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방송개혁과 방송인의 자세

 정길화 PD연합회 회장

 요즘 여기저기서 방송을 비난하는 목소리가 높다. 방송 현업에 종사하는 PD 입장에서는 가학적으로 들리기까지 한다. 아무리 소리높여 『방송의 잘못은 인정하지만 현업 방송인 역시 피해자에 불과하다』 『방송도 사회통합과 환경감시를 위해 기여한 것이 있으며 방송 민주화를 위해 나름대로 노력했다』 『방송인의 전문성과 자율성을 인정해 주지 않고 무슨 좋은 방송을 기대하느냐』는 등 항변을 하더라도 메아리 없는 외침에 불과할 때가 많다.

 아직 노골적으로 말을 안해서 그렇지 학계·시청자단체·시민단체 관계자들이 방송을 보는 눈은 싸늘하기 그지없다. 이들이 방송을 불신하고 우려하는 것에는 충분한 역사성과 타당성이 있다. 편파·불공정과 선정·폭력으로 압축되는 우리 방송의 원죄는 파업투쟁과 무노동 임금 정도로 해소되는 것은 아니다. 그것으로 방송 현업인이 무임승차하지 않았다고 자기위안을 삼을 수 있을지 모르되 세론은 그렇지 않다.

 이제 방송 현업인이 개혁의 걸림돌이라는 말도 방송계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 KBS2의 분리반대 주장, MBC 민영화 반대 등도 기득권 고수를 위한 것이며 이에 찬성하는 타방송사의 의견도 자사이기주의의 발현으로 풀이된다. 외주제작 확대 조치를 반대하는 것도 현재의 유리한 조건에 안주하는 소치로 간주된다.

 그만큼 방송에 대한 불신이 심각하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으로, 방송 현업인 입장에서 보면 야속한 점도 있다. 하지만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세간의 여론이 틀린 것도 아니다. 시청자가 보는 것은 TV수상기일 뿐이다.

 방송사 내부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결코 알 바가 아니다. 외부에서 보는 방송 현업인이나 간부진들은 한통속으로 보일 뿐이다. PD 등 방송 현업인들 역시 조직논리에 봉사하기로는 예외가 아니다.

 PD연합회가 최근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작년부터 현재까지 프로그램을 제작하면서 타의에 의해 프로그램이 수정된 경험이 있는 PD는 63.4%에 달한다. 프로그램이 변질된 요인으로는 86%가 「간부진과의 의견 차이」를 들고 있고, 29.6%가 「경영진의 압력」을 들고 있다. 특히 기획·제작단계에서 부당한 간섭이 있을 경우 56.2%가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언필칭 「개별 PD는 독립된 존재이며 전문가」라고 자임하던 PD들이 정작 자신의 자율성이 도전받는 국면에서는 그저 조직논리에 복속하고 있음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다.

 미디어 연구자 토드 기틀린은 『텔레비전을 보면 매우 멍청할 것 같은 방송사의 간부·프로듀서들이 실제로 만나서 이야기해 보니 의외로 똑똑하더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어찌 들으면 시니컬하기만한 이 말은 아마도 시청률과 관료조직에 지배당하고 프로듀서의 창의성이 부정되는 미국의 사정을 지칭한 것이겠지만 어찌 그것이 미국에 국한된 얘기일 수 있겠는가.

 도리어 자본과 권력의 통제하에 놓여진 우리의 현실이 더 엄혹할 것이다.

 그러나 앞서의 설문조사 결과는 좋은 시사점을 주고 있다. 설문조사 결과 기획·제작단계에서 부당한 간섭이 있을 경우 응답자의 20.2%가 주관대로 제작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실 우리 방송의 미래는 이같은 생산적이고 적극적인 방송인들의 자세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 논의되고 있는 방송개혁이 방송 현업인 내부에서 자연스럽게 분출되는 이같은 창조성과 적극성을 수용할 수 있었으면 하는 기대를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