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 2000년(Y2K) 문제가 사회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키면서 이를 둘러싼 법적 대응방안이 새로운 이슈로 등장하고 있다. 8개월 정도 시한을 남긴 Y2K 문제는 그동안 주로 기술적인 부분에 치중해왔지만 앞으로는 이를 법적차원으로 대응해 첨예한 이해관계가 얽힌 각종 소송에 대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가고 있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 각국은 Y2K 문제와 관련한 법적소송이 잇따를 것으로 보고 이의 대책 마련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아직 Y2K 문제에 대한 법적 근거가 명확하게 설정되지 않은 게 현실이다. 이에 따라 실제 소송이 발생할 경우 해결비용 부담이나 미해결시 책임문제와 손실부담에 대한 분쟁발생의 소지가 잇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법률전문가들은 Y2K 소송과 관련, 가장 먼저 대두되는 문제가 제조물책임법에 따른 프로그램 개발자나 공급자를 상대로 책임을 요구하는 소송이라고 지적한다. 제조물책임법은 제조자와 직접적인 계약관계가 없는 피해자라도 제조자를 상대로 배상책임을 추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소프트웨어 사용허가 약정에 Y2K 문제 언급이 없거나 판매업자가 Y2K 문제는 소비자의 예정된 위험이라며 업그레이드에 필요한 추가비용을 요구할 때도 소송분쟁에 휘말릴 수 있다. 이와 함께 Y2K 문제해결 시간이 촉박해 컴퓨터 프로그램 복사본을 Y2K 해결 서비스업체에 제공하는 경우, 소프트웨어 저작권 침해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특히 이같은 Y2K 문제 관련소송은 전 산업부문에 걸친 다양한 분야에서 봇물터지듯 쏟아져나올 것으로 전망돼 이에 대한 대응은 그 어느 때보다도 시급한 것으로 지적된다.
예컨대 Y2K 문제를 해결하지 않은 은행은 1999년 1월에 통장을 개설한 고객이 2001년 1월에 예금을 인출할 때 컴퓨터 연도인식 오류로 마이너스 98년 동안 예금을 한 것으로 계산돼 이자환산에 일대 혼란이 발생, 이에 대한 피해보상을 청구하는 사례가 속출할 가능성이 크다.
또 신용카드를 사용할 때도 이와 유사한 사건이 일어날 수 있다. 2001년에 태어난 사람이 신용불량자 가운데 1901년 출생한 사람과 생일이 동일할 경우 금융기관과 신용거래를 할 수 없게 돼 피해를 당할 수밖에 없다. 실제 이같은 피해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일부 선진국에서 이미 발생해 큰 파문을 일으킨 바 있다.
미국 디트로이트 부근의 한 식품점은 금전등록기가 2000년에 기한이 만료되는 신용카드를 읽어내지 못하자 등록기를 생산한 제조업체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또 미시간주의 한 농산물시장은 판매시점관리(POS) 등록기들이 물건값을 계산할 때 유효기간이 2000년 1월 1일을 넘는 신용카드를 인식하지 못해 피해가 발생하자 이 시스템을 설치한 업체를 대상으로 손해배상을 청구하기도 했다.
이처럼 Y2K 문제를 둘러싼 소송사건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어 소송대란의 조짐은 더욱 짙어지고 있다. 대부분 Y2K 문제와 관련된 소송사건을 2000년 1월 1일 이후의 문제로 인식하고 있으나 현재 이미 적지 않은 송사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일부 Y2K 전문가들은 「이미 소송대란의 서막이 올랐다」고 지적하고 있다.
Y2K 소송은 Y2K문제로 인해 야기된 손해발생과 그 해결비용을 누가 부담해야 하는가로 크게 구분된다. 특히 Y2K 소송은 그 성격상 개인뿐만 아니라 집단소송의 가능성이 높아 파급효과도 그만큼 클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연말 미국의 컴퓨터 소프트웨어 사용자들이 Y2K 문제와 관련, IBM과 마이크로소프트를 상대로 각각 집단소송을 제기한 사건이 발생했다. IBM을 상대로 집단소송을 주도한 「마리오 유」라는 외과의사는 IBM의 유닉스서버인 RS/6000과 운용체계(OS) AIX 4.1, 메딕응용소프트 7.0에 Y2K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며 이에 대한 책임을 강조했다.
그는 이 제품을 이용하는 수천명의 사용자들이 Y2K 문제로 병력기록·진료예약·실험결과가 혼선을 빚어 심각한 문제에 직면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Y2K 문제가 의료계 전반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이를 대변이라도 하듯 최근 미국의 의료장비 업체인 메디컬매니저가 자사의 의료관리 소프트웨어 사용자인 의사들로부터 집단소송을 당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이 소송에서 사용자들은 『메디컬매니저가 2000년부터는 사용할 수 없는 소프트웨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이를 구매자들에게 알리지 않고 판매했다』며 Y2K문제를 무료로 해결해줄 것과 함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마이크로소프트 역시 소프트웨어 개발업체인 루스 카즈마렉이 주도하는 사용자들에 의해 피소됐다.
원고측은 마이크로소프트가 윈도용 개발도구인 폭스프로 2.5와 비주얼 폭스프로 3.0이 99년 12월 31일 이후 Y2K 문제에 직면할 줄을 알면서 출시했다며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수정 프로그램을 공급하도록 요구했다.
