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P 채널번호, 고정관념 깨진다

 케이블TV 프로그램공급사(PP)의 「얼굴」로 인식됐던 채널번호에 대한 고정관념이 깨지고 있다.

 종합유선방송국(SO)들이 채널티어링을 본격 도입하면서 케이블 PP채널과 지상파방송을 구분하는 과정에서 필터링을 제대로 구현할 수 없는 등의 기술상의 애로점을 들어 두 채널로 PP프로그램을 방송하고 있기 때문이다.

 논의의 발단은 동서울SO(대표 임공식)가 월 3300원을 받는 보급형 채널을 실시하면서 채널번호 50인 아리랑TV(대표 황규환)와 51번인 지상파방송 채널을 분리하는 과정에서 비롯됐다.

 동서울SO는 이들 두 채널 사이의 전파간섭을 막기 위한 필터링 작업을 하는 과정에서 비용을 아끼기 위해 모 통신업체와 공동으로 개발한 필터를 설치했으나 문제점을 완전히 해소하지 못해 궁여지책으로 아리랑TV를 40번으로 송출하겠다는 의견을 피력한 것.

 동서울SO측은 『정상적으로 필터링을 할 경우 가입자 한사람당 최소 3만원 이상이 소요되는 등 경제성 문제로 인해 7000원대의 보급형 필터를 개발, 현장에 설치했으나 전파간섭 현상을 완전히 막을 수 없어 궁여지책으로 이같은 안을 제시했다』고 밝혔다.

 채널티어링 실시를 위한 필수장비인 컨버터의 공급난도 PP채널번호 변경의 한 요인이 됐다.

 컨버터 공급업체인 D사가 경영난으로 1년 이상 제품을 공급하지 못함에 따라 기술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난감한 입장에 처했다고 동서울SO측은 주장하고 있다.

 이처럼 동서울SO가 PP채널번호를 바꾸겠다는 의견을 피력하자 당사자인 아리랑TV가 발끈하고 나선 것은 당연지사.

 「채널50=아리랑TV」라는 등식이 시청자들에게 각인돼 있는 마당에 상표나 마찬가지인 채널번호를 무너뜨리는 것은 자사의 입지를 좁히는 일로 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특히 늦게 개국한 아리랑TV는 차치하고라도 지난 95년 3월 케이블TV가 출범할 당시 PP들이 저마다 좋은 번호를 차지하겠다고 우기는 바람에 프리미엄이 붙어, 좋은 번호를 차지한 PP들이 일정 금액을 홍보비 명목으로 갹출한 적이 있었던 것을 상기하면 채널번호를 바꾸겠다는 SO들의 주장이 받아들여질리는 만무한 실정이다.

 더구나 대부분의 PP들은 케이블 채널번호를 고정·특화하지 않고서는 지역에 따라 번호가 각기 다름에도 불구하고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지상파방송사에 대응할 수 없다고 인식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아리랑TV는 「채널변경 불가」 항의공문을 동서울SO에 보내 제동을 걸었으며, 「원래의 채널로 프로그램을 송출해줄 것」을 강력히 요구하고 나섰다.

 이들 두 회사 사이의 갈등이 표출되자 이해당사자의 중간격인 케이블TV협회가 중재에 나서 동서울SO측에 「채널변경을 자제해줄 것」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동서울SO도 이를 받아들여 절충안으로 아리랑TV의 프로그램을 「40번」과 「50번」으로 동시 송출하겠다고 제시함으로써 갈등이 진정됐다는 것.

 동서울SO측은 『현재 아리랑TV를 40번으로도 송출, 보급형 채널가입자도 경우에 따라 아리랑TV를 볼 수 있다』고 밝히면서, 『DCN(22번)도 현재 18번 채널로 동시에 프로그램을 내보내고 있다』고 밝혔다. 결과적으로 동서울SO는 보급형 채널 가입자와 기본형 채널 가입자의 서비스 제고도 고려하는 동시에 PP들과의 마찰도 불식시키는 「일거양득」의 효과를 거둔 셈이 됐다.

 하지만 파문이 가라앉았다고 해서 불씨가 완전히 꺼진 것은 아니다. SO들이 다음달부터 채널티어링을 본격 도입할 경우 이같은 문제가 또다시 불거져 나올 개연성이 높기 때문이다.

 다양한 형태의 가입자를 유치·확보하기 위해서는 동서울SO와 같이 한 PP프로그램을 2개의 채널로 동시에 내보내는 형태로 운영하는 데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PP채널 변경이 불가피할 것으로 SO들은 인식하고 있다.

 SO의 한 관계자는 『현재 미국의 경우 지역실정에 맞게 PP채널번호를 각기 달리 운영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채널티어링이 도입·실시될 경우 SO들이 가입자 확대를 위한 전술의 일환으로 지역실정에 걸맞은 채널을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 PP채널번호 변경에 대한 여운을 남겼다.

 특히 SO들이 PP채널번호 변경문제를 당장의 「발등의 불」은 아니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되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로 인식하고 있어 앞으로 양측의 이견이 어떻게 조율될지 주목된다.

<김위년기자 wnkim@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