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B업계 "빛 좋은 개살구"

 국내 인쇄회로기판(PCB)업계가 물량이 폭주하는 가운데 납품단가는 폭락하는 「풍요속의 빈곤」 현상을 겪고 있다.

 안산·시화·남동·인천·부천 등지에 밀집해 있는 PCB업체들은 지난달부터 생산설비를 24시간 풀가동하고도 주문물량을 채 소화하지 못할 정도로 물량이 쇄도하고 있다.

 반면 가격은 지난해 비슷한 시기보다 무려 30% 이상 떨어져 채산성이 극도로 악화됐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인천 가좌동에서 다층인쇄회로기판(MLB)를 중점 생산하고 있는 D전자의 한 관계자는 『지난 연말에는 월 7억∼8억원의 매출을 올렸으나 지난달부터 주문량이 쇄도하기 시작, 이달 들어서는 월 매출액이 15억원을 상회하고 있다』고 설명하면서 『이제 국내 PCB산업 경기는 국제통화기금(IMF) 이전 단계로 거의 회복됐다』고 분석했다.

 인천 석남동에 있는 S전자는 지난해말 4억∼5억원에 머물던 매출액이 최근 들어 7억∼8억원선으로 뛰어올랐으며 부천의 W전자도 월 12억원 정도의 매출이 이달 들어서는 18억원선을 넘어설 것으로 예측된다고 귀띔했다.

 안산·시화공단에 있는 PCB업체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시화공단에서 MLB를 생산하고 있는 H전자는 지난달부터 세트업체로부터의 물량이 밀려들기 시작해 지난해 감축했던 생산인력을 충원하고 있으며 A전자·W전자는 생산설비를 대폭 확대하는 방안을 적극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PCB업계의 일감폭주 현상은 정부 통계를 보더라도 확연하게 드러난다. 지난달 통계청이 발표한 전자·정보통신산업 활동 통계에 따르면 컴퓨터 본체를 비롯한 CD롬드라이브·HDD·FDD·모니터 등 주변기기의 생산실적이 전년 동기보다 20% 이상 증가했고 AV기기는 15.7%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다 반도체 경기가 급속도로 회복되고 있고 이동전화를 비롯한 휴대형 정보통신기기는 미처 생산할 수 없을 정도로 주문이 쇄도하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MLB의 고다층화·초박화 및 홀의 소구경화 현상에 따라 생산공정이 까다로워지는데다 도금 및 드릴 가공의 병목현상까지 겹쳐 국내 MLB시장은 지난 97년에 버금가는 물량폭주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는 것.

 그러나 대부분의 국내 PCB업체들은 물량폭주를 반기지 않고 있다. 왜냐하면 납품가격이 형편없이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안산의 한 PCB업체 사장은 『지난해 1㎡당 1백20∼1백40달러 수준을 맴돌던 4층 MLB 가격이 최근 들어서는 1백달러선도 유지하기 힘들 정도』라며 『일부 범용 MLB는 지난해의 양면 가격에도 못미치는 90달러선에서 납품단가가 매겨지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일부 세트업체들이 국제경쟁력 회복이란 미명아래 수출단가 하락분을 PCB업체를 비롯한 부품업체에 전가하고 있어 PCB업체들은 고달픈 다리품만 팔고 있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PCB업계 관계자들은 『PCB사업 성격상 세트업체의 납품단가 인하압력을 뿌리칠 수 없다』고 설명하고 『세트업체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는 선에서 발주물량을 받고 있다』고 밝혔다.

 한 중견 PCB업체 사장은 『공장설비를 안정적으로 가동하는 차원에서 국내 세트업체의 주문량을 소화하고 실제 이윤은 직수출 및 일부 중견 세트업체의 첨단 정보통신기기용 특수 PCB에서 얻고 있다』면서 『직수출 확대를 통한 채산성 확보가 국내 PCB업계가 안고 있는 최대 과제』라고 강조했다.

<이희영기자 hy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