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석 한국통신 경영연구소장
통신산업의 새로운 기술이 기존의 통신산업을 뿌리째 흔들고 있다. 최근 발간된 다운스와 무이의 「킬러 앱(Killer App)」에서는 컴퓨터의 처리능력이 18개월마다 2배로 향상된다는 「무어(인텔의 창업자)의 법칙」과 네트워크의 효용은 사용자 수의 제곱과 동일하다는 「맷칼피(스리콤의 창업자)의 법칙」을 소개하고 있다. 컴퓨터와 인터넷의 보편화를 바로 코앞에서 목도하면서 이런 통찰이 실감이 난다.
과거에 각광받던 섬유산업만 해도 중화학공업, 그 다음에는 반도체와 첨단 정보통신산업에 왕자자리를 양보해 왔다. 정보통신산업 안에서도 이제는 무선과 인터넷 사업으로 초점이 이동하고 있다.
사업자들의 위상도 여기에 따라 부침과 명암이 엇갈리고 있다. 시대의 조류를 따라 변화의 무게중심을 이끌어 나가든가, 자신을 그 주변에 위치시키는 기업은 흥하겠지만, 그렇지 못하면 망할 수밖에 없는 법이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외국사업자들도 가세한 요즈음의 글로벌 경쟁은 기업의 도태와 적자생존을 더욱 빨리, 확실하게 결정짓는다.
우리나라는 다행히 일찍부터 정보화의 중요성을 인식했고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주목할 만한 통신발전을 이룩했다. 「산업화는 늦었지만 정보화는 앞서가자」는 구호는 자연자원은 빈약하지만 인력자원이 우수한 우리에게는 정보화야말로 미래의 생존이 달려 있는 과제라는 것을 웅변적으로 나타낸다.
국가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21세기 정보기반 계획은 이 맥락에서 우리나라의 미래번영을 좌우할 중요한 정책이다. 필자는 이 정책을 서두르지 않고 치밀하게 추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정치적 구호로 끝난다든지 준비가 안돼 우왕좌왕하는 시행착오가 생긴다면 국가간의 정보화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우리의 정보기반정책 시행에 있어서 핵심 고려사항을 들라면 필자는 몇 가지를 꼽고자 한다. 우선, 공급 차원에서 설비에 대한 선행투자가 있어야 하지만 반드시 시장이 원하는 서비스를 적절한 가격에 제공할 수 있어야 하며 새로운 기술이 다시 출현하기 전에 사업자는 투자 대가를 회수할 수 있는 사업구도가 마련돼야 한다.
사업자는 가용한 기술을 가지고 소비자가 기꺼이 지불할 의사가 있는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며 그렇지 못할 경우는 더 싼 유사서비스를 제공하든가 기술의 발전 또는 시장의 도래를 기다려야 한다.
훌륭한 멀티미디어 서비스는 가능하지만 현재로서는 지나치게 비싼 BISDN 서비스 대신에 유사한 염가의 인터넷 영상서비스가 널리 사용되고 있는 것이 그 예다.
다음은 시장경쟁을 통해 사업자들로 하여금 더 빨리, 더 효과적으로 고객들이 원하는 광대역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동기유인을 제공하는 것이 정부의 중요한 역할이다. 문제의 핵심은 어떻게 가장 효과적으로 정보화 비전을 달성할까 하는 방법론인데 제반 관련제도를 치밀하게 마련하고 공정하게 규칙을 준수하도록 감시하며 성공적인 사업자들이 보상을 받아 누릴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이 중요하다.
마지막으로는 수요 촉진이다. 인터넷처럼 네트워크화되고 자율화된 오늘날의 정보통신 세계에서는 사용자간의 상호작용을 통해 기술혁신이 촉진되고 새로운 서비스가 계속 네트워크에 더해짐으로써 네트워크 가치가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한다.
포스트모더니즘적인 Prosumer(공급자인 Producer와 소비자인 Consumer의 합성어)라는 용어는 이러한 추세를 잘 나타낸다. 따라서 대규모 공적 자금을 우리나라 모든 가구나 또는 모든 학생들이 고성능PC를 사는 데 지원토록 하고 유용한 네트워크용 소프트웨어와 콘텐츠를 개발해 보급한다면 그 효과가 엄청날 수 있다.
막대한 광대역 정보유통 수요가 생기면 사업자들이 그에 필요한 정보고속도로를 놓자고 앞다퉈 나설 것이다. 망(網)하는 기업들이 망(亡)하지 않으려면 그밖에 다른 방법이 있을까. 신통치 않을지 모르지만 요사이 「뜨는」 게임방의 스타크래프트 게임 같은 예도 시사하는 바가 있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