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영
◇81년 서울대 금속공학과 졸업
◇83년 한국과학기술원 재료공학 석사
◇89년 대우중공업 과장
◇92년 독일 원자력연구소(KFAIFF at Juellch) 객원연구원
◇94년 호주 뉴캐슬대학 기계공학 박사, 미국 버몬트주립대학 화학과 포스트닥
◇현재 LG화학 기술연구원 배터리 연구소 책임연구원
최근 수년간 캠코더·셀룰러폰·노트북 PC 등 휴대형 전자기기시장, 이른바 3C 마켓이 급속히 성장하면서 리튬이온(Li-Ion) 전지도 급신장하고 있다. 리튬이온 전지는 고성능 2차 전지(Secondary Battery)로 분류할 수 있다. 사용 후 다시 충전해 재사용이 가능한 전지를 2차 전지라 한다. 특히 니카드(Ni-Cd), 니켈수소(Ni-MH), 리튬이온 전지와 같은 고성능 2차 전지는 5백회 이상 충·방전이 가능하다. 이에 비해 삐삐 등에 주로 쓰이는 알칼라인 전지와 같이 한 번만 사용할 수 있는 전지를 1차 전지(Primary Battery)라 한다.
리튬이온 전지는 원통형과 각형 등 두 가지가 있다. 원통형 전지는 주로 노트북 컴퓨터나 캠코더에 쓰이고 각형 전지는 주로 휴대전화에 쓰인다. 니카드와 니켈수소 전지는 완전히 방전시키지 않고 충전해 사용하면 용량이 줄어드는 메모리 효과(Memory Effect)가 나타날 수도 있다. 따라서 이들 전지는 용량을 다 사용하지 않았더라도 완전히 방전시킨 후 다시 충전해야 하는 불편한 점이 있다. 이에 비해 리튬이온 전지는 용량이 크며 가볍고 특히 메모리 효과가 없어 용량이 남아있는 상태에서 그대로 재충전해 사용 가능하므로 편리하다.
지난 92년 일본 소니사가 개발, 소형 2차 전지시장에 진입하기 시작한 리튬이온 전지는 초기 일본 생산업체들도 생산이나 품질관리기술이 완벽하지 못했다. 또 전지를 적용하는 업체의 충전기나 전자기기 설계기술이 최적화되지 않아 전지에 무리를 주는 경우도 있어 안전성에 대한 논의가 일부 제기되기도 했다. 하지만 리튬이온 전지는 가볍고 메모리 효과가 없다는 장점이 고객들에게 부각됐고 미국 UL 안전규격의 적용 등 제도적인 보완이 뒤따르고 안정화 단계를 거쳐 96년부터 소형 2차 전지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양극·음극·전해질·분리막 등으로 구성되어 있는 리튬이온 전지의 양극에는 LiCoO₂가, 음극에는 흑연 등 탄소가 주로 사용된다. 이들 전극 물질은 이온 상태의 리튬(LI+ , Li-Ion)이 내부에 가역적으로 삽입됐다가 다시 빠져 나올 수 있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즉 LiCoO₂의 내부에 위치하는 리튬이 빠져 나와 전해질을 따라 이동해 탄소 내부로 들어가는 현상이 리튬이온 전지에서는 충전에 해당되며, 그 반대 방향으로 이동은 방전에 해당된다.
리튬이 재료 내부로 들어가거나 나올 때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부피의 팽창·수축이 동반된다. 이에 따른 전극의 열화는 전지 수명에 영향을 주는 중요한 원인 중 하나가 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리튬이온 전지를 완전히 방전시키지 않고 재충전해 사용하는 것이 전지의 수명에 좋은 영향을 준다고 이해할 수 있다. 이때 주의할 점은 전지를 완전히 충전시킨 후 1달 이상 장기간 사용하지 않고 방치하면 용량이 2∼3% 정도 줄어들 수 있으므로 장기간 사용하지 않는 경우 재충전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보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리튬이온 전지는 실제 사용 조건보다 몇배 더한 과부하 조건에서 평가를 거쳐 개발되므로 실사용 조건에서는 상당히 안정된 성능을 보인다.
리튬이온 전지는 충전시 배터리 업체가 설정한 충전전압(4.1V 혹은 4.2V)을 넘어서면 수명이 단축될 수 있어 기존 2차 전지 충전방식에 주로 채택되는 정전류(Constant Current) 충전방식과 달리 정전류-정전압(Constant Current-Constant Voltage) 충전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리튬이온 전지의 경우 충전기가 정상 작동하지 않을 것을 대비해 항상 보호회로가 장착된 배터리팩(Battery Pack) 상태로 판매되고 있다. 보호회로가 장착되지 않은 단전지(Bare Cell)는 전기적·기계적으로 가혹한 상황에 처하더라도 안전성이 확보되도록 설계돼 있다. 외부 단락(Short Circuit)으로 과전류가 흐를 경우 PTC소자(Positive Temperature Coefficient Device)가 작동, 급격한 저항 증가로 전류를 차단해 준다. 또 전지의 이상발열이 발생할 경우 양극과 음극을 격리해 주고 미세 기공으로 전해질의 이동만 가능케 해주는 분리막(Separator)이 기공을 폐쇄, 전류의 흐름을 차단하는 방법(Shut Down Mechanism)을 채택해 안전성을 확보할 수 있다. 까다로운 미국 UL의 안전규격 인증을 받으면 전지가 물리적으로 훼손되는 경우까지도 안전성이 확보될 수 있다고 볼 수 있다.
