그런데 이러한 가상현실을 구현하기 위해 필수적인 장비인 HMD를 장시간 사용할 경우 인간의 두뇌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와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미국 미시간주립대학의 MIND연구소(뉴 미디어, 인터페이스 앤드 네트워크 디자인, http://www.mindlab.msu.edu/mweb/research/research_effects.htm)의 프랭크 비오카 박사 팀은 최근 사람이 HMD를 장시간 착용할 경우 일시적으로 뇌의 기능에 이상이 생긴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이 연구결과에 따르면 특수 비디오카메라를 부착한 HMD를 착용하고 주변 사물을 볼 경우 사용자의 가상시각 위치는 카메라의 실제 위치보다 1백65㎜ 앞과 62㎜ 더 높은 지점이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차이 때문에 바라보는 사물이 실제 위치보다 가깝게 보이기 때문에 손을 대려고 하면 허공을 잡게 된다.
실제 실험결과로는 다행히도 약 10분 동안 이같은 시행착오를 겪으면 HMD를 착용한 사람의 두뇌가 이러한 시각차에 적응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문제는 HMD를 벗은 후다. 이때는 사물을 지각하는 두뇌가 처음과는 반대의 착각현상을 일으키게 된다. 이 착각현상은 이전보다 길어 30분 가량 지속된다.
비오카 박사는 아직까지는 이같은 두뇌의 착각현상이 장기적으로 어떤 정신물리학적 영향을 미치는지는 앞으로 연구해야 할 과제라고 밝혔지만 이같은 결과만으로도 충분히 인체에 위험하다고 경고한다.
그는 『50년대 TV가 발명된 이래 인간이 TV를 시청한 총 시간을 합쳐보면 7년 정도였지만 앞으로 TV나 전화·PC·라디오·신문·책 등에 가상현실 인터페이스가 도입된다면 미래의 세대들은 일생 동안 15년 가량을 가상환경 속에서 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가상현실 환경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은 미래인의 건강에서 매우 중요한 요인으로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이같은 HMD 등의 장비를 이용한 가상현실의 활용은 이미 군사용 시뮬레이션과 의학 분야에서 도입되고 있으며 일반인들이 구매할 수 있을 정도로 싼 가격으로 이들 장비를 공급하고자 하는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이것은 특히 모든 컴퓨터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업체들이 지향하는 일치점이기도 하다.
이미 95년경 이같은 계획이 구체화돼 저렴한 가격의 HMD가 일부 나오기도 하고 고급 게임장에서 저가형 HMD를 도입한 3차원 게임이 개발되기도 했다.
하지만 현재 10만달러에 가까운 고가의 장비인 HMD에서도 두뇌에 심각한 착각현상을 발생시킬 수 있는데 이를 조잡한 부품과 단순한 기술을 적용한 저가형 제품으로 만들 경우 「시뮬레이션 병」으로 불리는 심각한 멀미 증세를 보일 수도 있다는 것이 비오카 박사의 경고다.
<구정회기자 jhko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