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람> 길병원 이철옥 의료원장

 고희를 앞둔 길병원 이철옥 의료원장(69)은 늘 변화를 꿈꾸는 「청년정신」의 소유자다. 어제와는 다른 오늘, 숨가쁘게 흘러가는 정보화의 물결을 호흡하는 일에 누구보다도 열정적이다. 원격영상회의부터 데이터웨어하우스, 응급체계 전산망에 이르기까지 멀티미디어센터의 젊은 의사들과 열띤 토론을 벌이는 시간이 그는 즐겁다. 인터뷰가 있던 날도 엘리베이터 앞에서 처음 마주친 신입사원에게 건넨 이 원장의 첫마디는 이름을 묻는 대신 『자네의 정보화 마인드는 어느 정도인가』였다. 어쩌다 컴퓨터에 무관심한 의사를 보면 그 자리에서 불호령이 떨어진다. 매월 실시하는 길병원 직원들의 정보화교육에도 각별히 관심을 기울인다.

 새로운 밀레니엄을 앞두고 그의 화두는 사이버병원이다. 길병원이 전산센터를 만든 것은 지난 84년. 3년후엔 의사의 처방을 약국과 원무과로 보내는 처방전달시스템(OCS)을 가장 먼저 도입했다. 95년엔 역시 국내 최초로 본원과 백령도 길병원간 원격영상진료를 선보였다. 인터넷에 개설한 길병원 홈페이지는 하루 조회건수가 1만여건이나 된다. 멀티미디어 진단자료를 정보시스템으로 주고받는 첨단 의학영상정보시스템(PACS)을 갖추고 오는 2000년엔 본원과 6개 산하병원을 원격의료시스템으로 묶게 된다. 이처럼 정보화에 관한 한 최고의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는 게 길병원 의사들의 자부심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인간중심의 정보화」라는 게 평소 그의 지론이다.

 『휴머니즘의 토대 위에 기술의 첨탑을 쌓아야 합니다. 프로그램을 만드는 건 물론 기술이죠. 하지만 좋은 프로그램이란 만든 사람의 마음이 녹아들어 있어야만 합니다. 응급체계 전산망을 구축한다고 칩시다. 아무리 컴퓨터 천재라도 아이가 다쳤을 때 부모의 심정을 헤아릴 줄 모르는 프로그래머라면 자격이 없습니다. 첨단기술은 그냥 외피에 불과한 거죠.』

 히포크라테스의 정신과 첨단기술이 결합된 의료시스템으로 21세기 사이버병원시대를 열어가야 한다고 이 원장은 강조한다. 그러려면 어린 시절을 컴퓨터키드로 보낸 10대 청소년들을 사람냄새가 물씬 풍기는 프로그래머로 키워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아이들이 미래의 주역이라고 말하면서도 후원엔 인색한 게 우리사회입니다. PC를 업그레이드해 주는 것보다 봉사정신을 길러주는 게 먼저죠. 그래야 아이들이 커서 휴머니즘이 배어 나오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할 것이고, 정보사회를 살맛나는 사회로 만들 게 아닙니까.』

 21세기가 어떤 모습이 될지는 알 수 없다. 인공심장을 달고 다니며 몸 속에 박아넣은 반도체칩으로 커뮤니케이션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빛의 속도로 무한한 정보가 오가도 전혀 열이 발생하지 않는 새로운 전도체가 만들어질 수도 있다. 호기심에 가득차 다가올 신세계에 대해 이런저런 그림을 그려보는 10대들을 만날 때면 그는 이 아이들에게 생각의 틀을 바로 세워주는 것이야말로 미래에 대한 투자임을 절감한다. 초등학교때부터 성적표에 봉사점수란을 만들고 선진국처럼 대학입학이나 대기업 입사시험에도 방과후의 봉사활동이 영향을 미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이 원장의 주장이다. 의료원장으로 쉴틈없이 일하면서도 시간을 쪼개 가천 미추홀청소년봉사단 총재, 인천광역시 청소년자원봉사센터 운영위원장, 그리고 한국청소년연맹 총재까지 맡고 있는 것도 그런 확고한 교육관 때문이다.

 지난해 길병원 의료전산개발센터는 휴먼메디컬웨어라는 이름으로 다음 세기에 국내 의료전산을 이끌어갈 신개념의 의료전산시스템을 선보여 의학계의 관심을 끌었다. 이 시스템은 현장의 임상전문의와 간호사들이 환자의 입장에서 병원 각 부문의 프로세스를 분석하고 프로토타입을 만들어 이를 전산시스템으로 옮긴다. 단순히 첨단기술이 아니라 정보사회를 보는 철학과 사상이 있는 병원시스템을 만들자는 게 휴먼메디컬웨어의 목표다.

 『구슬이 서발이라도 꿰어야 보배 아닙니까. 모든 지식이 통합돼야 하는 거죠. 그 연결고리는 바로 휴머니즘입니다.』

 지난 20년간 길병원 의료센터를 이끌어온 이철옥 원장은 앞으로 휴머니즘으로 정보의 구슬을 꿰는 일에 신명을 바칠 것이라고 말한다.

<이선기기자 sk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