리튬이온 전지의 원천 특허는 리튬을 저장 방출할 수 있는 양극재료(예 LiCoO₂)에 대한 것으로 영국 원자력연구소(AEA)에서 보유하고 있다. AEA가 실용화하기 이전에 소니가 실시권을 매입해 리튬이온 전지를 처음 개발한 이후 일본 업체들은 많은 방어 특허를 출원하고 있다. 2000년 3월에 종료 예정인 AEA의 원천 특허는 한국에 출원돼 있지 않다. 일본의 특허들도 주로 미국·일본·일부 유럽에만 국한되어 있는 것만으로 봐도 선진국에서는 한국 등 아시아지역에서 고성능 2차 전지 개발은 불가능할 것으로 예상했을 정도로 매우 어려운 기술이다. 일본의 경우도 많은 회사가 개발 및 양산에 참여하고 있으나 전극 제조공정에 응용될 수 있는 비디오 코팅기술 및 재료기술을 보유한 후지포토필름도 탈락했고, 미국에서도 시도했으나 여러 가지 이유로 양산을 포기한 상태다.
전지의 성능을 잘 나타내주는 지표로 단위부피 당, 혹은 단위무게 당 에너지 저장능력인 에너지 밀도(Wh/ℓ, Wh/㎏)를 사용한다. 현재 세계시장의 90% 이상을 점유, 리튬이온 기술을 선도하고 있는 일본은 리튬이온 전지의 성능이 본 궤도에 오른 지난 95년에 2백60 Wh/ℓ, 1백10 Wh/㎏의 수준이었으나 98년에는 3백50 Wh/ℓ, 1백40 Wh/㎏으로 3년 사이 약 30% 증가했다. 또 향후 5년 이내 다시 30% 이상 증가한 5백 Wh/ℓ, 2백 Wh/㎏ 수준의 고용량화가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우리나라의 경우 LG화학을 비롯한 몇개 업체가 개발에 참여하고 있다. LG화학의 경우 97년에 일본제품 수준을 상회하는 리튬이온 전지 개발 및 파일럿공장 가동에 성공, 올해 1월부터 양산을 시작한 바 있다. 삼성전관·SK 등도 양산을 준비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어 2000년에는 약 5천억원 규모의 국내시장과 약 5조원 규모의 세계시장 진출이 가시화되고 있다.
현재 주로 판매되고 있는 LiCoO₂·그라파이트(Graphite)계 리튬이온 전지는 제1세대 리튬이온 전지라고 할 수 있다. 같은 재료를 채택하고 고분자 전해질을 사용한 리튬이온 폴리머 전지도 리튬이온 전지 기술의 변형으로 볼 수 있다. 폴리머 전해질을 사용하면 전도도가 저하되므로 대전류방전 특성이나 저온방전 특성이 떨어지는 반면 안전성이 다소 향상될 수 있다는 특성의 차이가 있다. 하지만 가장 큰 이점은 3㎜ 이하 박형 전지의 제조가 가능하고 전극의 유연성이 커서 곡면에 장착하거나 여유 공간의 활용이 가능하도록 형상을 다양하게 할 수 있다는 점이다.
리튬이온 전지는 양극 및 음극 재료를 다양하게 적용할 수 있다는 데 향후의 성장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차세대 양극재료는 LiCoO₂·LiMn₂O₄ 등이 있다. 이들 두 종류의 재료비가 Co계의 양극재에 비해 저가라는 이점이 있다. Ni계의 경우 Co계에 비해 30% 정도 용량이 크고 가격은 절반 수준이나 열안정성 및 수명 특성이 떨어지는 등의 단점이 있다. 망간(Mn)계의 경우 용량은 Co계에 비해 10% 정도 작으나 가격은 약 4분의 1 수준이고 안전성이 뛰어난 반면 고온에서 수명 특성이 떨어지는 단점이 있다. 새로운 재료의 단점은 그간 많은 노력에 의해 보완되어 실용화 단계에 이르렀다. Mn계 재료를 채택한 리튬이온 전지는 캐나다 몰리에너지사에 의해 개발되어 판매되고 있으나 아직은 용량이 작아 Co계의 리튬이온 전지와 직접 경쟁은 힘든 상태다. 그러나 향후 전기자동차 등에 채택될 대형 전지의 경우, 양극 재료의 가격 및 고용량화에 따른 안전성 확보 등을 고려하면 Mn계의 양극재가 가장 유리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새로운 양극재를 채택하는 차세대 리튬이온 전지는 응용 분야에서 요구 특성에 따라 단계적으로 적용될 전망이고 새로운 물질 개발에도 많은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대형 전지를 사용하는 전기자동차 경우 전원을 1백% 전지에 의존하면 약 2백∼3백㎏의 전지가 필요하므로 어떤 전지를 사용하더라도 가까운 장래에는 경제성을 확보하기 힘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가솔린 엔진을 사용하며 전지를 일부 사용하는 하이브리드 전기자동차의 경우 수십㎏의 전지만 필요하므로 세계적으로 활발한 개발이 이뤄지고 있다. 일본의 경우 니켈수소 전지를 사용한 하이브리드 전기자동차가 양산 단계에 있다. 리튬이온 전지의 경우도 전기자동차용으로 많은 연구가 진행되고 있고 특히 하이브리드 전기자동차용으로 먼저 실용화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국내에서 리튬이온 전지산업이 정착돼 지속적으로 성장하려면 국내 기반이 미약한 제조 장비나 원재료 및 부품 등 관련된 기반기술 확보와 새로운 산업분야에서 필요로 하는 전문인력의 양성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수년 전에 설립된 전지조합이 산업자원부 후원으로 추진되는 중기거점과제 수행에 참여, 산·학·연 연구체계가 모양을 갖춰가고 있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