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눅스의 "윈도 대공습"

 청어를 배불리 먹고 부러울 게 없다는 듯 다리를 쭉 펴고 앉은 「펭귄」. 이 펭귄(리눅스)이 닫힌 창문(윈도)을 열고 나올 수 있을까. 그동안 윈도의 아성에 가려 「창 밖의 운용체계(OS)」로 머물렀던 리눅스가 8년 만에 윈도 뛰어넘기를 시도한다. 어쩌면 빌 게이츠 회장에겐 악몽이 될지도 모를 99년, 리눅스는 과연 대중화에 성공할까.

 리눅스는 97년만 해도 마치 밀교(密敎)의 숭배 대상처럼 보였다. 추종자는 컴퓨터 너드(Nerd), 아니면 기크(Geek)로 불리는 사람들. 한 쪽으로만 파고들다 보니 남들 눈엔 별 기괴한 짓을 일삼는 얼간이로 보이는 컴퓨터 천재의 전유물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 리눅스의 언더그라운드 시대는 끝났다.

 지난해 리눅스의 서버 시장점유율은 17.2%. 35.8%선을 지키는 윈도NT에 비하면 절반에 약간 못 미칠 정도다. 하지만 99년엔 윈도NT 점유율을 30% 이하로 끌어내리기 위한 리눅스의 파상공세가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리눅스가 윈도에 비해 몇 가지 면에서 확실한 우위를 가지고 있다고 평가한다. 우선 저렴한 가격은 윈도가 따라잡기 힘든 리눅스만의 매력이다. 인터넷을 통해 누구나 다운로드 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리눅스는 기본적으로 무료. 운용체계와 애플리케이션, 소스 프로그램을 묶어낸 CD롬 버전을 구입해도 값은 윈도NT의 10분의 1 미만이다. 3장의 CD로 이뤄진 레드햇의 경우 49달러에 살 수 있다. 국내에서 구입하려면 레드햇 리눅스 5.2버전이 9만4600원, 코리아리눅스비즈니스가 판매하는 한글판은 그보다 더 싼 9900원이다.

 리눅스를 돋보이게 하는 장점은 팔방미인 소프트웨어라는 것. 보통 리눅스 배포판 하나만 있으면 소프트웨어 추가구입 없이 데스크톱 플랫폼부터 웹 서버, 메일 서버, DNS서버, FTP서버, 대규모 가상 웹 호스팅 서버까지 구축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수십명이 쓰는 메일 서버라면 486급 컴퓨터와 랜카드만, 그리고 리눅스만으로 충분하다.

 하드웨어 종류에 관계없이 모든 시스템에서 쓸 수 있다는 것도 리눅스의 미덕. 기존 유닉스 시스템은 하드웨어별로 설치방법이 약간씩 달랐다. 그러나 리눅스는 인텔 호환 컴퓨터를 비롯해 매킨토시(PowerPC), 선 스파크(Sun Sparc), 디지털 알파(DEC Alpha) 등 다양한 중앙처리장치에서 작동한다.

 성능면에서도 리눅스는 윈도NT와 비교해 전혀 손색이 없다. 강력한 다중처리, 가상 메모리, 공유 라이브러리, 요구 메모리 적재, 뛰어난 메모리 관리시스템, 강력한 TCP/IP 네트워킹 등으로 까다로운 기술평론가들에게도 OS로서 자질을 인정받고 있다. MS진영에 윈도2000이라는 복병이 숨어 있긴 하지만 2년 후가 되면 리눅스도 몰라보게 변해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리눅스엔 철학이 있다. 알고 보면 리눅스는 우연의 산물이다. 91년 스물한 살의 청년이었던 리누스 토발즈(Linus Torvalds)는 자신이 OS세상의 혁명가로 불리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헬싱키대학의 가난한 전자공학도였던 그는 PC에서 유닉스를 쓸 수 있도록 해보자는 단순한 호기심에서 리눅스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 해 여름 마술 같은 일이 일어났다. 여러가지 디바이스 드라이버와 기초적인 파일시스템 등을 가진 리눅스 버전 0.01을 프로그램 소스와 함께 인터넷 유즈넷에 공개하자 순식간에 세계 최고의 프로그래머를 자처하는 수천명의 젊은이들이 몰려 든 것. 하루가 다르게 기발한 아이디어가 더해지고 새로운 기능이 보태졌다. 특히 리처드 스톨만이 창설한 자유소프트웨어연합(FSF)은 리눅서들의 구심점으로 떠올랐다. 리누스는 커널개발을 담당했고 다른 프로그래머들이 나머지 부분을 맡았다. 그래서 GNU(Gnu is Not Unix)라는 말처럼 유닉스와는 전혀 다른 독창적인 OS가 탄생했다. 결국 리눅스를 만든 것은 리누스가 아니라 「공유와 나눔의 철학」이다.

