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이브> 표준전쟁

 VCR가 전세계 전자산업의 관심을 끌었던 70년대 후반의 일이다. 당시 일본 소니는 VCR 기술분야에서 단연 두각을 나타냈다. 획기적인 성능을 갖춘 베타방식의 VCR를 독자 개발해 이 분야 세계시장을 선점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반면에 경쟁사인 마쓰시타의 경우 VHS방식의 제품이 소니에 비해 한수 아래인 점을 감안해 관련기술을 개방하고 동종업체들을 같은 방식의 생산에 참여토록 유도했다. 시장지배력이 큰 업체들이 줄줄이 VHS방식 제품의 상품화에 나서면서 상황은 돌변하기 시작했다. 베타방식은 소니만이 상품화한 나홀로 기술인 반면 VHS기술의 경우 세계표준으로 자리를 굳히게 된 것이다. 표준이 기술을 극복한 사례다.

 전세계적으로 통신장비분야처럼 미국의 시장개방 압력이 거셌던 분야도 드물다. 미국은 당시 전가의 보도처럼 슈퍼 301조를 들먹이면서 교환기 등 통신장비의 시장개방에 열을 올리고 있었지만 유독 교환기 생산기술이 전무한 뉴질랜드의 경우는 예외였다. 뉴질랜드는 수십억 달러의 개발비가 드는 디지털교환기 개발보다는 자국실정에 적합한 제품의 표준화에 주력했다. 그 결과 세계시장에서 최고의 경쟁력을 지닌 미국의 교환기업체도 뉴질랜드시장 진입에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었던 것이다.

 하나의 표준이 세계를 지배하는 시대가 열리고 있다. 세계 각국은 지금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세계 표준화의 흐름을 주도면밀하게 파악하기 위해 여념이 없다. 표준화는 이제 세계시장에서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한 중요한 툴로 자리잡고 있는 추세다. 이같은 상황에서 자국의 표준을 세계표준으로 제정하기 위한 경쟁이 날로 치열해지고 있다. 한마디로 표준전쟁으로 치닫고 있는 셈이다. 국내에선 처음으로 오늘부터 세계 각국의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멀티미디어 국제표준화회의가 열린다. 이번 서울회의에선 세계 멀티미디어산업의 흐름을 좌우하게 될 다양한 규격의 국제표준을 논의하게 된다. 이번 기회에 정보통신 표준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