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통부 고위 관료의 잇단 「LG그룹 데이콤 지분 한도 해제」 시사 발언이 심각한 교착상태에 빠져있는 반도체 빅딜 협상 타결의 실마리를 제공할 수 있을 지에 재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현재 반도체 빅딜은 「되는 것」도 「안되는 것」도 아닌 어정쩡한 상황이다.
당사자인 현대와 LG 측은 『전화 접촉은 하고 있지만 진척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협상에 참여하고 있는 관계자는 『실무팀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더 이상 없다』고 말했다.
안팎의 소식통들의 전언을 종합해 봐도 2조∼3조원에 이르는 양측의 가격 차이가 좁혀졌다는 징후는 전혀 없다. 기업 인수·합병(M&A)의 최우선 조건인 가격 문제를 고려하지 않은 채 추진되고 있는 빅딜에 대한 비관론도 고개를 들고 있다.
빅딜 성사에 강력한 의지를 보였던 정부 측도 「그저 기다리는 것」 이외에 대안이 없어 보인다. 공식적으로 빅딜이 재계 자율로 이뤄지고 있다는 입장을 견지해온 정부가 미결 과제인 양수도 가격을 나서서 정해줄 수도 없는 형편이기 때문이다.
다만 반도체 빅딜이 이뤄져야 한다는 원칙론만 반복되고 있다. 빅딜의 원칙인 경제 논리는 실종된 채 다음달 초로 예정된 청와대 정·재계 간담회 이전에 극적으로 타결되지 않겠느냐는 정치 논리만 난무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반도체 빅딜은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와 같은 모호한 상황이 돼버렸다. 당사자도 정부도 문제 해결을 위한 해법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렇게 빅딜 협상이 안개 속을 헤매고 있는 동안 피해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LG반도체는 빅딜 논의 이후 해외 바이어들로부터 주문이 눈에 띄게 줄었다. 물론 종업원들의 의욕 저하에 따른 생산성 저하도 현저하다. LG반도체 관계자는 『생산성은 빅딜 논의 이전에 70% 수준이고 주문량도 30% 가량 줄었다. 특히 일부 빅 바이어는 아예 거래를 끊겠다고 통보해왔다』고 말했다. 물론 LG반도체 협력업체들의 피해도 시간이 흐를수록 커지고 있다.
여기에 LG반도체 직원들의 움직임마저 심상치 않다. 현재 노사협의회 중심인 비상대책위원회 조직을 다음달 초부터 노동조합체제로 전환키로 하는 한편 고용보장문제의 완전타결 없이 양수도 협상이 이뤄질 경우 전면 파업을 강행한다는 강경 분위기로 선회하고 있다.
「데이콤 지분 제한 해제」 논의는 이같은 최악의 상황을 돌파하기 위한 정부 측의 승부수라는 분석이다.
LG그룹의 숙원인 데이콤 인수를 묵인하는 대신 재벌 구조개혁의 상징인 반도체 빅딜을 성사시키겠다는 의도가 아니겠느냐는 추정이다.
그러나 데이콤 지분 제한 해제가 빅딜 타결로 직접 연결될 지는 여전히 미지수라는 분석이 많다. 500억원 안팎의 현대그룹의 데이콤 지분이 수조원의 손해와 맞바꾸기에는 너무 「작은 떡」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LG의 한 관계자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가격이다. 2조∼3조원과 데이콤 지분 해제와의 빅딜은 현실성이 부족하다』고 언급, 데이콤을 위해 가격을 포기할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어쨌든 데이콤 지분 제한 해제 논의는 꽉 막힌 빅딜 협상의 돌파구 역할을 할 수 있을 지 몰라도 전격적인 타결을 이끌어 내기에는 함량 미달이라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최승철기자 scchoi@etnews.co.kr>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