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정보기술(IT)업계에서 한국인으로는 드물게 성공신화를 창조해가며 이목을 집중시켰던 손영권씨가 세계최대 하드 디스크 드라이브(HDD) 제조업체인 퀀텀사 사장자리를 물러나(본지 3월 8일자 보도) 그 배경에 관련업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손영권 퀀텀 사장의 사임소식에 대해 「퀀텀의 외형감소」와 「한국인이라는 핸디캡」이 큰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의문이 줄곧 제기됐기 때문이다.
손영권씨의 이번 결정은 그의 성격을 아는 사람들이나 미국기업에서 주주와 경영자의 관계, 이익분배구조를 잘 아는 사람들에게는 그다지 생소할 게 없으나 매출규모와 회사의 위상 등 외형적인 면을 중시하는 한국사회의 정서상 이해하기 어려운 결정으로 비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광스토리지용 반도체를 생산하는 오크테크놀로지의 최고경영책임자(CEO)로 옮긴 손영권씨는 본지와 영상전화 인터뷰에서 『오크테크놀로지의 경영상태를 극대화해 전문경영인의 역량을 인정받기 위한 결정』임을 밝혔다.
그는 『실리콘밸리에서의 성공은 꼭 블루칩 업체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며 리스크와 그 리스크 만큼의 보상이 보장되는 벤처기업을 키워 능력을 인정받는 게 실리콘밸리에 있는 사람들의 도전의식』이라고 밝혀 이번 기회에 자신의 경영능력을 평가받는 순서를 밟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번 손 사장이 내린 결정은 크라이슬러나 IBM 등 세계 굴지의 기업의 예에서 보듯이 CEO 명성에 따라서 주주와 자본이 대이동하는 미국 기업에서는 빈번하게 발생하는 추세다. 최근에는 CEO의 능력을 유형의 자산으로 평가하는 시스템이 고착되고 있기 때문에 손 사장은 CEO로서의 경영능력을 이번 기회에 인정받고자 결단을 내린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손 사장이 선택한 오크테크놀로지는 광스토리지용 반도체뿐만 아니라 디지털 이미징 시스템과 커뮤니케이션기기용 부품에서 뛰어난 기술을 확보하고 있으나 경영상태가 좋지 못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따라서 오크테크놀로지는 기획·판단·추진력면에서 높은 평가를 받아온 야전군 스타일의 손영권씨 영입에 적극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손 사장은 『6년 동안 근무했던 퀀텀사에 대한 남다른 애착이 남아있지만 같은 자리에 그대로 있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 결단을 내렸다』고 심정을 밝혔다.
<이규태기자 kt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