이처럼 Y2K 관련 소송사건이 점차 확산됨에 따라 이른바 「Y2K 신드롬」도 생겨나고 있다. 보험회사들이 Y2K 문제로 인한 집단소송을 우려해 보험약관을 개정, 소비자들과 재계약을 체결하려는 것이다.
이같은 현상은 자동차보험과 화재보험 등 각종 보험상품을 취급하는 국내 보험회사들을 중심으로 활발히 일어나고 있다.
손해보험 업계는 올해부터 판매되는 1년 이상 장기보험 상품의 경우 Y2K 문제에 곧바로 직면하게 돼 보험업계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다고 보고 면책약관 도입을 적극 추진중이다.
그동안 보험약관에는 「컴퓨터 오류로 인한 손해는 보상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없어 앞으로 Y2K 문제로 사고가 발생했을 때 보험회사가 전적으로 손해배상을 할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손해보험 업계는 지난해부터 Y2K관련 특별대책반을 가동, 이와 관련한 면책약관은 물론 예상 가능한 손실액을 도출해내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최근에는 이와 유사한 사건이 미국에서 실제 발생해 국내 보험업계의 지대한 관심을 끌고 있다.
미국 신시내티 보험은 Y2K 문제가 있는 소프트웨어를 판매했다가 소송을 당한 소스데이터시스템스(SDS)의 기업책임보험이 Y2K 문제해결에 따른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것인지를 판결해주도록 아이오와주 연방지방법원에 요청했다.
SDS는 지난 96년 켄터키의 파인빌병원협회에 병원관리 프로그램을 판매했으나 Y2K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것으로 밝혀져 소송을 당했으나 Y2K 문제에 대한 보장을 한 바 없어 보험사가 그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신시내티 보험은 일반 책임보험의 경우, Y2K 문제에 따른 일부 비용을 보험적용 대상으로 하고 있지만 개인이나 자산에 대한 손실이 발생하기 전에 예측 가능한 결함을 수리하는 비용은 보험적용 대상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이 사건은 그 결과 여부에 따라 국내 보험업계에도 파급효과가 클 것으로 전망된다.
이처럼 Y2K 문제와 관련한 소송이 잇따르자 미국 기업들이 Y2K로 인한 손해 배상 책임을 제한하는 입법을 추진중이어서 주목되고 있다.
미국 상공회의소와 제조업협회 등 미국내 80개 경제단체와 대기업들은 최근 Y2K 문제와 관련해 벌어지는 소송에서 기업의 배상책임을 줄이는 방안을 마련, 손해배상금을 최대 25만달러나 손해액의 3배 이내로 제한하고 변호사 비용은 시간당 1000달러로 제한하는 등 원칙을 정했다.
또 법정소송보다는 화의나 중재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 중소기업에 대해서는 Y2K 피해와 관련된 특별융자 제공을 요구하고 있다.
또한 Y2K 법적대응을 위해 일부 국가들을 중심으로 국가간에 발생할 수 있는 Y2K 분쟁을 중재하기 위한 국제협력 체제 결성에 적극 나서고 있다.
미국·영국 등 세계 5개국 법률단체들은 Y2K와 관련한 손해배상 등 민사분쟁이 수없이 발생할 것으로 보고 법원으로 가기 전에 문제를 해결하는 게 시급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 협력체제에는 미국의 잼스/엔디스퓨트, 영국 분쟁조정센터(CDR), 호주 분쟁해결대안기구(ADR), 싱가포르 중재센터(SMC), 홍콩 국제중재센터(IAC) 등 5개 법률단체가 참여하고 있다.
국내의 경우 정부차원에서 정보통신부 주관 아래 Y2K 문제로 2000년 이후 발생할 수 있는 분쟁에 대비, 관련 법규의 제·개정 검토 등 법적 대응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정통부는 소비자와 시스템 운영자간 일어날 수 있는 책임공방에 대비, 법률전문가들의 자문을 거쳐 Y2K 문제 법적분쟁 해결 가이드라인을 조만간 제시할 방침이다.
이와 관련, 한국전산원은 최근 한국법제연구원과 공동으로 「2000년 연도표기 문제 관련 법·제도적 대응방안 연구」를 통해 우리나라를 비롯한 각국 정부가 Y2K 문제와 관련해 적용하고 있는 법리와 외국의 Y2K관련 입법사례 등을 소개해 관심을 끌었다.
한국전산원은 Y2K 문제 해결비용 부담과 미해결시 책임문제 등이 실제로 발생할 경우 손실부담을 명확하게 정리하지 않은 채 분쟁발생의 소지를 그대로 남겨놓고 있다며 그에 대한 대응방안을 부문별·책임주체별·책임내용별로 구분, 나름의 해법을 제시하기도 했다.
Y2K 전문가들은 전세계의 Y2K 소송관련 시장이 손해배상 청구금액과 변호사 비용을 포함해 1조달러 규모에 이를 것이라며 이에 따라 오는 2000년을 전후로 Y2K 관련 소송사태가 Y2K 문제의 주류를 이룰 것으로 전망했다.
<김영민기자 ymkim@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