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스코드 공개한 "리눅스" 열풍따라 "핫이슈"로

 「카피라이트(Copyright)」냐, 「카피레프트(Copyleft)」냐.

 지적재산권은 인터넷이라는 디지털 공간에서도 철저하게 보호받아 마땅하다는 카피라이트 옹호론자들과 정보와 지식만큼은 대가없이 공유해야 한다는 카피레프트 신봉자들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카피라이트 진영은 카피레프트가 정보사회의 신 무정부주의(Anarchism)를 유포하고 있다고 비난한다. 저작권을 부정하려는 시도 자체가 부질없고 비현실적이라는 것. 반면 카피레프트론자들은 카피라이트가 디지털 상업주의로 사이버 공간을 오염시키고 있다고 응수한다. 인류가 함께 누려야 할 문화유산을 상품화시킴으로써 정보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심화시킨다는 지적이다.

 그렇다면 이같은 디지털 저작권 논쟁은 어디에서 시작됐을까. 「디지털이다(Being Digital)」에서 『이제 아톰(Atom·원자)의 시대는 가고 비트의 시대가 왔다』고 선언했던 미래학자 니콜라스 네그로폰테로부터 그 단초를 찾아보자. 비트가 지배하게 된 오늘날 창작물의 원본과 사본은 더 이상 의미가 없어졌다. 아날로그 시대엔 지적 창작물의 존재양식이 분명했다. 사진·그림·단행본·잡지·음악·영화까지 모든 저작물들이 뚜렷한 개성을 보여줬다. 하지만 비트의 세계에선 텍스트파일이든 이미지파일·음악파일·동영상파일이든 0과 1의 조합일 뿐이다.

 아톰으로 만들어진 책이나 잡지의 카피본은 원본과는 엄연히 다르다. 피카소의 그림을 아무리 감쪽같이 묘사해도 감정가들의 눈을 속일 수는 없다. 비디오테이프를 복사하면 화질이 떨어진다. 하지만 비트의 조합은 구별이 불가능한 일란성 쌍생아들을 무수히 쏟아낸다. 어떤 저작물이든 수정과 편집이 가능하고 순식간에 수백, 수천부 복제되어 빛의 속도로 지구촌 저편까지 날아간다. 물류 시스템에 의존하지 않고도 시공을 초월한 배포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카피라이트 원칙론자들은 이같은 변화를 저작권에 대한 중대한 위협으로 해석한다. 이들은 저작권자에게 복제와 배포 규제를 위한 초기설정 권한을 주고 전자결제 수단과 통합된 디지털 정보 집중관리시스템을 가동시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하지만 카피레프트 진영의 입장은 전혀 다르다. 이들은 천동설이 지동설로 바뀌었듯이 저작권에 대한 패러다임도 이제 바뀌어야만 한다고 믿는다. 저작권은 오히려 디지털 정보의 자유로운 흐름을 방해한다는 게 이들의 논리다.

 알고 보면 카피레프트는 태생부터가 카피라이트에 대항하기 위한 개념이다. 카피라이트에서 「Right」란 물론 권리를 뜻하지만 이를 오른편으로 볼 때 자신들이 왼편에 서 있음을 분명히 하기 위해 카피레프트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낸 것이다. 카피레프트는 「자신이 획득한(Acquire) 소프트웨어를 자유롭게 복제(Copy)하며 소스코드를 개작(Modify)하거나 변형한 것을 포장(Repackaging)해서 분배(Redistribution)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카피레프트를 처음 주창한 사람은 리눅스의 아버지로 불리는 미국 매사추세츠 공대 리처드 스톨만 교수. 그는 대학생이던 지난 80년대 초 「친구에게 내가 쓰는 프로그램을 복사해주는 것이 과연 절도죄가 될까」라는 의문에 휩싸였다. 사실 70년대만 해도 많은 프로그래머들이 소스코드를 공개했다. 프로그램이 저작권의 우산 아래 들어간 것은 컴퓨터 대중화로 돈방석에 앉는 천재 프로그래머들이 등장하게 되면서부터다.

 리처드 스톨만과 그의 친구들은 소프트웨어의 저작권 개념에 처음부터 함정이 있었으며 카피라이트가 아니라 카피레프트가 돼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만든 것이 자유소프트웨어연합(FSF)이고 이곳에서 리눅스의 탄생배경이 된 GNU프로젝트가 시작됐다.

