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지난해가 참으로 어려웠을 것이다. 선진국답지 않게 금융시스템이 낙후돼 한국을 비롯한 동남아 각국이 처했던 외환위기에 이를 뻔했다. 장기적인 내수침체에 대해서는 백약이 무효다.
그런 까닭에 일본의 대표적인 전자업체들조차도 지난 회계연도(98년 4월∼99년 3월)에 쓰라린 경험을 해야만 했다. 도시바가 지난해 5조3500억엔의 매출에 170억엔의 적자를 기록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 회사가 적자를 낸 것은 23년만에 처음이다. 히타치는 적자가 무려 3750억엔에 이른다. 반도체장비업체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어서 일본 최대의 스테퍼업체인 니콘이 지난해 6년만에 처음으로 100억엔의 적자를 기록한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수요업체들이 경기가 안좋다 보니 주문을 내놓고도 납품시기를 연기하는가 하면 심지어 주문을 취소하는 일이 다반사였기 때문이다.
반면 반도체 테스터업체인 어드밴테스트는 19.2%의 경상이익률을 기록, 세인의 관심을 끌었다. 이 회사가 흑자를 낼 수 있었던 요인은 거품경제 직후부터 첨단 테스터 및 계측기 개발에 치중해 부가가치를 높인 결과라고 한다.
국내 최대의 반도체장비업체인 미래산업이 최근 미국 라이코스와 제휴, 인터넷 포털서비스 사업에 나선다고 발표했다. 언론은 그것을 두고 포털서비스 시장판도가 바뀔지도 모른다고 작지않은 의미를 부여했고 미래산업의 당일 주가도 가격제한폭까지 올랐다. 미래의 사업다각화는 지난해 반도체장비사업 환경이 어렵고 또 인터넷사업이 유망하다 보니 내린 선택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큰 연관성도 없는 분야로 영역을 넓혀 성공을 거둔 업체들은 그리 많지 않다. 일본의 쟁쟁한 업체들이 어려움을 겪은 가운데 어드밴테스트가 성공을 거둔 것도 다름 아닌 자기 분야에 천착한 결과다.
국내 반도체장비산업은 아직 초창기여서 개척할 분야도 많고 세계 1, 2위의 D램업체를 수요처로 갖고 있어 시장도 좋은 편이다. 경쟁력 있는 장비만 만들면 앞으로도 얼마든지 더 큰 성공을 거둘 수 있다. 미래가 쉬운 길을 놔두고 너무 어려운 길을 택하고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