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일간 8주년> 지식사회 "파워엘리트"

각료 인선과 관련, 국민의 정부와 이전 정부의 가장 큰 차별성은 무엇일까. 한번 임명된 장관을 어지간해서는 바꾸지 않는다는 분석도 있고 젊고 개혁적 인물을 각료로 발탁한다는 대답도 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각을 충원하는 인재 풀의 스펙트럼이 다양해졌고 그 가운데서도 산업계 좀더 정확히 표현하면 전자·정보통신업계가 장관을 배출하는 실세집단으로 부상했다는 것이다.

 국민의 정부가 출범한 이후 전자업계 민간 경영인 출신 장관이 벌써 3명이 탄생했다. 「미스터 대우전자」로 불렸던 배순훈씨가 조각 당시 정보통신부 장관으로 입각했다. 그가 빅딜 관련 소신 발언으로 중도하차, 이번에는 「정보화의 전도사」란 별명을 얻은 남궁석 삼성SDS 사장이 후임에 임명됐다. 최근에는 정치인 출신 강창희 과학기술부 장관이 사임하고 코드분할다중접속(CDMA)의 「살아 있는 역사」 서정욱 전 SK텔레콤 부회장이 신임 장관으로 발탁됐다.

 정부 출범 1년여 만에 전자업계 출신이 잇따라 입각한 것은 사상 초유의 일이다. 더욱이 그들은 모두 전자업계 경영인이라는 현직에서 곧바로 이동했거나 물러난 지 한 달도 못돼 각료로 발탁됐다. 과거 같으면 상상도 못할 이런 일이 우연일까. 아니다. 김대중 대통령의 혜안이든 신정부의 국정 기조이든 「시대」가 그렇게 가고 있는 것이다.

 국경 없는 기술전쟁도 모자라 이제는 21세기 지식정보사회가 열리고 있다. 병력수나 부존자원을 따지던 산업사회가 종언을 고하고 지식과 정보가 국부(國富)를 가름하는 시대가 됐다. 국가 경영의 패러다임도 바뀔 수밖에 없다. 이에 가장 적합한 인물들은 민간기업 경영인 그 중에도 21세기적 산업인 전자·정보통신업계 기업인들이다.

 그들은 경제일선에서 세계 최고기업인들과 사투를 벌이고 급박하게 발전하는 기술혁신을 읽어야 하며 전 인류적 차원에서 「미래의 삶」을 들여다볼 줄 알아야 「살아 남는 사람들」이다. 시대가 전자·정보통신업계에서 검증된 경영인들을 요구하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지난 40여년간 「산업계 인사」라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드디어 국가 경영의 핵심으로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내각에 진출하는 사람들이 생겨나는 것은 업계의 파워엘리트 집단이 권력 엘리트로 이동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벤처신화를 창조하며 사회를 떠들썩하게 하는 사람들은 21세기 국가 경영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 전자·정보통신업계를 리드하는 별들이 21세기 국가경영의 인재 풀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 40여년간 전자·정보통신업계에는 수많은 스타가 탄생했고 명멸해 갔다. 그 별들은 사회변화 속도와 비례해 빠르게 바뀌고 있다. 특히 전자·정보통신산업이 만개한 90년대 중반 이후에는 각 분야에서 신진 스타들이 대거 떠올랐다.

 전체적으로는 초창기 황무지에서 산업을 개척한 1세대 원로급들이 대거 2선으로 후퇴하고 40∼50대 차세대 주자들이 간판 경영인 자리를 이어받았다. 특히 지난해와 올해 기업의 별인 이사로 승진한 신규 임원들 가운데는 30대80년대 학번60년대 출생을 의미하는 이른바 386세대가 대거 약진했다. 이들은 조직에 새바람을 불어 넣는 것은 물론 패기와 젊음을 앞세운 추진력도 인정 받고 있다. 386세대는 대기업뿐 아니라 벤처기업의 주류로 확고한 자리매김도 하고 있다.

전자·정보통신업계의 새로운 별들은 부르도저식 추진력과 목표 지향적이었던 지난 세대와는 다르다. 합리적 판단과 전략적 사고를 앞세운다. 유창한 영어와 세련된 매너로 국제감각을 갖춘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시대 흐름이 별들의 성격을 바꿔 놓았다.

 강진구(삼성전기 회장), 이헌조(전 LG전자 부회장), 김광호(전 삼성전자 부회장), 정장호(LG그룹경영개발원 부회장), 서정욱(과기부 장관), 김정식(대덕전자 회장)씨 등은 국내 전자업계의 산증인이다. 이들은 아직도 현직에서 맹활약하거나 입각하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2선 후퇴, 원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이제는 윤종용(삼성전자 사장), 구자홍(LG전자 부회장), 김영환(현대전자 사장)씨 등이 종합전자 3사의 사령탑을 맡고 있다. 90년대 후반 급성장한 통신서비스업계에는 조정남(SK텔레콤 사장), 이상철(한국통신프리텔 사장), 남용(LG텔레콤 사장), 정용문(한솔PCS 사장), 정태기(신세기통신 사장)씨 등이 경영자로 뛰고 있다.

 머리 하나만으로 세계를 상대로 승부하는 벤처기업의 스타들은 가장 부침이 심했다. 벤처신화의 대명사였던 이찬진씨는 한글과컴퓨터의 경영권을 넘겼다. 김영삼 정부시절 중소제조업체 대표격으로 각광 받았던 태일정밀 정강환 사장은 외화불법유출 혐의를 받고 있다.

컴퓨터와 제조업에 치우쳤던 벤처스타들은 이제 발굴 분야가 한층 넓어졌다. 의사 출신인 안철수씨(안철수바이러스연구소장)가 네티즌이 뽑은 한국의 대표 전자·정보통신기업인으로 선정됐는가 하면 안영경 핸디소프트 사장은 그룹웨어의 해외진출은 물론 정부 표준제품 납품으로 성가를 높이고 있다. 대학 운동권 출신인 장영승 나눔기술 사장은 늘 화제를 몰고 다니며 모토롤러의 자본을 유치하고 일본 NHK가 한국의 벤처기업가로 소개, 일약 세계적 기업인으로 도약한 박병엽 팬택 사장도 벤처를 꿈꾸는 젊은이들의 우상이 됐다.

 벤처 분야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 가운데 하나는 여성기업인의 급부상. 소프트웨어, 게임, 그래픽 등 여성에 적합한 분야를 파고들면서 우먼파워를 과시하고 있는 스타들도 또다른 집단을 형성하고 있다. 정영희 소프트맥스 사장, 장인경 마리텔레콤 사장, 서지현 버추얼아이오시스템 사장 등이 그들이다.

 전자·정보통신업계가 아쉬워하는 분야도 있다. 경영이 빛을 발할 수 있도록 뿌리를 받쳐 주는 연구개발 부문의 스타가 드물다는 것이다. 일반인들이나 언론의 스포트라이트가 경영진에만 쏟아진다는 약점이 있긴 하지만 세계적인 성가를 인정 받는 연구원, 엔지니어들이 수두룩한 상황에서 정작 별 중의 별로 여겨지는 연구원들은 별로 없다는 것이다. 진대제 삼성전자 시스템LSI사업부문 대표 등 반도체 관련 일부 인물들이 스타 대접을 받지만 아직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정보통신산업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