 FSF는 컴퓨터 운용체계에서부터 응용프로그램에 이르기까지 100% 카피레프트의 보호를 받는 소프트웨어체계를 개발해내기 시작했고 이 새로운 시스템은 GNU(또는 뉴)라고 불렸다. FSF가 먼저 프로그램의 초기버전을 소스코드와 함께 공개하면 전세계의 관심 있는 프로그래머들이 소스코드를 수정하고 새 기능을 추가한다. 그러면 FSF는 이 변화를 수용해 새로운 버전을 내놓고 이 과정이 되풀이되면 거의 완벽에 가까운 프로그램이 개발된다는 게 카피레프트론자들의 확신이다.

 하지만 카피라이트가 보호받을 수 없다면 소프트웨어 벤처업체들의 성공신화도 더 이상 나올 수 없는 것은 아닐까. 이에 대해 스톨만의 추종자들은 저작권을 전제로 한 프로그램 판매만이 돈을 벌 수 있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대답한다. 소프트웨어가 아니라 소프트웨어에 대한 서비스를 팔 수도 있다는 것. 예를 들어 유저가 원하는 부분을 수정해주거나 카피레프트 프로그램을 설치하고 개량해주는 일도 고객서비스 범주에 포함된다. 기능이 계속 추가되는 프로그램 소스를 정리해서 배포판을 내놓는 업체도 수익을 올린다. 수많은 네티즌들이 무료 배포판을 다운로드받기 위해 이 회사의 홈페이지를 방문한다면 유료광고 수입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리눅스 배포판으로 유명해진 레드햇을 비롯해 야후·지오시티, 그리고 지난해 소스코드를 공개해 화제가 됐던 넷스케이프 등도 카피레프트 정신과 무관하지 않다.

 전자프런티어재단(EFF)의 공동 설립자인 존 페리 발로는 「사이버스페이스 독립선언」을 통해 『인간의 마음이 만들어낸 모든 것이 복제되고 아무런 비용없이 무한히 배분될 수 있다』고 밝힘으로써 카피레프트에 동조했다. 저작권이 소멸된 문학작품을 디지털화해 제공하는 OBI(Online Book Initiate)라든가 이를 회화·음악까지 확장시킨 구텐베르그 프로젝트도 네티즌들의 열띤 호응을 얻고 있다.

 국내에서 카피레프트 운동을 벌이는 모임은 지난 94년 결성된 「정보연대 SING(Social Information Networking Group)」. 이들은 정보 상품화에 반대하고 정보의 평등한 접근을 주장한다. 또 국내외 잡지나 서적, 논문에 담긴 진보주의자들의 목소리를 전파하려는 소규모 「카피레프트 모임」들도 대학가를 중심으로 형성되고 있는 추세다.

 카피레프트론자들은 저작권으로 창의적 아이디어를 제한하는 것보다는 경쟁원리를 적용해 이를 더욱 발전시키는 것이 오히려 노력을 보상받는 길이라고 말한다.

 일례로 조선시대에 소설읽기를 즐기는 시어머니가 다 낡아 책표지가 너덜너덜해진 「춘향전」을 며느리에게 주며 그대로 베껴 새 책으로 만들어달라는 주문을 했다고 치자. 창의력이 풍부하고 감성적인 며느리라면 마음에 들지 않는 장면이나 대사를 개작했을 가능성은 충분이 있다. 그래서 오늘날 춘향전은 여러 이종(Variant)이 존재할 수 있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카피라이트와 카피레프트 논쟁에 대한 업계의 시각은 카피라이트의 절대적인 우세다. 카피라이트는 현실적이지만 카피레프트는 다분히 이상주의의 영역에 머물기 때문이다.

 그래서 「좋아하는 프로그램을 지인들과 함께 나누는 것이 곧 황금률」이라고 말했던 리처드 스톨만은 그래서 자본주의체제의 이단아처럼 보이기도 한다.

 앨빈 토플러가 말했듯 미래의 권력은 지식과 정보의 소유에 있고 정보가 곧 생산수단의 소유와 직결되는 한 카피라이트는 현실적인 선택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인터넷이 자유로운 정보공유의 마인드로 출발했다는 점을 기억할 때 카피레프트의 KO패를 점치기는 아직 이르다.

 이 시점에서 『내가 좀더 멀리 볼 수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내가 거인의 어깨 위에 서있기 때문일 것』이라는 아이작 뉴턴의 말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카피라이트를 얻기 위해 노력한 공을 무시할 수는 없지만 이러한 카피라이트도 기존에 이룩된 지식·정보·기술이 없었다면 가능했겠는가.

<이선기기자 sk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