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포럼> 미래를 내다보는 연구개발

최양희 서울대 컴퓨터공학과 교수

 최근 뉴스에 우리나라 기술개발비가 절대규모로 세계 7위인데 기술경쟁력은 28위라는 보도가 있었다.

 중복된 개발이나 효율적인 산업화로의 연계부족이 경쟁력 약화의 주원인이라는 분석도 따랐다.

 대단히 정확한 분석이라고 본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7위와 28위의 격차를 설명하기에 부족하다. 원인을 알아야 개선책이 나올 수 있기에 세심한 분석이 있어야만 하겠다.

 먼저 연구생산성이 경쟁국가에 비하여 매우 모자라지 않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우리는 응용기술 개발에서는 소수의 개인적 업적에 의존하는 기초과학과 달리 연구성과가 투입된 연구자원, 즉 연구비의 규모에 비례한다는 잘못된 인식을 가진 것은 아닐까. 그리고 연구원 1인당 연구예산이 경쟁 선진국 수준에 이르면 연구성과도 비슷해지리라는 안일한 생각에 젖어 있는 것은 아닐까. 외환위기 때문에 선진국과의 격차가 다시 벌어졌지만 한때 우리나라 연구원이 사용하는 연구비는 인건비를 제외하고는 거의 선진국 수준이었다.

 연구생산성은 연구성과의 임팩트로 측정되며 이는 논문·특허·산업화의 양과 질로 나타나는데 투입된 자원에 비하여 이것이 상대적으로 미흡했다고 볼 수 있다.

 두번째로 우리가 과연 연구개발할 만한 것에 효과적으로 투자했는가를 살펴보아야 한다. 아무리 훌륭한 연구주제라도 이를 잘 이해하지 못하거나 수행할 능력이 부족한 사람에게는 연구를 맡겨봐야 성과가 있을리 없다. 유행을 좇는 연구, 남이 하니까 따라하는 연구, 자기의 연구능력을 과신한 연구들이 만연되어서 연구경쟁력 저하를 거들었다고 보아야 한다. 이를테면 우리나라에서는 이미 최첨단 기술이 제목상으로는 대부분 개발이 완료된 지 오래다. 성공 가능성이 있는 연구를 미리 가려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실패 가능성이 높은 것을 가려내기란 상대적으로 쉬운 법이다.

 언제부터인가 연구개발 중장기계획 수립이 정부 부처와 관련기관에서 의욕적으로 진행되기 시작하였다.

 대부분 해당기관의 연구사업 선정의 기초자료로 쓰이는 이 계획은 무엇보다도 향후 5∼10년간의 기술전망과 함께 구체적인 개발항목을 담고 있어 관심을 끈다.

 과학기술부·산업자원부·정보통신부에서 국책기술 개발항목 선정시 핵심적인 참고자료로 사용되는 이러한 계획들은 전문가에 의한 델파이 예측을 사용하여 주로 작성되어 왔다. 대개 정보 및 통신 분야를 가장 유망한 분야로 손꼽고 있는데 구체적인 개발항목으로 들어가면 예측기간이 길수록 불확실성이 급속히 증가한다.

 정보통신분야는 다른 어떤 분야보다도 기술주기가 짧아 3∼4년 이상을 제대로 예측하기가 어렵다고들 한다. 그러나 국내의 주요 기술예측은 짧게는 5년에서 길게는 25년을 대상으로 한다.

 문제는 이렇게 불확실한 예측을 근거로 중장기 기술개발이 종종 기획된다는 사실이다.

 15년 전에 기획된 계획에 근거하여 그대로 기술개발을 한다면 아마도 많은 부문 쓸데없는 결과만 양산할 것이다. 마찬가지로 15년 뒤의 계획을 세웠다면 실제로 이를 그대로 따라서는 안될 것이다. 매년 또는 주기적으로 계획의 수정·보완이 꼭 뒤따라야 효율적인 기술개발이 유지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많은 대형 기술과제가 장기적이고 대규모인데 혹시 초기의 계획을 너무 곧이곧대로 지키려 하다가 경쟁력이 저하되지나 않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기술개발의 인센티브가 약한 점도 생산성 저하의 이유가 된다. 성공하더라도 금전적인 보상이 약하거나 또 실질적인 연구자를 우대하지 못하고 나눠먹기식으로 처리된다면 누가 정열적으로 연구개발을 하겠는가. 빗대어 말한다면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보상금을 같은 종목의 다른 선수들과 골고루 나누는 것을 상상할 수 있겠느냐는 말이다.

 기술개발의 평가에 대한 논의가 끊임없이 있어 왔으나 지금까지 객관적이고 엄정한 평가가 있어 왔다고 보기는 어렵다. 자기 분야를 보호하기 위하여, 혹은 자기 인맥이나 학맥을 키우기 위하여 점수를 후하게 준 사례가 종종 있다고 본다.

 대부분의 과학기술 개발평가가 피어 리뷰, 즉 동일분야 전문가에 의한 평가에 의존하므로 위와 같은 공정성 훼손은 심각한 문제가 된다. 또 사업규모가 클수록 오히려 기술외적 고려가 평가에 더 큰 영향을 주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평가자에게 주어지는 시간과 자료가 매우 부족하여 수박 겉핥기식 평가가 양산된다는 점이 큰 문제다. 연구 기획시부터 과제 종료시까지 꾸준히 일관성 있게 과제를 평가하는 평가전담제도가 정착되면 전문성 결여에 의한 평가의 신뢰도 하락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산·학·연의 역할과 입장이 크게 다른 만큼 연구기획·수행·평가도 달리 하는 것이 당연하다. 특히 개발비 산정방식이 다른 점은 꼭 고려되어야 한다. 그러나 한편 평가 만능주의에 빠지는 것은 경계해야 할 것이다.

 경제위기가 서서히 걷히면서 기업의 기술개발 투자가 조금씩 되살아나고 있다. 따라서 공공재원에 의한 연구개발은 98년에 주로 추구했던 단기적 목표보다는 중장기적인 기술기반확보로 제자리를 찾아가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라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