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5년 말 정세영 전 회장의 뒤를 이어 현대 총수의 자리에 올라선 정몽구 회장(60)은 과묵하고 후덕하며 통이 큰 성품의 소유자로 알려져 있다. 자신을 내세우지 않으면서도 일단 일을 맡으면 누구보다도 강한 집념과 추진력으로 일을 밀고 나가는 저력을 과시하기도 한다.
정주영 명예회장의 유교적인 엄한 가풍 속에서 성장한 정몽구 회장은 어른을 공경하고 형제들을 자상하게 이끌어갈 뿐 아니라 주위 사람들에게 신의를 다하는 성품으로 한번 인연을 맺은 사람은 오래도록 깊이 사귄다.
정 회장 체제는 과도기라 할 수 있는 정세영 전 회장 때와는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겉모양은 정세영 회장 때와 같으나 중요 현안에 대한 결정권은 전보다 강화됐다. 2세 형제들간 어느 정도 협력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정 회장은 외모부터 아버지인 정 명예회장을 많이 닮았으며 「추진력」 있는 경영 스타일도 아버지를 닮았다.
현대정공을 스스로 세워 현재의 덩치로 키워낸 저력을 갖고 있는 것이다.
정 회장이 자동차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70년 현대자동차에 입사, 부품·자재·영업 담당으로 뛰어다니면서 현장을 경험한 것이 시작이었다. 정 회장은 자동차의 판매·서비스 및 상품개발을 통해 얻은 폭넓은 경험을 바탕으로 자동차 생산에도 본격 참여해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다.
정 회장은 스스로 창업한 현대정공을 통해 91년 9월 4륜 구동 다목적 자동차인 「갤로퍼」를 생산한 데 이어 95년 12월 국내 최초의 미니밴 「싼타모」를 출시하는 등 새로운 자동차문화를 만들어왔다. 갤로퍼는 시장진출 5개월 만에 4륜 구동차분야 판매 1위를 차지하는 등 돌풍을 일으켰다. 「갤로퍼 신화」는 정 회장의 탁월한 경영감각으로 탄생된 작품이다.
정 회장이 사업구상과 상품기획, 시장현황 및 소비자 요구에 대한 판단, 자체의 역량파악 등을 철저히 함으로써 만들어질 수 있었다.
정 회장은 또 자동차의 특성상 기술과 품질도 중요하지만 애프터서비스가 자동차 판매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판단, 전국을 대상으로 서비스망을 구축했다. 경복고 출신인 정 회장이 그룹회장 자리에 앉게 되자 오랫동안 그를 보좌해왔던 경복고 출신 임원들이 새로운 실세로 부상, 현대그룹의 「제2 도약」을 전면에서 지휘하고 있다.
아직 정 회장의 업적은 아버지 정 명예회장의 업적에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작은 모습이다. 그러나 그동안 그가 키워온 인천제철이나 현대정공 등도 결코 작은 회사는 아니다. 이들 회사를 이끌어오면서 갈고 닦은 실력을 발휘해 나간다면 그룹 회장으로서의 비중은 시간이 갈수록 커질 것이다.
<김병억기자 bekim@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