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전자상가가 사상 최악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 90년대 컴퓨터 붐을 타고 한동안 호황을 구가해오던 부산지역 전자상가들이 내외적인 요인으로 존립 위기를 맞을 정도로 어려움에 빠져 있다. 소비자들의 발걸음이 뚝 끊겼으며 부도업체들도 늘어나고 문을 닫고 상가를 뜨는 상인들도 적지 않다. IMF에 따른 전반적인 경기침체가 가장 큰 원인이기는 하지만 무엇보다 잇따른 현대식 신축상가 개장을 비롯해 임대주(분양업체)와 입점업체들의 갈등, 독자적인 마케팅 부족, 공생을 위한 업체간 상호협력 미비 등이 더 큰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최근 부산전자상가들이 겪고 있는 이러한 문제의 실상과 그 해결방안을 시리즈로 엮어본다.
<편집자>
한창정보타운에서 컴퓨터를 판매하는 K 사장은 요즘 고민에 빠져 있다. 아침에 다른 여느 매장과 마찬가지로 문을 열지만 찾아오는 고객이 별로 없어 하루에 한두 대의 컴퓨터를 파는 것도 쉽지 않다. 이러다보니 집으로 돈을 가져가기는 고사하고 매장 운영비도 빠듯한 형편이다. 몇년 동안 해온 사업을 포기하자니 별다르게 할 만한 사업도 없고 그동안 고생했던 것이 아까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실정이다.
게다가 최근 게임방 특수를 타고 컴퓨터를 사러오는 고객들이 있지만 수량이 열대만 넘으면 상가의 대형매장들이 원가 이하의 가격을 제시하면서 공급권을 가로채는 경우가 허다하다. K 사장은 게임방을 대상으로 한 영업은 접어두고 개인사용자를 대상으로 나름대로 활발한 판촉행사를 벌이고 있으나 다른 매장들이 비슷한 행사를 마련해 차별화가 어려운 형편이다.
이는 K 사장만의 일이 아니다. 부산지역 대부분의 상가업체들이 겪고 있는 일이다.
사실 부산전자상가는 91년 율곡컴퓨터도매상가와 한창정보타운(구 연산컴퓨터도매상가)이 처음 문을 열고 이어 94년 가야컴퓨터상가가가 개장됐을 때만 해도 그런대로 괜찮았다. 90년대 컴퓨터 붐을 타고 장사를 할 만했다. 하지만 최근 몇년 사이에 마트월드·인포·르네시떼 등 현대식 전자매장이 속속 들어서면서 달라지기 시작했다. 신축상가들이 기존 상가업체를 대상으로 집단 이전시 혜택을 부여하는 등 우대조건을 제시하면서 과열 매장유치 경쟁을 벌였다.
매장 수요는 한정돼 있는데 공급이 늘어나면서 불균형이 초래된 것이다. 한창정보타운과 가야컴퓨터상가의 일부 매장들은 삼삼오오 짝을 지어 신축상가로 옮기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이것은 결국 상가업체들의 상호불신과 상가 관리업체와 입점업체들과의 갈등으로 이어졌다. 그 결과 가야컴퓨터상가에서는 일부 매장업체가 임대업체인 동아종합시장을 상대로 상가시설비 반환청구소송을 제기했다.
한창정보타운에서도 상가 이전문제가 표면화되면서 임대주와 매장업체의 갈등이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는 상황이다.
물론 신설상가와 기존상가의 매장유치 경쟁은 97년 IMF 체제를 맞아 다소 수그러드는 듯 보였다. 하지만 이것은 외부적인 요인에 의해 잠시 가라앉아 있는 것에 불과했다. 신설상가의 등장과 이로 인해 빚어진 매장유치 경쟁은 결국 업체들간의 불신과 임대주와의 갈등은 물론 기존 매장의 피해로 고스란히 돌아왔다. 지난 1년 동안 부산전자상가에서는 상가활성화를 위한 판촉활동은 고사하고 불황기 공생을 위한 업체들간의 협력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것이 부산전자상가의 현실이다.
<부산=윤승원기자 swyun@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