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은 갈수록 비대해지고 중소·중견 업체는 더욱 왜소해지는 양극화 현상이 올해 국내 인쇄회로기판(PCB)업계에서 심화될 전망이다.
최근 주주총회를 끝냈거나 앞두고 있는 주요 상장 PCB업체와 일부 비상장 PCB업체들이 제시한 지난해 매출실적 및 올해 설정한 매출목표를 비교해보면 이같은 부익부 빈익빈 현상은 갈수록 뚜렷해질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연간 매출액 상위업체와 중견업체간의 매출액 격차는 대략 4∼8배에 머물렀다. 즉 대덕전자·대덕산업·코리아써키트·이수전자 등 소위 「빅4」의 매출실적은 800억∼1600억원선이었고 10여개 중견업체들은 대략 200억원대를 기록했다. 또 나머지 대다수 PCB업체는 10억∼50억원의 매출실적을 달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안정적(?) 격차를 유지하면서 성장을 거듭해온 국내 PCB업체간의 외형 매출규모 격차가 더욱 벌어지게 된 결정적 계기는 국제통화기금(IMF)인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내수 중심의 사업을 펼쳐온 국내 중견 이하 PCB업체들은 그동안 주고객으로 거래해온 국내 중견·중소 세트업체들이 지난해 잇따라 도산하거나 수출부진에 허덕이자 판로가 거의 막혀버렸다.
반면 수출 중심의 사업을 전개했던 상위 PCB업체들은 「환차익」까지 덤으로 얻어 외형 매출규모가 30% 정도 늘어나는 호경기를 구가했다.
우선 국내 최대 PCB 전문 대기업인 대덕전자의 경우 97년보다 37% 늘어난 2200억원 정도의 매출실적을 달성한 것을 비롯해 대덕산업은 25% 증가한 1386억원을, 코리아써키트는 12% 늘어난 1900억원의 매출실적을 기록했다. 또 네트워크시스템용 고다층인쇄회로기판(MLB)분야에서 주가를 올리고 있는 이수전자도 지난해 50% 정도의 매출신장세를 기록해 사상 처음으로 매출 1000억원대 고지를 점령했다.
여기에다 종합 전자부품업체인 삼성전기와 종합 전자업체인 LG전자도 지난해 PCB분야에서 2700억원 정도의 매출실적을 각각 기록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어 이들 상위 6개 PCB업체의 전체 매출실적은 1조1000억원대에 달했다. 이는 지난해 국내 전체 PCB시장 규모 1조5000억원의 60%를 넘어서는 수치다.
IMF에도 불구하고 대기업 PCB업체들이 대약진을 거듭한 반면 중견·중소 PCB업체들의 매출신장이 정체되거나 소폭 증가에 그친 까닭은 이들 중소업체가 내수 중심의 사업을 펼쳐온데다 신공법 개발 및 설비투자에 나서지 못해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더욱 뒤처진 데 따른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PCB산업은 갈수록 장비 의존적 사업으로 변화되고 있어 적기에 설비투자를 하지 못하거나 신공법 개발에 대응하지 못할 경우 경쟁에서 뒤질 수밖에 없다』고 한 PCB업체 관계자는 지적하면서 『국내 중견 이하 PCB업체들이 경쟁적으로 일반 MLB분야보다는 특화된 MLB분야에 치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충고했다.
그는 이어 『미국·독일 PCB업체들이 최근 들어 이 사업에서 철수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기 때문에 특정 분야에서 기술력을 축적하면 중견업체들도 대기업 못지 않은 국제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면서 『부가가치가 높은 틈새시장을 공략하는 데 중견 PCB업체들이 눈을 돌려야 할 시점』이라고 주장했다.
<이희영기자 hy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