 이 같은 리눅스의 이념은 MS에 대한 반감을 불러일으켰다. MS는 전세계 소프트웨어 매출의 90%를 장악한 윈도의 소스 코드를 공개하고 싶어하지 않는다. 이같은 폐쇄성과 지나친 영리추구는 경쟁업체들을 자극했다. 오라클·IBM·컴팩·델·HP로 이어지는 반 MS 전선에서 리눅스라는 이름은 같은 편임을 확인하는 코드명이 된 셈이다.

 하지만 리눅스 진영에도 먹구름은 끼어 있다. 우선 리눅스는 보험을 들지 않은 자동차처럼 사고가 났을 때 책임져줄 사람이 없다는 유저들의 생각이 문제. 터무니없는 오해는 아니다. 하지만 상황은 호전되고 있다. 최근 컴팩은 리눅스 채용 서버 사용자들을 위해 24시간 지원시스템을 구축했다. IBM과 델도 고객이 원할 경우 리눅스서버를 공급하고 AS도 물론 해준다. 그런가 하면 리눅스 사용자 소사이어티는 지난해 인포월드의 기술 지원상을 받아 리눅스의 신뢰성을 과시했다.

 둘째, 리눅스는 전문가가 아니면 사용할 수 없다는 선입견이 걸림돌이다. 사실 슬랙웨어라 불리던 초창기 리눅스 버전은 설치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레드햇·칼데라 등 리눅스 벤처업체들이 등장하면서 사정은 달라졌다. 전에는 프로그램을 몽땅 날릴 각오를 하고 2∼3일씩 매달려야 했던 설치가 이젠 윈도NT와 비교해서 약간 더 신경이 쓰일 정도. 입력방식도 윈도처럼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GUI)로 바뀌고 있다. KDE(K Desktop Environment), GNOME(Gnu Network Object Model Environment) 같은 GUI 개발은 리눅스를 더욱 쉽고 재미있는 OS로 만들어줄 것이다.

 셋째, 리눅스는 아직 응용 프로그램이 부족하다. 사실 애플리케이션 문제는 리눅스의 아킬레스건이었다. 하지만 지난해를 기점으로 소프트웨어 벤더들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애플리케이션도 풍성해지고 있다. 오라클·시그너스·인포믹스·코렐·사이베이스 등이 리눅스를 포팅했고 자바(JAVA)와 리눅스의 결합도 주목받는다.

 리눅스 환경에서 자바언어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게 되면 윈도 못지 않게 다양한 응용 프로그램들이 쏟아질 것이라는 낙관론도 나오고 있다. 서버와 PC 외에 휴대형 핸드헬드PC용 리눅스도 곧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 휴렛패커드는 리눅스를 지원하는 네트워크 관리도구, 오라클과 인포믹스사에선 데이터베이스(DB)관련 프로그램을 속속 선보일 예정이다.

 국내에서도 리눅스의 영토는 점차 확장되고 있다. 데이콤이 지난해 말 리눅스를 서버로 탑재한 서버 호스팅 서비스를 실시한 데 이어 10여개의 웹호스팅 전문업체들이 리눅스 웹서버, 메일서버, DNS서버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리눅스코리아·웹데이터뱅크·리눅스비즈니스·지그재그소프트·미지소프트 등 리눅스 전문업체들도 늘어나고 있다. 용산에서는 윈도98 대신 리눅스를 채택하려는 움직임이 감지된다. 대산시스템·한국리눅스·911컴퓨터 등은 리눅스를 옵션으로 채택할 수 있도록 제공하는 PC 조립업체들.

 세계적으로 리눅서는 500만∼1000만명. 국내 사용자는 5만∼7만명 정도로 추정된다. 그 숫자는 매년 2배 이상 증가하고 있다. 99년이 리눅스 대중화의 원년이 될 수 있을지는 좀더 두고봐야 한다. 하지만 GNU정신이 살아 있는 한 리눅스는 끊임 없이 진화한다. 리눅스의 전성시대는 쉽게 끝나지 않을 전망이다.