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러시아는 지난달 컴퓨터 2000년(Y2K)문제로 인해 핵 미사일이 오작동되는 것을 막기 위해 공동 조기경보센터를 설치한다는 것에 합의했다. 이 센터는 미국 콜로라도주 콜로라도 스프링스에 오는 9월 전까지 설치될 예정이며 Y2K문제에서 벗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2001년 2월까지 존속될 전망이다. 양측의 공동 조기경보센터 설치는 러시아의 Y2K문제 대비책이 미흡한 것으로 판단한 미국측이 세계평화를 위협할 수 있는 불의의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고자 제안, 성사된 것이다.
Y2K문제의 특징은 예고된 재앙이면서도 언제 어디서 어떤 형태로 터질지 예상하기 어렵다는 것에 있다. 미국과 러시아의 공동 조기경보센터 설립 합의는 바로 Y2K문제의 이런 특성을 반영하고 있다. 예고돼 있기는 하지만 구체적으로 예상하기 어려운 잠재적 재앙을 이해 당사자 사이의 협력과 신뢰구축을 통해 예방하려는 노력의 산물이라는 셈이다.
Y2K문제에 관한 이같은 당사국 사이의 협력, 더 나아가 국제협력의 필요성이 제기되는 것은 국방분야만이 아니다. 세계경제의 글로벌화 추세와 정보기술의 비약적인 발전으로 각국의 상호 의존도가 커지면서 금융·운송·통신 등 제반산업과 일상활동분야에서도 Y2K문제의 국제협력의 필요성이 강력히 요구된다. Y2K문제 해결능력의 국가·지역간 불균형이 세계경제의 원활한 흐름을 방해하면서 상당한 충격파를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한국의 A은행과 미국의 B은행 사이에 국제 금융업무가 진행된다고 가정할 때 A은행의 전산시스템은 Y2K문제가 완벽하게 해결됐으나 B은행은 그렇지 못하다면 두 은행 사이의 거래가 중단되고 그로 인한 도미노 효과로 국제 결제체계가 심각한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선진국들이 교역 상대국 업체들에게 Y2K문제의 해결을 강력히 요구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미국·호주·네덜란드 등 선진국들은 다른 선박과 인명의 피해는 물론 해양오염을 일으킬 우려가 있다는 판단에 따라 Y2K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선박에 대해 출입항을 통제하는 등 불이익을 주기로 했다.
제조분야에서도 선진국 업체들은 개도국의 부품 납품업체나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업체들을 상대로 원활한 제품공급을 담보할 수 있도록 Y2K문제를 하루빨리 해결할 것을 촉구하면서 그렇지 못할 경우 거래를 끝내겠다는 통보를 하는 추세다.
이처럼 Y2K문제가 기업들의 사활이 걸린 핵심 현안으로 부상하고 있으나 기술·정보·자금 등 모든 면에서 선진국 업체들에 비해 열세에 있는 개발도상국의 상당수 업체들은 여전히 Y2K문제 해결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에 따라 Y2K문제를 국제적인 차원에서 해결하자는 움직임도 활발히 일고 있다. 지난해 국제연합(UN)이 Y2K문제 해결을 위한 국제협력을 촉구하는 결의문을 채택한 것은 이같은 움직임을 확산시킨 계기가 됐다. 당시 UN 총회는 결의문에서 『모든 회원국이 Y2K문제에 시기적절하고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국제적 차원에서 상호협력할 것』을 강조하면서 특히 개도국의 문제해결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 마련돼야 함을 역설했다.
이는 앞서 선진8개국(G8) 정상들이 Y2K문제 해결을 위해 시급한 조치와 정보공유가 이뤄지도록 한다는 데에 합의하고 세계은행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를 통해 기금을 마련하기로 했던 것과 맥을 같이하는 것이었다. 미국 대통령 직속의 Y2K 대책위원회 존 코스키넨 의장은 당시 『통신·금융·운송 등 주요부문에서 어느 한 국가라도 Y2K문제 해결에 실패한다면 세계공동체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모든 국가들이 문제해결에 실패할 위험을 줄이기 위해 협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올들어 이같은 분위기가 더욱 확산되면서 지나달에는 UN이 후원하는 「국제 Y2K 협력센터」가 공식 출범했다. 이 센터는 미국 워싱턴에 사무국을 두고 Y2K문제로 인한 국제경제와 사회적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Y2K문제의 정보와 기술교류 촉진 △지역과 산업분야별 대책회의 개최 △국제원자력기구(IAEA) 등 Y2K문제의 대책이 필수적인 주요 국제단체에 대한 지원 등을 추진하기로 했다. 이에 필요한 예산은 세계은행에 대한 각국의 자발적인 기부금 형태로 충당할 예정인데 미국은 이미 1200만달러 제공을 약속했다.
