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빠진 셰익스피어에 관한 진실 혹은 거짓말. 이 영화의 출발점은 「로미오와 줄리엣」을 쓴 셰익스피어에 대한 경외심과 그로부터 비롯되는 상상력이다. 셰익스피어가 「로미오와 줄리엣」 같은 비극적 러브스토리의 완숙미를 보여줄 수 있었던 것은 그 스스로가 사랑의 주인공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라는 설정에서 영화의 초안이 마련됐다.
이 영화에는 실존 인물과 가공의 인물이 혼재돼 있으며 거기에서 비롯되는 절묘한 하모니는 관객들에게 대문호의 감춰진 사생활을 엿보는 듯한 호기심과 함께 아름다운 사랑이야기의 동조자가 되게 한다. 「로미오와 줄리엣」을 모티브로 하지만 「셰익스피어 인 러브」는 눈물을 자아내기보다는 오히려 유쾌하고 즐거운 로맨틱 코미디다. 영화의 줄기가 되는 이루지 못할 사랑은 창작의 열정을 뒷받침하는 동기가 되고 연극 무대라는 공간은 영화와는 또 다른 과장된 캐릭터를 양산하며 웃음을 준다. 16세기 영국의 면면을 세심히 훑고 지나가는 풍자와 묘사 또한 영화적인 힘을 뒷받침하는 요소다.
1593년 런던, 로즈 극장 주인인 필립은 빚을 청산하기 위해 셰익스피어의 코미디를 무대에 올리기로 한다. 구상중인 작품 제목은 「로미오와 해적의 딸 에델」이다. 한편 촉망받는 젊은 작가 윌리엄 셰익스피어(조지프 파인즈 분)는 슬럼프에 빠져 글을 쓸 수 없자 점쟁이를 찾아가고 그로부터 『사랑만이 천재성을 회복시켜줄 것』이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그러나 자신의 사랑인줄 알았던 여인이 욕심 많은 극장주인 버베이지와 정사를 나누는 것을 본 순간 실의에 빠져 대본을 쓰레기통에 던져버린다.
반면 시와 연극을 좋아하는 부잣집 딸 바이올라(기네스 팰트로 분)는 배우가 되고 싶은 마음에 남장을 하고 셰익스피어의 연극 오디션에 참가한다. 바이올라를 뒤쫓다 그녀가 여자임을 알게 된 셰익스피어는 사랑에 빠지고 두 사람이 나누는 사랑의 대사는 다음날 그대로 「로미오와 줄리엣」의 각본이 되어버린다. 그러나 바이올라는 이미 웨식스 백작과 정략결혼이 내정되어 있는 상태였다.
신분의 벽을 뛰어넘지 못하는 셰익스피어의 슬픔은 『코미디만 된다』는 연극의 금기를 깨고 「로미오와 줄리엣」이라는 이루지 못할 비극적 러브스토리를 낳게 된다.
우리 관객의 보편적 정서와는 다소 거리감이 있지만 아카데미에 13개 부문이나 후보로 오르는 등 이 작품에 대한 할리우드의 찬사는 기발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한 시나리오와 그 상상력을 밀도 있고 세련되게 끌고 나간 힘에 있을 것이다.
<엄용주·자유기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