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이후 자금난을 견디지 못한 중소업체들이 속속 문을 닫게 되면서 중소업체 직원들은 사무직, 생산직 할 것 없이 평생의 업을 잃고 하나 둘 흩어져 나갔다. 그러나 이같은 예정된 수순(?)을 떨쳐버리고 직원들이 힘을 합쳐 생산라인을 재가동하고 체불임금과 퇴직금을 반환해 부도난 회사를 인수, 모두가 주인이 되는 일터를 만든 업체가 있어 화제다.
화제의 기업은 중소가전업체인 르비앙전자(대표 박덕성). 이 회사는 57명 전원이 모두 회사의 주인이고 직원이자 경영자다. 대표이사직을 맡은 박덕성씨(40)도 개발팀장 출신으로 각 부서장으로 구성된 9명의 직원 대표 중 하나다.
『작년 3월, 모회사인 제일가전이 부도가 났을 땐 정말 당황스러웠습니다. 연간 200억원 가까이 매출을 올리고 기술력과 품질수준에서도 앞서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하루아침에 부도라니, 100여명의 직원들은 이대로 주저앉을 수 없다는 심정이었습니다.』
직원들은 긴급히 대책회의를 열고 찬반투표를 거쳐 회사에 남겠다는 의사를 밝힌 45명으로 대표체제를 구성해 회사정상화에 돌입했다. 98년 4월, 일단 개인회사로 사업자등록을 내고 8개의 팀으로 나눠 조직을 정비하는 한편 채권단과 인수협상에 들어갔다. 기존 거래처를 찾아다니며 납품을 받아줄 것을 요구했고 부품을 주지 않겠다는 협력업체들을 하나둘씩 설득해 나가기 시작했다.
『다행히 성수기였던 덕분에 주력제품인 선풍기를 사가겠다는 대기업이 있었고 저희들의 의지를 높이 산 협력업체들이 부품을 공급해 줘 조업을 재개할 수 있었습니다. 서광의 빛이 보인 거죠.』
박 사장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독자적인 영업력을 강화하기 위해 「르비앙(Rebiang/Lebein)」이라는 자가브랜드를 만들어 가전양판점, 대형할인매장, 통신판매업체, 홈쇼핑TV 등 안 가본 데 없이 휘젓고 다녔다.
이렇게 해서 지난해 약 40여억원의 매출을 거뒀다.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이 회사는 지난 1월 개인회사에서 「르비앙전자」로 법인전환신고를 마쳤다. 또 1년여를 끌던 공장과 생산설비 인수문제도 최근 경매를 통해 법원으로부터 낙찰을 받았다. 부족한 인수자금은 공장을 담보로 은행으로부터 대출을 받기로 했고 쉽지는 않겠지만 나머지 자금은 신용보증기관 및 중소기업청 등을 통해 해결할 예정이다.
『이제는 정말 남부러울 것 없는 어엿한 회사가 된 것 같아 더할 나위 없이 기쁘다』는 박 사장은 『오는 4월 중순까지는 경락대금의 잔금을 치르고 이전 회사에서 받지 못한 월급과 퇴직금이 나오는 대로 모두 자본금으로 투입, 증자를 통해 전직원이 주주가 되는 과정을 마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올해 이 회사는 지난해보다 약 3배 정도 늘려 잡은 140억원의 매출달성을 목표로 잡았다. 주력제품인 선풍기·가습기·전기히터 이외에 현재 개발중인 아이디어 신제품도 곧 출시할 예정이다.
또 추진중인 수출상담이 내달부터는 일본·말레이시아 등으로 본격적인 선적이 이뤄져 올해 약 50억원의 수출실적도 거둘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비록 지금은 몇 달씩 월급을 못받고 운영자금이 부족해 많은 애로를 겪고 있지만 머지 않아 국내 최고의 종업원지주회사가 될 것』이라는 박 대표는 『정말 일할 맛 나는 회사를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포부를 밝혔다.
<정지연기자 jyjung@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