이같은 Y2K문제에 대한 국제협력의 움직임은 지난 1일부터 3일 동안 필리핀의 수도 마닐라에서 세계 각국의 전문가들이 참가한 「Y2K 정상회담」을 계기로 한층 고조됐다.
이 회의에서는 미국의 Y2K 대책위원회 존 코스키넨 의장이 기조연설을 하고 미국·캐나다·호주·뉴질랜드의 대표단이 예상되는 재앙의 대비책을 발표하는 등 Y2K문제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대책을 집중 논의했다.
특히 이 회의에 참석했던 세계은행의 치트 산통 정보담당관은 『Y2K문제의 피해는 아시아를 강타했던 금융위기처럼 급속히 전염될 가능성이 있다』며 각국의 대표들에게 지역간 협력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그는 『한 나라에서 Y2K문제를 막는 것에 실패하면 전혀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다른 나라로 급속히 번질 수 있다』고 지적하고 이어 『지난 2년 동안 계속돼온 아시아의 경제위기가 Y2K문제 해결에 필요한 재원을 줄임으로써 문제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며 우려했다.
아시아·태평양 국가들은 이와 관련, Y2K문제 해결을 위해 국제사회가 자금을 지원해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 마닐라 Y2K 정상회담에 참석했던 한국 등 18개 아시아·태평양 국가 대표들은 회의를 마치고 발표한 공동선언에서 아시아 지역 국가와 경제 주체들은 세계은행·아시아개발은행(ADB)등 국제금융기관과 기타 국제기구 및 다른 지역 국가들에 대해 Y2K문제 해결을 위한 지원을 강화할 것을 요구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공동선언은 Y2K문제가 단지 컴퓨터 시스템상의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인 문제라고 지적하고 만약 Y2K문제에 대한 대비에 소홀할 경우 사회유지를 위한 필수적인 서비스인 전력·통신·금융·교통·보건 등에 심각한 혼란이 초래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한편 마닐라 회의의 참석자들은 교역과 군사 시스템이 국제적으로 연결된 현대사회에서 Y2K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제적인 협력이 필수적이라고 지적하고 Y2K문제 대비를 위한 국가간 정보교류를 활성화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처럼 국제협력의 필요성이 강조되면서 지역별 협력체를 구성, Y2K문제에 대처하려는 움직임도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18개 회원국이 Y2K문제 해결을 위한 기술협력 프로그램을 공동추진하고 있으며 EU도 역내 국가들의 공동 대응방안을 모색하는 등 구체적인 협력활동을 가시화하고 있다.
EU의 경우 특히 회원국의 개별적인 노력만으로는 공동체의 존립을 위협하는 Y2K문제를 완전히 해결할 수 없다는 인식 아래 회원국 협의체를 통한 공동 솔루션 개발 등을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EU와 APEC 회원국의 이같은 노력은 그동안 아시아와 유럽이 미국에 비해 Y2K문제에 대한 대비가 크게 뒤져 있다는 지적을 받아왔던 점에 비춰 지역간 불균등으로 인한 혼란을 줄이는 것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동북아 국가들과 항공분야 비상대책 마련을 위한 회의를 갖는 등 Y2K문제 해결을 위한 국제협력사업에 적극 나서고 있다.
오는 29일부터 5일 동안 중국 베이징에서 열릴 예정인 Y2K 항공분야 비상협의에서는 남북한·중국·러시아·몽골 등이 참석해 통신망 고장시 각국의 책임관계와 비상항로 개설, 항공기 고장시 수색구조 절차 등 동북아 지역에서 발생가능한 Y2K문제에 관해 의견을 교환할 예정이다.
<오세관기자 skoh@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