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이 보인다> 냉동인간

 지금 미국에는 33명의 냉동인간이 존재한다. 시간의 다리를 건너 암이 정복된 미래의 어느날 깨어나기를 꿈꾸며 이들은 영하 196도의 차디찬 알루미늄 캡슐 속에 누워 있다. 지구촌 곳곳에 이처럼 2030년을 기다리는 냉동인간이 얼마나 더 있을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냉동인간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최초의 냉동인간은 제임스 베드퍼드라는 심리학자. 지난 67년 당시 75세였던 베드퍼드 박사는 간암으로 죽음을 앞두고 위험한 도박을 선택했다. 미국 「알코어 생명연장재단」에 따르면 그는 대략 다음의 다섯 단계를 거쳤다.

 냉동인간을 만들려면 우선 심장이 멎자마자 30분 이내에 사람의 체온을 영상 3도 이내로 떨어뜨려야 한다. 다음에는 몸에서 수분을 제거할 차례. 인체의 혈액을 모두 빼내려면 대략 12시간이 소요된다. 세번째는 글리세롤과 인공혈액을 체내에 주입한다. 수분이 급격히 얼어버리는 빙결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다. 그리고 나면 급속 냉동과정이 기다린다. 실리콘기름 속에서 드라이아이스를 이용해 온도를 낮춰야 하는데 이때 마지노선은 영하 79도. 만일 그 이하로 내려가면 세포조직이 손상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장기보존을 위한 처리과정이 남아있다. 영하 196도의 액체질소가 채워진 알루미늄 통 속으로 옮겨지는 것이다.

 냉동인간과는 조금 다르지만 외과 수술에도 사람의 체온을 낮춰 세포의 죽음을 지연시키는 저체온 수술법을 쓰고 있어 흥미롭다. 체온이 떨어지면 몸의 대사가 거의 멈추기 때문에 수술을 하는 동안 피의 흐름이 멎는다 해도 죽음에 이르지 않는다. 체온이 30도 정도가 되면 심장박동은 정지하고 18∼20도가 되면 뇌의 대사기능도 멈춘다. 이를 순환정지 상태라고 부르는데 이때는 산소 공급이 불필요하기 때문에 심장은 비록 뛰지 않지만 살아 있는 일종의 가사 상태가 된다. 아직 순환정지 상태를 1시간 이상 지속시킬 수는 없다. 뇌와 심장, 간 같은 주요 장기의 세포가 손상되기 때문. 그래서 불치병에 걸린 사람들에게는 영하 196도의 냉동인간이 현재로서는 생명을 연장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냉동인간은 다시 살아날 수 있을까. 긴 겨울잠에서 깨어난 듯 아무렇지도 않게 거리를 활보하는 「Mr. 프리즈」들은 할리우드 영화의 단골소재. 하지만 실제 의학기술로는 냉동인간을 해동하기가 쉽지 않다. 다만 냉동인간을 만드는 과정이 난자와 정자 같은 세포조직의 냉동보관법과 유사하다는 점에서 그 가능성을 점쳐볼 수는 있다.

 정자의 냉동보관은 이미 120여년 전부터 시작됐다. 남아선호사상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고 인공수정을 통해 생산성을 극대화하려는 축산업계의 필요성에 의해 이루어졌다. 정자를 채취해 수분을 제거한 후 계란노른자를 주성분으로 한 곳에 이를 넣으면 삼투압 원리에 따라 수분이 제거된다. 다음에 영하 39∼40도 정도에서 급속 동결한 후 액체질소가 들어있는 컨테이너 속에 넣으면 끝이다.

 이렇게 보관된 정자는 36∼40도 정도에서 30초 이내에 녹인 후 냉동과정을 거꾸로 밟아 되살려낸다. 복원 성공률은 70%선. 이는 냉동보관이 시작된 초기 20%에도 미치지 못하던 것과는 비교하면 크게 개선된 수치다. 세포가 아닌 수정란의 동결과 해동이 성공한 것은 지난 70년대부터. 현재는 일부 포유류에 대한 동결과 해동만이 가능하다.

 냉동인간의 경우는 아직 성공률이 희박하리라는 것이 사실. 세포 수가 적다면 냉동해도 얼음결정이 생기지 않아 세포 파괴의 위험성이 적다. 하지만 인체는 무수히 많은 세포로 구성돼 있을 뿐만 아니라 각 장기마다 내한성도 달라 33명의 냉동인간 중 과연 몇명을 살려낼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다. 하지만 의학의 놀라운 발달은 언젠가 냉동인간의 꿈을 실현할 수 있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본다. 그렇게 되면 아들보다 젊은 아버지, 손자보다 어린 할아버지들이 한 집안에 살아가는 진풍경이 연출될지도 모를 일이다.

<이선기기자 sk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