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그룹이 보유하던 삼성GE의료기기 지분 39%를 인수한 GE메디컬시스템이 국내 투자를 확대, 의료계 발전에 일조하겠다고 밝히고 있으나 이를 바라보는 한국 전자의료기기업계의 시선은 냉담하다. GE의 공언(公言)을 공언(空言)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일부 업체는 자사의 이익을 위해서는 한국 의료 및 의료기기업계를 철저히 무시하는 업체가 GE라고 혹평할 정도다.
이처럼 GE가 한국시장에서 홀대 받는 이유는 크게 3가지다.
첫째, 한국시장을 내구연한이 지나 용도폐기해야 할 「중고장비처리장」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GE가 지난 1년간 삼성GE의료기기를 통해 판매한 13대의 전산화 단층촬영장치(CT)와 자기공명 영상진단장치(MRI)는 병원의 사용연수 제한 규정에 해당되는 중고제품이라고 주장한다.
실제로 한국의료용구공업협동조합의 「수입요건 확인」 실적을 보면 지난해 수입된 45대의 중고 CT 중 3대, 총 4대가 수입된 중고 MRI는 모두 GE제품이며, 올들어서는 19대가 수입된 중고 CT 중 5대, 3대가 수입된 중고 MRI 중 1대가 GE 제품이다.
물론 GE의 중고 의료기기가 많이 수입된 것은 IMF 관리체제에 접어들면서 외산 중고장비를 선호하는 의료기관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보다 GE가 자국내에 신제품을 판매하기 위한 전략의 하나로 미국 외 지역을 대상으로 중고제품 수출을 적극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GE 관계자들은 『중고라고 해서 못쓰는 장비가 아니며 부품 교체와 수리를 거쳐 필요하다면 인증도 해주기 때문에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으며, 이같은 중고 장비의 재활용은 항공기·선박업계 등에서는 보편화된 마케팅 전략의 하나』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문제는 똑같은 진료비를 주고 성능이 떨어지는 장비를 이용해야 된다는 점이다.
더욱이 중고장비의 경우 안전성 등에 관한 검증이 완벽하지 않아 국민 건강에 치명적인 위협을 줄 수도 있다는 점을 양식있는 의료계 인사들은 우려하고 있다.
이에 대해 업계 관계자들은 『외국 중고 장비의 무분별한 도입은 CT·MRI 등 고가 전자의료기기에서 X선 촬영장치·초음파 영상진단기 등 저렴한 제품군으로 확대되는 추세로 이같은 상황이 장기화할 경우 애써 국산화한 제품이 사장될 수도 있다』고 말한다.
GE가 비판받는 두번째 이유는 그동안 끊임없이 논란이 돼 왔던 GE와 삼성의 「삼성과 GE가 결별할 경우 5년 이내에는 삼성 전 계열사에서 의료기기 사업(제조)을 하지 못한다」는 이른바 「경쟁금지조항」의 실체가 수면 위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특히 전자의료기기 관련 기술이 전무하던 합작 당시와 상황이 많이 달라진 삼성 측이 불평등 계약의 폐지나 완화될 것으로 기대했으나 지분 추가 매입 과정에서 이 부분이 강화돼 일부 삼성 관계자는 물론 업계로부터 비난이 거세졌다.
실제로 기존 5년간 「제조」 금지이던 것이 「판매」 「서비스」 「유통」까지로 확대돼 극단적 방법을 제외하고 지난 10여년간 의료기기 부문에 막대한 투자를 해왔던 삼성의 의료기기 진출은 원천봉쇄된 것이다.
이를 두고 GE 측은 『합작 파트너가 동종 업계에서 경쟁하는 것은 상도의상 있을 수 없는 일』로 아무런 문제의 소지가 없다고 일축한다.
그러나 업계 관계자들은 『GE가 삼성을 대등한 합작 파트너로 보기보다 개도국 및 후진국시장에 진출하기 위한 발판으로 이용하는 다국적 기업들의 신흥시장 진입 전략의 전형적인 형태』라고 지적했다.
마지막 이유는 GE가 한국시장에서 CT와 MRI를 판매하면서 1억원을 호가하는 의료영상 저장전송시스템(PACS) 솔루션을 끼워 팔아 이제 갓 시장 진입 단계에 있는 국내 PACS업체들을 고사시키고 있다는 점이다.
국내업체들은 대부분 영세한 데다 개발비를 회수하지 못할 정도로 시장 형성이 더딘 상황에서 GE의 물량공세는 한국 PACS 산업을 말살하려는 기도로밖에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이같은 GE의 영업 전략은 자금력을 바탕으로 장기적으로는 유망 비즈니스로 인식되고 있는 PACS 및 의료정보시스템시장을 독식하고자 하는 야심에서 비롯된 것으로 업계에서는 보고 있다.
이와 관련, 한 업계 관계자는 『GE가 보건의료산업의 한 축인 전자의료기기업계에서 「왕따」 당하지 않고 뭔가 배울 것이 있는 건강한 경쟁상대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이같은 업계내 비판을 겸허히 수용할 수 있는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라고 충고했다.
<박효상기자 hspark@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