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TV를 잘 보지 않는 편이다. 싫어하는 것은 아니지만 일정에 맞춰 일을 하다 보면 절대적으로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필자가 놓치지 않고 보는 프로그램 중의 하나는 AFKN에서 방영하는 「Computer Chronicle(컴퓨터 연대기)」이다.
이 프로그램은 정보산업과 관련된 여러 가지 최신 소식, 정보산업을 움직이는 사람들과의 인터뷰, 컴퓨터 활용 팁, 심지어는 게임 공략법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소재를 다루고 있다.
정보산업의 흐름을 파악한다는 관점에서 본다면 「새너제이 머큐리 뉴스(San Jose Mercury News)」나 「전자신문」과 같은 활자매체를 따라잡을 수는 없지만 신문에서는 보여주지 못하는 시제품, 데모 화면, 인터뷰 등을 실감나게 직접 보여줌으로써 그 의미나 영향력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만하다.
또한 어느 정도 마음의 여유가 생기는 주말 저녁시간대에 30분 정도 방영하기 때문에 부담 없이 즐겁게 볼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최근에 본 내용 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어떤 전시회 특집이었다. 그 전시회를 보면서 놀랐던 점은 PC의 역사가 20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많은 아이디어들이 나오고 있으며 그 속도가 전혀 누그러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전시회의 대표작으로 소개된 것은 컴퓨터 VCR였다. 아이디어 자체는 아주 간단하며 누구나 쉽게 생각할 수 있는 것이다. 즉 컴퓨터에 TV 방송을 수신할 수 있는 장치를 설치하고, 방송내용을 비디오테이프 대신에 하드디스크에 저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마케팅에 근거한 여러 가지 매력적인 부가 기능들을 덧붙여서 제품화하고, 눈앞에서 실제로 작동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데 성공을 거두었다.
이 컴퓨터 VCR를 사용하면 기존의 VCR로는 불가능했던 많은 일들을 할 수 있게 된다. 예를 들면 개인용 채널 설정을 들 수 있다. 컴퓨터의 검색 능력과 멀티태스킹 능력을 이용하여 자기가 원하는 프로그램만 방영되는 채널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험프리 보거트를 좋아하는 올드팬이 있다면 험프리 보거트 채널을 만들 수 있다. 컴퓨터에서는 케이블 채널을 포함한 모든 채널을 24시간 검색하면서 이 배우가 나오는 프로그램은 모두 자동으로 저장해 놓게 된다. 그러면 아무 시간에나 이 채널을 보기만 하면 원하는 프로그램만 방영되는 것이다.
전시회에는 그밖에도 여러 가지 홈네트워킹 제품 및 웹기반의 애플리케이션들이 소개되었고, 개발자 및 많은 전문가들의 의견들이 같이 방영되었다. 자기가 개발한 제품에 대해서 열정적으로 설명하는 개발자들의 모습도 매우 인상적이었다.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느꼈던 점은 컴퓨터 분야에는 아직도 발굴되지 않은 영역이 무궁무진하며 우리가 해볼 수 있는 것들이 많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미 개발할 만한 것들은 남들이 모두 개발해 놓아서 더 할 만한 아이템이 없다고 불평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면에서는 우리보다 더 열악한(?) 조건을 가지고 있는 미국에서도 매년 새로운 아이디어들이 끊임없이 나오는 것을 보면 그런 불평은 근거가 없다는 것을 절감할 수 있다.
새로운 아이디어는 주위 환경에 대한 불평보다는 열심히 일하고 공부하는 과정에서 탄생한다는 것이 필자의 믿음이다.
「Computer Chronicle」을 보면서 비록 외국 사람이기는 하지만 동종업계의 사람들이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통해 각오를 새롭게 다지는 것이 어려운 IMF시대를 극복해 나갈 수 있도록 힘을 주는, 필자 나름대로 가지고 있는 조그만 생활의 지혜다.
<안철수 안철수컴퓨터바이러스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