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글 긴생각> 대학과 기업의 관계

 대학은 미래의 학자와 산업일꾼을 길러낼 뿐만 아니라 차세대 기술의 산실로 통한다. 이러한 역할을 원활히 수행하기 위해서는 고급 인력 및 기술을 필요로 하는 기업의 적극적인 협조가 필수적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현실을 볼 때 학교보다 기술이 앞서 있는 몇몇 대기업은 소위 좋은 학생 데려가는 데에 더 신경을 쓰고 학교 자체를 발전시키는 데는 큰 관심이 없었다. 그래서 학생들을 입도선매하여 장학금도 지급하고 각종 혜택을 제공, 졸업 후 회사로 데려가곤 했다.

 이러한 관행은 그동안 많은 부작용을 낳은 것이 사실이다. 심지어 취업이 확정된 학생들은 열심히 공부할 필요성이 없었으며 실제로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아 이중 삼중으로 문제가 발생했다. 학교에서는 수업 분위기가 문제가 되었고 잘 배우지 못한 학생들은 기업에서 재교육을 시켜야 하기 때문에 이중으로 교육비가 들어갈 뿐만 아니라 기업의 기회손실은 막대한 것이었다.

 IMF 이후 우리나라 대학의 교육환경은 급속도로 악화되고 있다. 우선 기업에서 제공하는 장학금이 크게 줄었기 때문에 학업을 계속하기가 어려운 학생들이 속출하고 있다. 또 대학이 수행하는 연구과제가 격감, 최신 기술을 접하기도 어려워졌다.

 대학의 열악한 교육환경은 앞으로 기업의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것이 분명하다. 기업들은 당분간 많은 신입사원을 채용할 수 없다고 해도 대학에서 공부한 새로운 인력을 충원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기업은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두고 지금부터라도 얼마의 기금을 마련하여 응용과학 계통의 학생들을 지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우리나라의 대학들이 보유한 박사학위 소지자가 국내 전체 박사학위 소지자의 80%에 달하고 또 기업이나 외국 대학에서 연구경력을 갖고 있는 유능한 인재들이 각 대학에 많이 포진하고 있는 상황을 감안할 때 과거와 같이 학생들을 미리 확보한다는 개념으로 대학에 연구비를 제공해서는 안될 것이다. 또 국내 대학 관계자들도 최근 응용과학의 경우 상아탑 밖의 세상인 기업체와 관계를 갖지 않고서는 아무도 필요로 하지 않는 「죽은 기술」을 개발한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기업의 적극적인 투자도 필요하지만 대학교육의 80%를 담당하고 있는 사립대학에 대한 정부의 인식도 바뀌어야 한다. 국립대학과 사립대학 모두 국가가 필요로 하는 인재를 길러내는 곳이고, 또 연구결과도 국가나 기업에 똑같이 도움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사립대학에 대한 지원을 더욱 강화할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 대학이 특성화되어야 한다는 것을 많은 지식인들이 지적해 오고 있으나 아직도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단적인 예로 서울대학의 경우 정부가 지원하는 거의 모든 것에 최우선 순위를 갖는 것 같다. 그러나 면밀히 관찰하여 보면 한양대학의 경우 많은 졸업생이 국내 기업으로 진출하고 서울대학의 경우는 외국으로 유학을 가거나 기업보다는 대학교수로 진출하고 있는 상황이다. 투자에 대한 수익률(RIO)로 볼 때 산·학 협동에 관한 한 어느 대학에 우선투자 순위를 주어야 하는지는 명백하다. 이것은 학교를 특성화한다는 정부의 정책방향으로 보나, 국민이 낸 세금을 바로 써야 한다는 원칙에서도 어긋나지 않는다.

 위에서 단지 두 대학의 예를 들었으나 타 대학의 경우도 비슷한 경우를 얼마든지 발견할 수가 있다. 기업에서도 이와 거의 같은 생각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실제로 기업에서 절실히 필요로 하는 기술의 개발이 모두 유명 대학의 유명 교수가 하는 것은 아니다.

 끝으로 오랫동안 기업과 정부출연연구소에서 연구했던 인력이 최근 대거 대학으로 진출함에 따라 기업이 절실히 필요로 하는 기술개발에 국내 대학들이 훨씬 더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게 됐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김석기 고려대 전자공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